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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올봄은 영 쾌청하지가 않다. 더러는 바람이 불고, 더러는 비가 오고, 결국엔 세찬 비바람까지 몰아치니 봄 날씨가 얄궂기 그지없다. 그런 이유일까. 몸이 천근만근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지고, 푹 잔 듯싶으나 전혀 개운치가 않다. 춘곤증치곤 중증이다.

춘곤증은 봄이면 누구에게나 찾아드는 계절병이다. 매사에 쉽게 피로를 느끼며,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낮에는 더욱 나른해진다. 또 하품이 자주 나고, 간혹 어지럽기도 하며, 때에 따라서는 목덜미가 무거울 때도 있고, 소화도 잘되지 않으며, 소변이 자주 마렵기도 하고 피부는 바싹 마른 나뭇잎 마냥 거칠 대로 거칠어진다.

요즘 딱 그렇다. 거기다 올봄엔 날씨까지 우중충하니 춘곤증에 시달리는 몸뚱이가 전에 없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오전 나절. 비실비실 거리며 일어나 청소를 하다 말고 도로 자리에 누워 버렸다. 까짓 거, 하루쯤 실컷 잔다고 천지 개벽할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닐 터. 잠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가당찮은 오기가 생긴 것이다.

춘곤증에 시달리는 몸뚱이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막상 머리를 누이니 잠이 오지 않는다. 졸음은 쏟아져 내리는데 잠은 오지 않고 눈꺼풀만 무겁다. 억지로 감은 두 눈 속으로 잡생각만 섞여든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애꿎은 시간만 잡아먹다 보니 오히려 머리가 더 무겁다. 그런 딸자식이 게으르다는 생각은 미쳐 못 하시고 어디가 아파서 그런가 싶은지 아버지는 서너 차례 근심 어린 채근을 하신다.

"어데 아프나?"
"아니,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요?"

"어디가 안 좋으면 이야기해라. 약 사다 주꾸마."
"진짜 안 아파요. 아버지."


순간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별거 아닌 춘곤증에 내가 이렇게 힘겨우면 연로하신 부모님은 어떨까 싶었다. 철철이 보약을 드시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삼시 세끼 밥이 전부인 부모님. 당신들께도 분명 봄은 왔을 터인데 요즘 같은 때, 입맛은 오죽 깔깔하실까 싶었다. 보약은 꿈도 못 꿀 형편이지만 입맛 확 당기는 맛있는 밥 한 끼는 못 지어 드릴까 싶은 생각에 가당찮은 오기가 어느새 가상한 기특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 돌 미나리
ⓒ 김정혜
날짜를 짚어 보니 마침 오일장이다. 서둘러 장에 나갔다. 춘곤증에 봄나물이 최고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터. 봄나물로 부모님의 깔깔한 입맛도 되살리고 또 춘곤증도 다스려 드릴 심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온갖 봄나물이 지천이다. 이맘땐 봄나물만 한 보약이 없다. 그중에서도 봄나물의 어린 새순은 보약 중의 보약이라는데….

장터 초입에 거뭇거뭇한 돌미나리가 눈에 뛴다. 돌미나리는 본래 계곡의 샘터나 들의 습지 또는 물가에서 야생한다. 물 미나리에 비하여 줄기가 짧고 잎사귀가 많다. 요즘은 야생의 미나리를 채취하는 일은 흔하지 않고 밭에서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돌미나리는 논 미나리 보다 향이 강하고 줄기 속이 차 있어 씹는 질감도 좋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미나리는 황달과 부인병, 음주 뒤의 두통과 구토에 효능이 있으며, 또 해독 작용이 뛰어나 한방에선 예로부터 약재로 사용되어 왔다. 영양 성분으로는 비타민B군, 비타민A와C, 그리고 미네랄이 풍부하여 간의 기능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 칼륨이 함유되어 있어 몸속에서 나트륨 작용을 억제하여 수분과 노폐물을 배출하는 것을 도와주고 신장의 기능을 강화시켜 주기도 한다. 단, 성질이 차가워 소화 기관이 약하고 몸이 찬 사람은 설사를 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이른 봄. 여린 잎을 데치거나 무쳐 먹으면 식욕을 되찾게 해준다.

▲ 두릅 나물
ⓒ 김정혜
몇 발짝 띄니 두릅도 한창이다. 두릅은 독특한 향이 있어 산나물로 먹는다. 두릅에는 땅 두릅과 나무 두릅이 있는데 땅 두릅은 4~5월경에 돋아나는 새순을 땅을 파서 잘라 낸 것이고 나무 두릅은 나무에 달리는 새순을 말한다.

자연산 나무 두릅의 채취량이 적어 가지를 잘라다가 하우스 온상에 꽂아 재배하기도 하는데 두릅은 활력을 주고 머리를 맑게 하며 스트레스를 다스려 준다. 두릅에는 인삼의 주요 성분인 사포닌이 많아 혈액순환과 피로 회복을 도우며 혈당 강화 작용이 있어 당뇨병 환자에게 좋다.

이외에도 단백질, 지방, 당질, 섬유질, 인, 칼륨, 철분, 비타민(B1, B2, C) 등이 들어 있으며 신장병, 위장병에도 좋다. '봄 두릅은 금, 가을 두릅은 은'이라는 속담처럼 봄에 먹는 두릅은 그야말로 보약이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무치거나 찍어 먹는다.

▲ 고비 나물
ⓒ 김정혜
두릅 옆엔 고비나물도 지천이다. 고비는 여러해살이의 양치식물로써 덩어리진 뿌리줄기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장의 큰 잎이 한자리에서 자란다. 어린잎은 아기의 주먹처럼 둥글게 감겨 있고 많은 털로 덮여 있으며 자라나면서 서서히 풀려 길이는 30cm가 넘는 큰 잎으로 변한다.

주로 뿌리줄기를 약재로 쓰는데 지혈 작용이 뛰어나 코피, 혈변, 토혈, 외상 출혈, 월경 과다를 멈추는 지혈제로 쓰인다. 또 발에 습진, 종기가 생기면 말린 고비 뿌리줄기 달인 물에 발을 담가 씻기도 하고, 또 말린 뿌리줄기를 우려낸 물을 수시로 마시면 유행성 감기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고비는 봄에 어린 순을 따다가 음식으로 조리하는데 섬유질이 많아 약간 쫄깃하다.

▲ 취나물
ⓒ 김정혜
봄나물에 취나물이 빠질 수 있나.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로 우리나라에만 100여 종이 자생하고 있다. 흔히 참취, 곰취, 개미취, 각시취, 미역취, 수리취 등 그 종류가 매우 많은데 그 중 참취 수확량이 가장 많다. 자연산을 채취하거나 재배하여 먹기도 하며 취나물은 시원한 반 음지와 물 빠짐이 좋은 토양에서 잘 자란다.

취나물은 단백질, 칼슘, 인, 철분, 비타민B1·B2, 니아신, 등이 함유되어있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맛과 향기가 뛰어나다. 살짝 데쳐 쓴맛을 없앤 후에 갖은 양념에 무치거나 볶아 먹는다. 감기, 두통, 진통에 효과가 있어 한약재로도 이용된다. 특히 햇취나물은 묵은 나물보다 향이 강해 봄철 깔깔한 입맛 돋우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다.

▲ 네 가지 봄 나물 무침
ⓒ 김정혜
얄궂은 날씨 탓에 미쳐 봄을 느낄 겨를이 없었건만, 오늘 저녁 우리 집 저녁 밥상이 그야말로 온전한 봄을 맞았다. 미나리 향과 두릅 향과 취나물 향이 코로 봄을 느끼게 하고, 꼬불꼬불한 고비나물은 눈으로 봄을 느끼게 하고, 혀끝으로 느껴지는 나물마다의 쌉싸름함은 입으로 봄을 느끼게 한다.

▲ 봄 나물과 고추장과 된장과...
ⓒ 김정혜
큰 양푼에 나물과 고추장과 된장을 넣고 비빈다. 아버지 것이라 어머니 것이라 따로 덜어 드리지 않는다. 비빔밥은 그렇게 한데 어울려 숟가락을 부딪쳐 가며 먹어야만 맛있다는 아버지의 비빔밥 예찬론 때문이다.

아버지의 숟가락과 어머니의 숟가락이 부딪쳐 달그락거리고, 내 숟가락과 딸아이의 숟가락이 부딪쳐 또 달그락거린다.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저녁. 우리 집엔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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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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