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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할 때 조심하셔야 될 걸요. 원래 며느리 때리는 사람들은 밖에서 다들 존경받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니까 구박도 하고 그러다 손찌검도 하는 거예요."
국제결혼가정 폭력 건으로 우리 쉼터 상담실장이 경찰서에 베트남어 통역봉사를 간다고 할 때 옆에 있던 지인이 한 말이었습니다.
지난주 우리 쉼터엔 가정폭력 상담이 세 건이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한결같이 국제결혼이주여성들이었습니다.
두 건은 구타를 당한 후 우리 쉼터에 직접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 경우고, 다른 한 건은 경찰서에서 통역을 부탁해서 알게 된 경우였습니다. 통역봉사를 마친 상담실장은 갈 곳이 없다는 베트남인 T씨를 쉼터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경찰을 통해 알게 된 T의 경우는 일반적인 결혼이주여성들과 달리 구타 당사자가 남편 혼자가 아니라는 점과 주도적으로 구타를 행사한 사람이 시어머니라는 점에서 특이했습니다.
모 정부부처 이사관을 지내고 정년퇴직한 집안의 아들과 결혼한 T씨를 처음 쉼터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양쪽 눈두덩이에 피멍이 들어 있었고, 한쪽 눈가엔 가늘게 찢긴 자국, 팔뚝과 종아리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뒤통수와 허리, 목덜미 등도 쑤신다고 하는 걸 보면, 구타를 한 사람은 손발이 쿵푸 선수마냥 앞뒤로 날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경찰에 의하면 T씨가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땀범벅이 되도록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것을 순찰 중이던 경찰이 이상하게 여겨 경찰서 지구대로 데리고 갔는데, 지구대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 와중에 통역이 필요하여 쉼터 상담실장과 연결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T씨는 한국에 온 지 두 달 보름 동안 아파트에서 병원 진단을 위해 나왔던 것을 포함하여 딱 네 번밖에 바깥 세상을 구경하지 못하다가 시어머니와 남편의 구타가 있던 날, 감시를 피하기 위해 진공청소기를 켜 놓고 도망쳐, 무조건 달렸다고 했습니다.
쉼터에서 이틀을 쉬고 경찰의 출석 요구에 따라 경찰에서 만난 남편과 시어머니라는 사람은 조사가 있기 전 인사를 하는 T를 향해 막말을 퍼부어대는데, 옆에 있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악담을 하는 T의 시어머니 옆에는 말수가 적은 T의 남편이 있었는데, T에겐 아무런 말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T의 시어머니와 시누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사람을 계층적으로 보며, 우월한 의식을 갖고 저소득층에 대해 차별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쉽게 노출했습니다.
"올 때부터 농사꾼 같아서 눈을 쳐다보기도 끔찍하더니만, 이런 꼴을 하네", "70평 아파트에서 살면서 뭐가 부족해서 이러고 다니는지 몰라", "자해공갈단 아냐, 우리가 돈이 많으니까 돈을 뜯어먹으려고 이 짓 하는 것 아냐"라는 말과 함께, 경찰의 연락을 받고 통역을 하러 간 상담실장에게도 '뒤에서 조정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 등 억지가 어지간하여 상식적인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고 보면 '농사짓는 사람들'이 무식하고 쳐다보기도 끔찍한 무서운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자기들은 농사꾼들 덕에 '쌀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잘 아는 후배 중에 대학을 나오고 시골에서 '대한민국 대표 농사꾼'이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는 후배가 있습니다. FTA라 뭐다 해서 다들 걱정하는 중에도 쌀농사 짓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는 늘 당당하고 밝은 청년입니다. 그 친구가 T의 시어머니를 면대했으면 어떠했을지 궁금해집니다.
사람이 존귀한 것은 사람에게 해할 수 없는 존엄한 하느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