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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에 짚을 넣고 불을 붙히자 불꽃이 화르르 피어오른다
아궁이에 짚을 넣고 불을 붙히자 불꽃이 화르르 피어오른다 ⓒ 이종찬
삼 년 묵은 짚과 삼겹살이 만나
애달은 몸 화르르 부빈다

몸 구석구석 더듬고 핥는 붉은 혓바닥 속에
그 가시나와 나의 지독한 사랑이 어른거린다

꽃불이 은근슬쩍 몸을 빼기 시작하자
뜨거운 사랑도 푸시시 푸시시 꺼진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도 한순간
두눈에 못박힌 사랑도 한순간

내 마음은 짚불 삼겹살처럼 거무스레 그을렸고
그 가시나는 그리움의 까만 재로 남았다

짚불삼겹살구이를 먹는 봄날 저녁
그 가시나는 독한 소주로 다가와
몇 번씩이나 나를 아뜩하게 무너뜨렸다

- 이소리, '짚불삼겹살구이를 먹는 저녁' 모두


삼겹살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아궁이 위에 듬성듬성 걸쳐진 쇠그물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다
삼겹살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아궁이 위에 듬성듬성 걸쳐진 쇠그물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다 ⓒ 이종찬
독특한 향과 맛이 나는 짚불삼겹살구이

이내 짚불이 빠알간 잉걸불과 까만 재를 남기며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이내 짚불이 빠알간 잉걸불과 까만 재를 남기며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 이종찬
음식의 깊은 맛은 끝이 없는가 보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그 속맛이 훨씬 달라지니, 한 번 맛 본 음식이라고 해서 어찌 함부로 마주할 수 있겠는가.

지난 4월 5일(목) 저녁 7시. 여수에 살고 있는 조찬현(49) 기자의 안내로 여행작가 김정수(36)와 함께 들렀던 전남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에 있는 짚불구이전문점 목향. 여수에서도 입소문이 많이 난 이 집 짚불구이는 국산 삼겹살과 생오리고기를 3년 묵은 짚불로 구워내 독특한 향과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 마당에 들어서자 황토집 안채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평일 저녁인데도 손님이 꽤 많다. 마당 곳곳에 황토벽돌로 지어진 집과 붉은 벽돌 사이에 끼어 있는 격자무늬 창살이 옛 고향의 고즈녁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흙담장 아래 피어난 하얀 밥풀떼기꽃과 노오란 민들레꽃들도 정겹다.

조 기자의 말에 따르면 이 붉은 황토집은 이 집 주인 송홍신(43)씨가 지금으로부터 5년 앞에 황토벽돌을 직접 찍어 손수 지었다. 더불어 송씨가 이곳에서 처음 짚불구이를 시작했을 때 경험이 없어 짚불에 손을 데이기 일쑤였고, 어떤 때는 쌓아놓은 볏단에 불이 붙어 난리가 나기도 했다.

1년이나 2년 묵은 짚은 향이 워낙 강해 고기가 지니고 있는 원래의 맛을 떨어뜨린다
1년이나 2년 묵은 짚은 향이 워낙 강해 고기가 지니고 있는 원래의 맛을 떨어뜨린다 ⓒ 이종찬
짚불로 초벌구이한 삼겹살, 다시 돌판 위에서 구워내야

볏짚에 살짝 구워낸 삼겹살은 기름기가 쏘옥 빠져 고기가 부드럽고 뒷맛이 깔끔하다
볏짚에 살짝 구워낸 삼겹살은 기름기가 쏘옥 빠져 고기가 부드럽고 뒷맛이 깔끔하다 ⓒ 이종찬
황토집 안으로 들어가자 구수한 고기 굽는 내음과 향긋한 짚향 내음이 입에 침을 고이게 한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안방 한켠에 자리를 잡고 엉거주춤 앉는다. 근데, 탁자 위에 놓인 불판과 불판 위에 올려진 돌판을 보니 여느 삼겹살집과 다름 없다. 짚불을 붙일 만한 곳이 못 된다는 그 말이다.

그때 조 기자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나그네를 은근슬쩍 잡아 일으킨다. 짚불구이를 하는 곳은 황토집 한 귀퉁이에 따로 있다는 눈치다. 조 기자를 따라 황토집을 빙 돌아나가니 부엌처럼 생긴 곳에 3년 묵은 볏짚이 가득 쌓여 있다. 그 한 귀퉁이에 짚불을 떼서 고기를 굽는 아궁이가 하나 있다. 마치 대장간 같다.

디카를 꺼내 마악 사진을 찍으려는데, 주인 송씨가 굵은 천일염이 송송 뿌려진 삼겹살을 들고 아궁이로 들어온다. 송씨가 재빠른 손놀림으로 아궁이에 짚을 넣고 불을 붙히자 불꽃이 화르르 피어오른다. 삼겹살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아궁이 위에 듬성듬성 걸쳐진 쇠그물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다.

주인 송씨가 활활 타오르는 집불 속에 든 삼겹살을 서너 번 뒤집는가 싶더니 이내 짚불이 빠알간 잉걸불과 까만 재를 남기며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만이다. 바로 이 초벌구이가 일반 삼겹살이 은은한 짚향이 배어나는 짚불삼겹살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다. 그리고 초벌구이가 끝난 이 삼겹살을 돌판 위에서 다시 한 번 구워내면 끝이다.

짚불삼겹살을 돌판 위에 올리자 구수한 삼겹살 내음과 향긋한 짚향이 어우러지며 침샘을 톡톡 건드린다
짚불삼겹살을 돌판 위에 올리자 구수한 삼겹살 내음과 향긋한 짚향이 어우러지며 침샘을 톡톡 건드린다 ⓒ 이종찬
3년 묵은 볏짚을 써야 짚향 은은하게 배어나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짚불삼겹살구이 한 점 상추에 싸서 입에 넣자 향긋한 짚향이 입 안 가득하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짚불삼겹살구이 한 점 상추에 싸서 입에 넣자 향긋한 짚향이 입 안 가득하다 ⓒ 이종찬
이 집에서 5년째 짚불구이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 송홍신씨는 "1년이나 2년 묵은 짚은 향이 워낙 강해 고기가 지니고 있는 원래의 맛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3년 묵은 볏짚을 써야 고기에 짚향이 은은하게 배어나 제 맛이 난다"며 "볏짚에 살짝 구워낸 삼겹살은 기름기가 쏘옥 빠져 고기가 부드럽고 뒷맛이 깔끔하다"고 덧붙였다.

짚불삼겹살 초벌구이를 살펴본 뒤 다시 황토집 안으로 들어온다. 어느새 조금 앞에 앉았던 식탁 위에 밑반찬이 푸짐하게 놓여 있다. 싱싱한 상추와 풋고추, 깻잎, 묵은지, 마늘, 마늘쫑무침, 새꼬막, 도토리무침, 물김치, 된장 등. 근데 평소 못 보던 음식이 두 가지 더 놓여 있다. 양파김치와 '찔룩게장'이 그것이다.

조 기자의 말에 따르면 이곳 양파김치는 양파를 4등분하여 천일염으로 간한 뒤 이 집에서 특별하게 만든 양념과 새우육젓을 넣고 만든다. 이 지역 사람들이 '찔룩게'라 부르는 칠게로 만든 게장도 독특하다. 찔룩게장은 찔룩게를 믹서에 갈아 3일 동안 숙성시킨 뒤 양파와 다진 생강을 넣고 버무린 것이다.

이윽고 기름기가 쫘르르 흐르는 짚불삼겹살을 돌판 위에 올리자 구수한 삼겹살 내음과 향긋한 짚향이 어우러지며 침샘을 톡톡 건드린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짚불삼겹살구이 한 점 상추에 싸서 입에 넣자 향긋한 짚향이 입 안 가득하다. 쫄깃쫄깃 씹히는 짚불삼겹살은 그냥 삼겹살 맛이 아니라 처음 먹어보는 기막힌 맛이다.

세상에! 삼겹살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다니
세상에! 삼겹살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다니 ⓒ 이종찬
"찔룩게장에 찍어 양파김치에 올려먹어야 제맛이 난당게"

짚불삼겹살은 상추에 싸서 먹는 것보다 이 찔룩게장에 찍어 양파김치에 올려먹어야 제맛이 난당게
짚불삼겹살은 상추에 싸서 먹는 것보다 이 찔룩게장에 찍어 양파김치에 올려먹어야 제맛이 난당게 ⓒ 이종찬
세상에! 삼겹살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다니. 짚불삼겹살구이의 독특하고도 향긋한 감칠맛에 포옥 빠져 정신없이 소주 한 병을 비운다. 이어 다시 소주 한 병 더 시키고 나자 그제서야 앞에 앉아 빙그시 웃고 있는 조 기자와 옆에 앉은 김정수 기자의 만족스런 얼굴이 보인다.

"짚불삼겹살은 상추에 싸서 먹는 것보다 이 찔룩게장에 찍어 양파김치에 올려먹어야 제맛이 난당게."
"그래예? 우쩐지 삼겹살 먹는데 양념처럼 따라다니는 참기름과 소금이 보이지 않는다 캤더마는 다 이유가 있었네예."
"어뗘?"
"경상도 창원 머스마 이거, 오늘 전라도 여수 짚불삼겹살구이에 뿅~ 가네예."


그랬다. 평소 나그네는 삼겹살을 소금 약간 뿌린 참기름에 찍어먹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근데, 이곳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참기름과 소금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짚불삼겹살구이의 향긋하고도 쫄깃한 맛에 포옥 빠져 참기름과 소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저 짚불삼겹살을 된장에 살짝 찍어 상추에 싸서 입에 넣기에 바빴다.

거무스레한 찔룩게장에 짚불삼겹살을 살짝 찍어 양파김치에 올려 먹는 맛!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특히 찔룩게장의 짭조름하면서도 구수한 맛과 양파김치의 달착지근한 맛이 쫄깃한 짚불삼겹살과 짚향에 어우러지는 그 감칠맛은 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독특한 맛을 나그네에게 선물했다.

아! 다시 한번 더 먹고 싶다, 여수 짚불삼겹살구이

양파김치는 양파를 4등분하여 천일염으로 간한 뒤 이 집에서 특별하게 만든 양념과 새우육젓을 넣고 만든다
양파김치는 양파를 4등분하여 천일염으로 간한 뒤 이 집에서 특별하게 만든 양념과 새우육젓을 넣고 만든다 ⓒ 이종찬
사실, 나그네는 그동안 전국 곳곳의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맛보았다. 특히 삼겹살은 김치삼겹살에서부터 된장삼겹살, 와인삼겹살, 고추장삼겹살 등 거의 맛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근데, 여수에서 짚불삼겹살을 처음 맛본 뒤부터 삼겹살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모든 음식은 조리방법에 따라 그 맛이 180도로 달라진다는 것을 새롭게 깨쳤다.

나그네에게 소주 두 병을 순식간에 비워내게 한 여수의 짚불삼겹살구이.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 향긋하고도 쫄깃한 맛!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입맛을 당기게 하는 그 깔끔하고도 깊은 맛! 아, 다시 한 번 더 먹고 싶다, 여수 짚불삼겹살구이. 그래. 식도락(食道樂)이란 말이 이래서 나왔나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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