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코스피지수가 단기급등 부담에도 외국인과 개인의 동반 매수에 힘입어 사흘 연속 상승하며 하루만에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4일 코스피지수는 전날 대비 12.36포인트(0.80%) 오른 1556.71로 마감했다.
코스피지수가 단기급등 부담에도 외국인과 개인의 동반 매수에 힘입어 사흘 연속 상승하며 하루만에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4일 코스피지수는 전날 대비 12.36포인트(0.80%) 오른 1556.71로 마감했다. ⓒ 연합뉴스

국내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그칠 줄 모른다. 종합주가지수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1500포인트를 훌쩍 돌파했지만 여기가 끝이라고 믿는 이는 없다. <오마이뉴스>가 최근 증시전문가 1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 지수가 1600포인트까지 오를 것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정작 주변에서 주식투자로 재미를 봤다는 이를 찾기는 어렵다. 개인 투자자들이 적립식 펀드 등 간접투자로 몰리면서 예전처럼 주가가 치솟는다고 '대박'을 누리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우리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문화가 성숙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주가 1500시대'에도 여전히 주식을 투기의 수단으로 삼고 대박을 좇는 이들이 있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L사 주가 조작사건은 국내 투자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L사 주가조작에 개입한 이들은 다단계 방식의 신종 수법으로 자금을 모으고 주가를 끌어올려 시장의 감시체계를 무력화시켰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L사는 이 같은 '작전'에 힘입어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새 주가가 50배나 급등했다. 결과적으로 작전이 발각돼 그 전모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이번 사건은 여전히 우리 주식시장에서 작전이 통한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줬다.

주가조작이 가능했던 것은 작전을 이끈 세력뿐만 아니라 대박 유혹에 휩쓸려 이들을 따라 나선 개인 투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익률에 목마른 투자자들은 급한 마음에 작전주를 덜컥 잡는다. 결과는 십중팔구 대박보단 쪽박에 이르지만 여전히 작전이란 얘기만 들어도 손이 근질거리는 투자자들이 있다.

증권가 트레이딩룸 가봤더니...

이제는 '추억'이 된 듯한 '데이 트레이딩'(초단타매매)을 하면서 여전히 대박을 꿈꾸는 자들도 있다. 오피스텔에서 혼자 하루 종일 단말기와 싸우는 전업투자자들이 있는가 하면 증권사가 제공한 트레이딩룸에 모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투자하는 이들도 있다.

<오마이뉴스> 취재진은 '데이 트레이더'(초단타매매 투자자)들이 한데 모인 트레이딩룸을 찾았다. 한 증권사가 VIP 고객을 위해 제공해준 곳이었다. 20개가 넘는 자리를 데이 트레이더들이 빼곡하게 채웠다. 대학생 차림의 20대 젊은이부터 중년 부인, 그리고 백발이 성성한 60대 노인까지 심심치 않게 목격됐다.

증시가 활황을 보인다고 해서 더 이상 객장이 붐비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 곳은 최근의 열기를 고스란히 반영하듯 투자열기로 뜨거웠다. 장이 시작되면 이곳은 숨죽은 듯이 고요해진다.

줄지어 늘어선 모니터의 차트와 트레이더의 시선만이 교차하며 순간순간 수익이 나고 손실을 입는다. 자판기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들은 매매 중에는 전화도 받지 않고 대부분 점심식사도 거른다. 가끔 '띵동'하고 울리는 메신저의 메시지 도착 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다.

바로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도 메신저를 이용한다. 이들 사이에서 정보는 곧 수익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특징은 주로 코스피200이나 코스닥50과 같은 시가총액이 큰 종목은 매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종목으로는 당일 매매로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데이 트레이더는 "시가총액이 적은 종목일수록 그만큼 당일 등락폭이 커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며 "그러나 지금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전업투자자가 아니었다면 나역시 삼성전자 등 대형주에 장기 투자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줄줄이 새는 기업 투자정보

증권사 지점이 밀집한 서울 명동.
증권사 지점이 밀집한 서울 명동. ⓒ 연합뉴스 한상균
기업실적, 납품 수주 등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투자정보 교환도 이곳에서는 쉽게 눈에 띈다.

"띵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한 데이 트레이더의 모니터에 두줄 짜리 메시지가 떴다. 'A기업 오늘 오후 지주회사 전환 공시예정. 회사 주담(해당 기업 주식담당자를 뜻함) 확인 사항.'

이는 기업실적 못지않게 주식시장의 핵심 투자정보다. 이 같은 정보가 공식 발표(공시) 전에 미리 새고 있는 셈이다. 실제 이날 오후 해당 기업은 관련 사실을 공시했다. 이 기업의 당일 주가 동향을 살펴보니 공시 이전에 이미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리고 정작 공시 이후에는 오히려 주가가 떨어졌다.

이처럼 호재성 재료가 발표되기 전 미리 주가가 움직이는 것은 일반 투자자가 알기 전에 미리 정보를 접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 데이 트레이더는 "보통 어닝(실적)시즌이 다가오면 '깜짝실적'을 내는 기업의 정보가 미리 '선수'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한다"고 귀띔을 해줬다.

기업과 애널리스트, 그리고 증권사 고객(투자자)들의 '삼각관계'도 여전했다. 또 다른 데이 트레이더는 "가끔은 증권사가 특정 기업의 투자의견을 올리기 전에 그 정보를 미리 전해줘 여기에 맞춰 선취매에 나서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업은 애널리스트에게 실적을 미리 알려주고 애널리스트는 그 정보를 자신의 고객인 투자자에게 슬쩍 흘리는 경우다. 주가가 1500포인트를 넘어서며 성숙한 투자문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시기, 증권가의 한쪽에선 또 다른 형태의 '작전'이 통하고 있었다.

감독당국 감시 이전 성숙한 투자문화가 더 중요

금융감독당국도 때마침 비상이 걸렸다. 모처럼의 활황세를 이어가는 주식시장의 '독소'를 솎아내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은 작전세력의 진화에 맞서 시장감시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또 날로 새로워지는 불공정거래 기법을 색출할 수 있는 조사기법도 새롭게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박찬수 금감원 조사국장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공정거래에 대해 직접적인 감시를 하고 있는 거래소 시장감시팀과 함께 현재 획기적 시장감시기법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국의 감시만으로 투기를 잡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한 증시 관계자는 "감독당국의 감시 못지않게 우리 투자자들의 건전한 투자문화 정착도 중요하다"며 "당국의 감시 타령에 앞서 투자자들의 의식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투자자들이 주식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태도다. 그 인식의 차이가 결국 투자와 투기 사이를 가르기 때문이다. 트레이딩룸에서 만난 대부분의 데이 트레이더들은 비록 자신은 전업투자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 길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로또만큼 당첨확률이 적은 것이 바로 데이 트레이딩이에요. 개인투자자 100명 가운데 80명은 계속 돈을 잃고 있다고 보면 맞을 거에요. 그럼에도 그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도박처럼 한 번은 크게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 거란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