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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희식
내 입 모양으로 눈치를 채고 어머니는 고개만 끄덕였다. 참 허탈했다. 공기가 차다 싶어 열풍기를 틀고 어머니를 나오시게 하고 알려 주었다.

"어머니 따뜻한 바람 틀었어요. 이리로 나오세요."

나는 무엇을 하든 어머니께 알리고 한다. 빨래할게요. 밭에 다녀올게요. 화장실 갔다 올게요. 빨래 다 했어요….

어머니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전용 변기가 있는 뒷마루로 나오셨다. 앉은 채로 팔로 바닥을 밀면서 몸을 끌며 나오시는데 벽에 걸린 시계를 봤더니 새벽 3시였다.

자정에 오줌을 누이면서 '새벽 3시쯤에 일어나서 소변을 보시겠구나'했었는데 정확하게 3시였다. 내가 어머니를 깨운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나를 깨운 3시였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겨우 문고리를 찾았지만 오줌은 급한데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곤하게 자고 있는 자식을 차마 깨울 수가 없어 잠 속으로 들어와서 전화를 건 것일까.

다음날 나는 전화를 신청했다.

손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다며 일반전화 좀 놓으라고 형제들이 권했지만 알아본 바로는 전화를 놔도 인터넷이 안 되는 지역이라고 하기에 굳이 전화를 놓을 필요가 없겠다 싶었는데 꿈 속으로 걸려온 어머니 전화를 받고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분명 무슨 뜻이 담겨있는 꿈이리라 여기고 전화를 놓기로 한 것이다.

전화기 위치도 같은 곳으로 했다. 어머니 전화를 받던 바로 그곳. 방 문 바로 안쪽 벽에다 놓았다.

전화를 신청하면서 마음속으로 '어머니 때문에 전화를 놓았으니 전화요금은 어머니가 해결하슈'했는데 정말 일이 그런 쪽으로 흘러갔다. 아내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완주 집에 내 이름으로 된 일반전화가 한 대 있기 때문에 설치비 십 몇 만원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었는데 이곳은 지역권이 4지역권이라 기본요금도 제일 싼 3천원이라고 했다.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인터넷을 하려면 멀리 읍내까지 1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나가야 했는데 우리 집에 인터넷선이 깔리게 된 것이다. 나귀 타면 종 부리고 싶다고, 전화를 놓고 나니 은근히 인터넷이 하고 싶어졌다. 밑져야 본전이다 싶은 생각에 전화국에 한번 더 신청을 했더니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하면서도 거듭된 요청에 예의상 방문을 한 전화국 직원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렇게 먼 곳은 신호가 떨어지지 않는 법인데 참 이상하네"라고 하면서 전화국에 전화를 여러 번 걸고 하더니 인터넷 속도를 가장 안정적인 상태로 조정하였다. 일반가정집보다 반 정도 느린 속도라고 하지만 사용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어보였다. 노인네가 계셔서 특별선물을 드린다며 잡음 제거기도 달아주었다.

모든 일이 어머니가 꾸민 일 같았다.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었다. 어머니 웃음 속에 이런 말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너 그노무 인터넷인지 뭔지 때문에 나 혼자 내비 두고 멀리 가고 그러지 말그라이. 이 산골에 내가 걸을 수가 있나. 들을 수가 있나. 나 혼자 놔 두믄 안 되지. 인자 됐제?'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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