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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2@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한 것은 작년 가을이다. 마을에서 열린 달리기 시합에 참여했다가 종아리 부분을 심하게 다쳤었다. 릴레이 시합 중 바통을 다음 주자에게 인계하려는 찰나에 종아리 부분에 타박상을 입었다. 한 선수가 넘어지면서 옆 선수를 밀쳤고 그러다가 연쇄적으로 우르르 넘어졌던 것. 그 와중에 누군가 내 다리를 가격했던 것이다.그날 저녁부터 종아리가 시퍼렇게 멍들고 퉁퉁 붓기 시작했다. '근육파열'이었다. 완치되려면 6개월 정도가 걸린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니 한숨만 나왔다. 그 후 약 두 달간을 절뚝거리며 걸어다녀야 했다. 그때 내 다리가 되어 준 것이 바로 자전거다.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는 허벅지 근육만으로도 충분했다."형, 자전거 한 대 집안에 모셔두고 있는데 빌려줄까?"절뚝거리는 모습 보기가 딱 했는지 후배는 말이 끝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가 자전거를 가지고 왔다. 걷지도 못하는데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밑져야 본전인데 하는 마음으로 자전거 안장에 올랐다.쾌재를 불렀다. 종아리 근육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자전거는 앞으로 쑥쑥 나갔다. 꼴사납게 절뚝거리며 1시간 동안 가야 할 거리를 자전거는 10분만에 데려다 줬다.그 당시에는 운전하기도 편치 않았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을 때 종아리 근육을 사용해야 했기에. 다치고 난 후 열흘 정도는 아예 운전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약 한 달간은 조심조심하며 가까운 거리만 차를 몰고 다녔다. 이런 우울하던 시기에 자전거는 내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해 줬다.넘어지고 깨지면서 배운 자전거 타기@IMG4@자전거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여섯 살 터울인 형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 집에 자전거라는 것이 생겼다. 버스도 몇 대 다니지 않는 '깡촌'이었기에 읍내에 있는 중학교까지 통학하려면 자전거가 필수적이었다.자전거가 귀하던 때라 형은 입학 선물로 받은 자전거를 꽤 애지중지했다. 혹시라도 내가 만지다가 고장이라도 낼까봐 은근히 손대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더군다나 호기심 강한 9살 나이였으니 오죽했으랴!형이 외출한 일요일에 사고(?)를 치고 말았다. 제 몸뚱이보다 더 큰 자전거를 신작로(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새로 낸 길)에 끌고나갔던 것이다. 그 당시 신작로는 평탄한 길이 아니다. 중간 중간 큼지막한 돌이 박혀 있는 울퉁불퉁한 길이었다.짧은 다리로는 자전거 안장에 올라탈 수도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자전거를 힘껏 밀고 가다가 페달에 다리 한쪽을 걸쳐놓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넘어지기를 수십 번 한 끝에 겨우 중심을 잡을 수가 있었다.바퀴 두 개로 중심을 잡았다는 뿌듯함이 밀려올 때쯤, 자전거와 내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무릎은 까져서 피가 흘렀고 자전거는 수십 번 넘어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것이 내 인생 최초의 자전거다. 난 이렇게 넘어지고 깨지면서 자전거를 배웠다. 엄밀히 말하면 두 바퀴만으로 넘어지지 않고 중심 잡는 법을 배운 것이다.그때 배운 것은 넘어지려고 하는 쪽으로 핸들을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전거는 넘어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틀면 무조건 넘어지게 돼 있다. 그러나 넘어지려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면 잘 넘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넘어지는 것을 무서워하면 배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전거를 배우려면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그 후 5학년 때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다. 동네 아이들 가방을 핸들에 주렁주렁 매달고 울퉁불퉁한 신작로 길을 신나게 내 달렸다. 하루도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언덕길을 브레이크 없이 내려오다가 곤두박질친 적도 있고 비 오는 날 버스 피하려다가 논에 처박힌 적도 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무릎에 남아 있다. 자전거 통학은 중학교 때까지 계속 됐다.아이와 함께 즐기는 자전거 타는 여유@IMG1@고향을 떠나 도시로 오면서 한동안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도시에서는 자전거를 탈 만한 장소가 거의 없었다. 또 굳이 타야 할 이유도 없었다. 넘쳐나는 차들에 밀려서 교통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없었기에.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전거를 한 대 장만했다. 한가한 봄날에 유아용 안장에 아이를 앉히고 자전거를 태워주는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햇볕 따뜻한 호수 가를 느릿느릿 달리면서 내 아이와 함께 하늘과 바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 소원은 성취했다. 호수 가는 아니었지만 안양천변을 아이와 함께 많이도 달렸다. 선천적으로 겁이 많은 탓에 타지 않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며 안양천변에서 마음껏 여유를 즐겼다.다시 자전거를 멀리 하게 된 것은 자전거 도둑들 때문이다. 자전거는 보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 자전거 타고 외출하면 변변하게 세워 둘 만한 곳이 없다. 사실 자동차 주차하기 만큼 힘들다. 계단 난간이나 전봇대 등에 묶어놓을 수밖에 없는 데 문제는 자물쇠를 채워놔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쇠사슬을 끊는 장비까지 휴대하고 다니며 자전거를 훔쳐가는 도둑들을 막을 길이 없었다. 비싸지도 않은, 흔하디 흔한 고물 자전거를 무슨 이유로 장비까지 동원해서 훔쳐 가는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자전거를 타고 외출했다가 잃어버린 적도 있고 밤에 깜박 잊고 밖에 세워놓았다가 잃어버린 적도 있다. 난 이런 식으로 총 4대의 자전거를 잃어 버렸다. 경험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기분이 몹시 상한다. 그리고 '자전거 다시는 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난 4대째 잃어버리면서 자전거 타는 것을 포기했다.자전거는 '진보'다@IMG3@그러다가 다리를 다치면서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축구 시합을 할 만큼 다리 상태가 양호하다. 완치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출퇴근 할 때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전거를 이용한다. 자전거가 자동차가 야기해 놓은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용덕(44세)씨의 말을 듣고 창고에 있는 자전거를 다시 꺼냈다.한 겨우내 창고 깊숙이 박혀 있었던 탓에 녹이 슬고 바퀴에 바람도 빠져 있었다. 수더분한 인상의 자전거 수리점 사장님 손에 잠시 맡겨 놓으니 금세 쓸 만한 자전거로 변했다. 그 자전거를 타고 요즘 난 또 다시 봄날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다.이씨는 자동차 회사 개발실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현재 중국에서 자전거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자동차 때문에 생긴 환경문제를 자전거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또, 자동차 핸들만 잡으면 도지는 조급증도 자전거를 타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조급증은 자동차의 폐쇄성 때문에 생긴 것이기에 하늘이 열려 있는 공간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는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주범이기에 되도록 타지 말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자전거가 대중화되어서 자동차가 담당하는 교통량을 분담할 수 있다면 사회, 문화, 환경이 한발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난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리고 자동차에 비해서 자전거가 훨씬 진보적 교통문화라 생각한다. 자전거는 마음의 여유를 주고 건강을 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깨끗한 공기도 되돌려 줄 것이다. 그래서 난 앞으로도 계속 자동차 핸들보다는 자전거 핸들을 잡을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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