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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거 선물이에요."
"아, 고마워요. 이런 것 안 가져와도 되는데."
"한국에서 산 거예요. 한국에 스타벅스 많아요."
포장지에 '스타벅스' 로고가 찍힌 것을 보고 '이 분이 한국까지 가서 커피를 사 왔나?' 라고 순간 의아했다. 받은 선물은 준 사람 앞에서 개봉하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에 선물의 포장을 뜯었다. 거기에는 훈민정음이 디자인된 머그잔이 들어 있었다.
"한국에서 스타벅스 갔는데, 거기에서 이걸 보고 선생님 생각이 나서 샀어요. 그런데 정말 스타벅스가 많았어요."
지난 달에 2주동안 한국을 다녀오신 백인 아저씨 유대봉씨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곳에서도 워낙 스타벅스를 좋아하시는데, 서울에 갔더니 곳곳마다, 그것도 길 하나 건너서마다 스타벅스가 있다고 신기해 하셨다. 미국보다 스타벅스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유대봉씨는 본래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사모님께서는 쇼핑을 즐기시는 편이신 모양이었다. 서울에 가서도 사모님이 쇼핑하는 동안 당신은 스타벅스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기다렸다고 하셨다. 어디 가든 스타벅스를 찾기 쉬워서 그것 하나는 좋았다고 하셨다.
심지어 강남역에는 스타벅스가 7개나 있었다고 하셨다. 스타벅스에서 나와서 한 블럭 걸어가니까 또 다른 스타벅스가 있었다고 하시면서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커피를 좋아하는지 몰랐다고 하셨다.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꼭 한 명쯤은 당신에게 와서 영어로 말을 걸었는데, 보통 자기가 할 말만 하고 가더라는 것이었다. 유대봉씨가 생각하기에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배운 영어를 당신이 미국 사람으로 보이니까 와서 연습해 보고 싶었던 모양 같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당신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들 중에는 어린아이들이 많았는데, 당당하게 당신 앞에 와서는 자신들이 배운 간단한 말들만 쭉 하고는 인사도 안 하고 가버리더라는 것이었다.
꼬마: 하이!
유대봉: 안녕하세요?
꼬마: 워쯔 유어 네임?
유대봉: 이름이 뭐예요?
유대봉씨는 자신이 배운 한국어를 연습하고 싶었고, 한국에 가면 그럴 기회가 많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한국 사람들은 자신을 대상으로 영어를 하려고 해서 별로 한국어를 해 볼 기회를 못 가졌다고 했다. 그래도 한국 간판들을 읽어보고 장모님과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유대봉씨는 매년 한국을 방문하시곤 하는데, 이번 해에는 2년만에 다녀오신 것이었다. 2년 새에 갑자기 늘어난 스타벅스와 영어를 연습하려는 사람들로 인해서 놀라신 눈치셨다. 또한, 수업 시간에 보았던 한국의 전통문화를 기대했던 유대봉씨는 조금은 실망하신 눈치셨다.
훈민정음이 적힌 스타벅스 머그컵을 보면서 아이디어는 참 좋은데, 어쩐지 부조화를 이루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만들어 주셨는데 우리는 너무 우리의 것을 다른 것과 혼합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 보았다.
그러한 실망은 다행히 전부터 가고 싶어하셨던 강화도를 방문함으로 가신 것 같았다. 강화도 방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더 많은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구은희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