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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디컬 드라마를 참 좋아한다. <종합병원>에서 신은경을 좋아하던 구본승을 아직도 기억한다. <해바라기>에 나온 대사들을 노트에 옮겨 적었던 기억도 난다. <의가형제>에서 종이컵을 구기던 장동건의 눈빛도 잊을 수 없다.

최근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에 이르기까지, 메디컬 드라마는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보장받으면서 꾸준히 발전해 왔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 중에는 의학적인 면보다 멜로와 정치가 중심이 된 드라마도 있다. 하지만 병원을 중심으로 내용이 펼쳐지다보니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희망과 사랑을 속삭이는 드라마를 보며, 나는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었다.

그렇게 메디컬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지만 <외과의사 봉달희>는 보지 않았다. 같은 시간대 타 방송사에서 하는 <달자의 봄>을 시청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방영 전부터 내가 '완소(완전 소중)'해 마지않는 '미드(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었기 때문이다.

회색빛 인생을 그린 <그레이 아나토미>

<그레이 아나토미>는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대로 '의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턴들과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의사들'의 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메러디스는 유부남인 전공의 선생 데릭과 사랑에 빠지고, 크리스티나는 심장전문의이자 외과 과장 유력 후보인 버크와 연애한다. 아름다운 이지는 나쁜 남자 알렉스와 러브라인을 형성하지만 후에는 환자인 데니와 사랑에 빠진다. 친구인 메러디스를 사랑한 조지는 다른 간호사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마음은 늘 메러디스에게 가 있다. 그렇다. 이 미드는 '사랑'이 중요한 테마이다.

그렇다고 그저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살아있는 캐릭터와 풍부한 에피소드, 거기에 드라마를 더 빛내주는 음악까지, 이 드라마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삶에 대한 사랑,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성격이 분명한 편이라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함을 싫어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이를 많이 먹진 않았지만 세월 따라 분명하던 것도 흐릿해지는 것 같다. 어릴 땐 죽어도 싫던 것들이 지금은 왜 그렇게까지 싫어했나 싶기도 하고, 좋아 죽던 것들이 무덤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죽기보다 싫은 것이 없어졌다고, 또한 죽어도 좋은 것도 없어졌다고 세상에 닳고 달아 덤덤해지는 것이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고 친구들과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이건 좋고 나쁜 문제도 아니고, 옳고 그른 문제도 아니고, 기쁘거나 슬퍼해야 할 일도 아닌, 그냥 세상이 그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삶을, 인간을, 사람과의 관계를, 감정을, 기타 등등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어떻게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어찌 흑과 백으로 구분지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이 드라마는 참된 인생은 회색빛(그레이)이라고 이야기한다. 불확실하고 불분명하지만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인생의 참모습이라는 것이다.

아프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 <그레이 아나토미> 한 장면
ⓒ 채널CGV
여기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등장인물들처럼 다양하고 풍부하고 독특하다. 시즌2의 6회에는 기차의 전복 사고로 커다란 금속 파이프가 몸을 관통한 남녀가 나온다. 얼굴도 모르는 남녀는 마치 서로 마주보고 있는 듯한 상태에서 금속 파이프로 몸이 연결된 상태라 둘 중 한 사람의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수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둘 중 한 사람은 죽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누구를 선택한단 말인가?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버크나 데릭이라면, 아니 금속 파이프가 몸을 관통하고 있는 환자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죽어야 내 앞의 사람이 산다면? 내 앞의 사람이 죽어야 내가 산다면? 이러한 순간에 어느 누가 명확하게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틀림없이 확실한 선택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버크와 데릭이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듯이.

기억에 남는 또다른 장면. 베일리는 조지에게 이미 심장 박동이 멈춰 도착한 환자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은 다해 보라고 한다. 조지는 그것이 경험을 쌓기 위한 것이냐고 하지만 베일리는 정답은 그게 아니라고 한다. 마침내 할 방법을 다 쓴 이후에 결국 사망 선고를 내린 조지는, 보호자 앞에 서서야 정답을 깨닫는다. 바로 보호자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의사는 모든 환자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플 때 아프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이고, 현실 속의 우리들이다.

나의 장밋빛 인생, 아니 우리들의 회색빛 인생, 모두들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때로는 고민하고, 때로는 절망할지언정 때로는 웃는 날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많이 울어도 다시 일어나는 메러디스처럼 모두들 "파이팅!"이다.

덧붙이는 글 | 티뷰 기자단 기사입니다.


#그레이아나토미#메디컬드라마#미국드라마#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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