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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스키를 타고 들어가고 있는 참가자들.
갯벌스키를 타고 들어가고 있는 참가자들. ⓒ 김준
이사하야 역 뒤편에 있는 작은 버스 옆에서 40대 후반쯤 되는, 키가 훤칠한 남자가 종이를 들고 뭔가 확인하며 사람을 기다리는 눈치다. 50대를 훌쩍 넘겼을 아저씨가 허름한 가방을 매고 인사를 하며 버스에 오르고, 60대 할머니는 작은 손가방을 들고 반갑게 악수를 하며 버스에 오른다.

버스 안에는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 20여명이 설레는 표정으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참석한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한 후 이날 답사할 장소와 간단한 자료를 나누어주고 버스는 출발했다. 참석한 사람들 확인, 도시락 주문, 자료 준비 및 배포까지 마친 남자는 드디어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가고시마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사또 교수로 갯지렁이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연구자였다. 그가 이날 답사가이드였다. 자못 흥미를 끄는 부분이다. 국내에서도 가끔 전문답사를 할 경우 교수들이 가이드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실무를 맡아하며 가이드까지 겸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이사하야만은 물론 아리아케가이 갯벌이 그의 연구 현장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책을 통해서 알았다.

'가탈림픽'(갯벌올림픽)으로 유명해진 카시마

2007년 카탈림픽 포스터.
2007년 카탈림픽 포스터. ⓒ 김준
이사하야시에서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이 사가현 카시마(鹿島)였다.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 너머로 널따랗게 갯벌이 얼굴을 드러냈다. 가는 도중에 이사하야 간척지가 내려다보이는 '만남의 광장'에서 물막이 이후 갯벌과 갯벌생물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방조제 밖 어촌마을에서는 바지락 작업이 한창이다. 작은 작업용 트럭을 운전하며 갯벌로 들어서는 할머니와 그릇을 옆구리에 낀 서너 명의 아줌마들이 어깨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바다로 내려온다. 갯벌에서도 목이 좋은 곳에 지금도 이용한다는 원시어업 '독살'(石干見漁, 쓰구이)이 잘 보전되어 있다. 바지락을 '아사리'라고 부른다. 세도나이가이가 굴양식으로 유명하다면 아리아케가이는 바지락양식으로 유명하다. 아리아케가이 갯벌에서 줄지어 돌을 놓거나 대나무를 세워 양식장을 구분해 놓았다. 여기도 마을 간 양식장 구분이 있는 모양이다.

이날 방문한 카시마는 일본의 '갯벌올림픽'으로 유명한 곳이다. 2005년부터 지역활성화 차원에서 시작된 가탈림픽('가타'는 갯벌의 일본말이며, 올림픽과 결합해 'GATLYMPIC'이라는 합성어를 만들었다). 일본에서 간만의 차이가 가장 큰 아리아케가이의 간석지를 이용, 갯벌에서 펼치는 스포츠라 할 수 있다.

카탈림픽이 주목받는 것은 '포럼카시마'라는 지역민간단체가 올림픽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작은 지역행사로 시작된 것이 일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포럼카시마'는 카시마시의 수산업은 물론 농업과 역사자원을 연계한 생태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포럼카시마'와 함께 갯벌체험을 관광상품으로 연결하려는 나나우라지구진흥회(七浦地區振興會)의 노력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매년 오사카, 히로시마의 많은 학생들이 단체로 체험을 하고 있으며, 여름철에는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인구 2만명을 겨우 지키고 있는 작은 시를 찾는 관광객이 매년 1만 명을 훨씬 넘어 2만여 명에 이른다.

아리아케 갯벌보전 위해 노력하는 카시마시

쓰보카키를 이용해 망둑어를 잡는 어민.
쓰보카키를 이용해 망둑어를 잡는 어민. ⓒ 김준
2007년에도 5월말 카탈림픽이 계획되어 있다. 참가비 500엔이면 선수로 참여할 수 있으며, 구경은 무료다. 갯벌올림픽이 개최되는 곳인 카시마시 갯벌해변에 마련된 갯벌올림픽 장소에는 갯벌체험장, 전망관, 식당, 특산품판매소, 농수산물판매소, 샤워장 등 각종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농수산물을 비롯한 특산품 판매소는 지역 농촌부인회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행사를 위한 예산의 규모가 우리 돈으로 1억원 내외라는 점이다. 특히 가탈림픽을 통해 짱뚱어를 상징화한 이미지 창출에 성공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러한 시민단체와 지역주민이 함께 추진하는 갯벌올림픽과 갯벌 체험 관광사업은 일본에서도 좋은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카시마시는 아리아케 갯벌보전을 위해 오폐수정화시설 설치, 갯벌염습지 보호구역지정은 물론 국제적인 철새보호 네크워크에도 가입했다. 특히 2002년부터는 소학교 3학년 이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천오염, 쓰레기 재활용, 갯벌과 바다오염 등 환경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카시마 갯벌의 짱뚱어들.
카시마 갯벌의 짱뚱어들. ⓒ 김준
이번 갯벌체험 참가비로 점심을 포함해 2500엔을 지불했다. 이사하야시에서 가고시마까지 왕복교통비와 갯벌썰매 체험비 그리고 전문가에게 갯벌생물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사토 교수는 매년 1~2차례 갯벌체험을 안내하고 있다. 지역신문과 함께 추진하는 갯벌답사에는 적지 않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보통 1박 2일의 환경교실은 아이들과 보호자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1박에 2식을 제공하며 성인은 5천엔, 중학생 이하 아이들은 3천엔의 참가비를 받고 있다.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갯벌스키와 망둑어잡이 체험, 온천, 지역주민과 교류회, 만조시 망루에 올라가 그물을 들어 올려 고기를 잡는 '다나지부'체험, 바지락 등 조개류의 해수정화 실험 등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이사하야 10년을 맞아 특별히 마련한 것이다. 인터넷과 광고만을 통해서 모집했는데 2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카시마까지 가는 길에 이사하야만 간척지와 방조제 밖 어업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을 방문했다. 참가자 중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20대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아이들을 데리고 참가한 가족도 2팀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이사하야시, 나가사키시, 운젠시, 시마바라시 등 아리아케가이 인근에서 살거나 살았던 사람들이다.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에게 갯벌을 보여주기 위해서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카다스키(뻘썰매)를 타다

갯벌스키를 타는 참가자들.
갯벌스키를 타는 참가자들. ⓒ 김준
카시마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것은 '도시락'(오밴도)이었다. 도시락은 현지 주문을 원칙으로 한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이들의 도시락 문화에 놀라움과 즐거움을 느낀다. 기차역과 시내 곳곳에 마련된 도시락 파는 가게가 있고, 종류와 가격도 다양하다. JR이나 사철 등 기차여행을 하면 좌석 앞에 다양한 아침도시락 메뉴들이 리플릿으로 만들어져 꽂혀 있다.

카시마에 들어서자 갯벌을 따라 늘어서 있는 스탠드와 샤워장이 눈에 들어온다. 스탠드에 올라서자 바닷물이 빠진 갯벌이 운동장처럼 펼쳐져 있고, 드문드문 주민들이 갯벌에서 썰매를 타며 뭔가를 잡고 있다. 스탠드 한쪽에는 잘 말려진 뻘 썰매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고, 아래쪽에는 금방 갯벌에서 나온 어민이 썰매를 씻다가 사토 교수를 보고 반갑게 맞는다.

식당에 마련된 도시락 옆에는 일본 특유의 주먹밥이 한 덩이씩 놓여 있었다.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점심을 먹고 나자 참가자들은 주섬주섬 갈아입을 옷을 꺼내들고 샤워장으로 들어가더니, 체험장에서 제공한 발가락이 두 개인 갯벌신발을 가지고 나온다. 발목이 꽉 조이도록 만들어진 갯벌신발은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이다. 갯벌신발은 양발을 신 듯 신축성이 있고, 발목까지만 싣도록 되어 있어 무릎 깊이로 빠지는 곳에서도 벗겨지지 않고 갯벌을 느낄 수 있다.

카시마 갯벌의 생물들로 꾸며 놓은 버스승강장.
카시마 갯벌의 생물들로 꾸며 놓은 버스승강장. ⓒ 김준
드디어 갯벌스키를 한 개씩 받았다. 사토 선생님이 직접 타면서 방법을 알려주었고, 지역 어민은 갯벌에서 주의할 점을 일러주었다. 이곳 갯벌은 우리나라의 고흥이나 신안일대의 갯벌처럼 입자가 곱고 깊은 곳은 허리까지 빠진다.

어민들은 일찍부터 갯벌스키를 타고 망둥어와 짱뚱어를 잡거나 대나무로 어살을 막아 고기를 잡았다. 좀 멀리 나가서는 김 양식을 하기도 했다. 물길이 있는 곳은 배를 타고 나가기도 했지만 갯벌을 이동하는데 뻘썰매 만큼 요긴한 이동수단도 없었다.

갯벌올림픽의 발상도 뻘썰매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민들의 생업활동과 겨울철 대표적인 스포츠 스키를 그대로 갯벌에 적용한 것이다. 지난 2006년 전남 신안군 증도에서도 갯벌올림픽을 개최한 적이 있었지만 프로그램의 개발과 진행과정에서 많은 개선점이 드러났다.

갯벌올림픽에는 일본전역의 갯벌어업을 하는 어민들 중 200여명이 선수로 참가한다. 인구 2만 명의 작은 어촌 카시마가 일본은 물론 한국 등 갯벌이 발달한 나라에 이름을 알린 것은 갯벌올림픽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카시마는 다양한 갯벌체험과 갯벌교육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뻘스키에 무릎을 올리고 몸의 중심을 옮긴 다음 다른 다리로 갯벌을 내디뎠다. 30cm쯤 나가다 멈춘다. 아이를 태운 스키는 움칠하더니 움직일 생각이 없다. 옆에 있던 어민이 보란 듯이 발을 박차며 갯벌로 미끄러진다. 모두들 부러운 눈길로 쳐다본다. 젊은 여자참가자는 스키에 배를 깔고 엎드려 수상스키 출발하듯 두 팔로 갯벌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간다. 참가자들은 옷은 물론 얼굴에 까지 온통 개흙으로 범벅을 하고서 조금씩 이동할 수 있었다.

체험을 마치고 갯벌생물들을 설명하는 가고시마대학의 사또교수.
체험을 마치고 갯벌생물들을 설명하는 가고시마대학의 사또교수. ⓒ 김준
카시마 갯벌체험장 옆 특산품 가게.
카시마 갯벌체험장 옆 특산품 가게. ⓒ 김준
짱뚱어 캐릭터에 사로잡히다

사토 교수는 갯벌생물을 채집하고 위해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작업 중이다. 스키를 타지 못한 노인들은 스탠드에 앉아서 구경을 하고 일부 참가자들은 망원경이나 쌍안경을 가지고 갯벌생물이나 새들을 관찰하고 있다. 빠지지 않는 갯벌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관찰을 하기도 한다.

1시간여가 지났다. 사토 교수의 신호에 따라 모두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각자 잡아온 갯벌생물들을 채집함에 모았다. 어민이 잡아온 짱뚱어와 망둑어도 모아졌다. 참가자들은 샤워장으로 이동해 따뜻한 물로 개흙을 씻어냈다. 샤워장은 탈의실과 따뜻한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전부다. 물론 샴푸나 비누를 사용할 수 없다. 이 물이 곧바로 갯벌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짱뚱어 캐릭터를 이용한 상품.
짱뚱어 캐릭터를 이용한 상품. ⓒ 김준
옷을 갈아입은 참가자들이 다시 스탠드로 모였다. 이제부터는 사토 교수의 갯벌 현장강의가 시작된다. 사토 교수는 수년 동안 이곳에서 갯지렁이를 비롯한 저서생물을 연구해왔다. 그의 풍부한 연구경험과 어민들의 일상생활을 결합한 강의는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눈이 퇴화된 망둑어와 툭 튀어나온 짱뚱어를 가지고 어민들의 생활과 어구 그리고 조류의 먹이사슬까지 이야기한다. 이사하야만이 막히고 갯벌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등 이야기가 끝이 없다.

이제 즐거운 쇼핑시간이다. 인근에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다. 우리나라 기념품 가게에서 볼 수 있는 상품하고는 다르다. 우선 가게 안에 있는 대부분의 상품이 이곳의 특산물로 만든 것들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짱뚱어를 형상화한 다양한 소품들이다. 비싸지 않고 쉽게 집어갈 수 있는 가격에, 귀엽고 실용성까지 갖춘 것들도 있다.

각종 해산물들도 모두 이곳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다. 해산물뿐만 아니라 카시마에서 생산된 농산물도 나와 있다. 우리의 경우 설악산에서 여수 향일암 기념품 가게에 이르기까지 관광지 이름만 다를 뿐 상품의 차이는 없다. 우리가 일회성 '기념품'을 판다면, 이들은 '지역문화'를 팔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리아케가이#카탈림픽#갯벌#카시마시#갯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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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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