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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통령의 상심이 큰 모양이다. 노무현 정부를 실패로 규정하려는 어떠한 움직임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던 청와대에서 이번에 대통령이 직접 '실패'를 거론하고 나섰다.

대통령이 지난 7일 청와대브리핑에 직접 올린 글에서 '정치인' 노무현이 좌절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그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정치인이었기에, 정치인으로서의 실패는 대통령으로서의 실패보다 더욱 근본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좌절'의 원인으로 열린우리당의 분당 위기를 들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그가 정치인으로서 가장 큰 이상으로 삼은 정계개편을 상징하고 있었으며, 그 붕괴는 그 이상의 붕괴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분당의 책임을 당을 깨고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을수록 답답함이 가슴을 옥죄어 온다. 그의 진정한 정계개편을 이미 산산이 부수어버린 당사자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꿈은 무슨 의미였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꿈꾸어온 정계개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이번 그의 글에서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진정으로 국민의 이해를 반영하고 사회적 갈등을 풀어내는 정치, 지역주의를 정치인의 권력욕을 위해 이용하는 정치가 아니라 정말 국민과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경쟁하는 정치, 그래서 정말 건설적인 대안을 생산해내는 정치,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 꿈꾸는 그런 정치.

그렇다면, 그런 정치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답은 금방 나온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은 그 대안을 선거를 통해 선택하고 선택받은 정치인은 그에 맞게 실천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실천에 비추어 국민은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선택권을 행사하면 된다.

이런 상식에 비추어볼 때 지역주의 극복 방법도 명료하다. 즉 출신 지역이 아니라 정책과 대안이라는 실질적 선택기준이 제시될 때 지역주의는 비로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선택기준이 없는 한 아무리 제도적인 개혁을 한다 해도 지역주의라는 기존의 선택기준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수가 없는 것이다.

지역주의 대체할 기준, 노무현 정부가 무너뜨렸다

▲ 노 대통령은 200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서민생활 안정과 양극화 문제 해결 등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식료품점을 30여년간 운영해온 이종순씨가 TV 생중계화면를 통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래도 지난한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구체적'은 아니더라도 '경향적'으로 가치와 대안에 기초한 선택기준이 있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진보'와 '보수'가 그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제도권내 정치를 통해서 전면적으로 반영되고 구체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진보'는 대내적으로 소외계층과 서민의 사회적 권리를 더욱 중시하고, 복지를 지향하며, 대외적으로 북한과의 화해를 통한 한반도 평화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리고 '보수'는 대내적으로는 부의 집중에 관대하며 경쟁을 중시하고 성장을 우선시하며, 대외적으로 북한과의 화해보다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이런 경향적인 두가지 방향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함으로서 '진보'적 방향에 대한 동의를 표출한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동안 이런 국민의 민주적 선택을 철저하게 무시함으로서 그나마 남아있던 '경향적' 선택 기준마저 철저히 붕괴시켰다.

예산 좀 증가했다고 복지정부? 미안하다, 틀렸다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대통령은 그래도 복지예산을 몇 퍼센트 늘렸다면서 이른바 '복지정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기준에서는 영국에서 복지국가의 기반을 무너뜨렸다고 하는 대처정부도 '복지정부'가 될 수 있다. 대처 정부 아래에서도 어쨌든 복지예산은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처 정부 때도 복지예산이 증가했던 것은 실업 증가, 고령화, 전통가족 해체 등등으로 증가하는 사회적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핵심은 사회적 요구에 비해 예산 증가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노무현 정부도 복지정부가 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급속하게 진행되는 양극화·고령화· 비정규직 증가에 비해 그나마 증가했다는 복지예산의 규모는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다. 급증하는 사회적 요구에 비해 초라한 복지예산은 국민의 고통의 총량이 증가하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획기적 예산 증대가 어려웠다면 어떤 정책적 방향전환이라도 이루어 냈을까?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복지 정책'이란 고령화에 대한 유일한 대책인 국민연금을 더욱 깎고 국민의 권리여야 할 의료는 더욱 시장화시키는 것이었다. 복지정부라고 하기에는 낯부끄러운 것들 뿐이다.

한미FTA, 결정적인 보수의 길로

▲ 지난 4월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에서 한미FTA 저지 범국본 대표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밝게 웃고 있는 '죽음의 동맹' 사진을 해머로 부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외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라크전 참전은 어쩔 수 없다 백번 양보한다 치더라도 북한 핵위기 등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일방적인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 독자적인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역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에 전격 합의해주고 이를 위한 미군 기지이전에는 국민을 쫓아내고 국고를 지원해주고 있다.

국민의 민주적 선택에 대한 결정적인 배신은,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한미FTA였다.

보통 설문에도 많이 사용하듯이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를 때 자주 사용되는 기준은 '유럽 북구형 사민주의 국가를 지향하느냐' '미국형 자유시장 국가를 지향하느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라는 미국과의 경제통합 협상을 강행함으로서 미국형 자유시장 국가를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을 뿐만 아니라 향후에 사민주의 국가를 지향할 수 있는 길마저 아예 봉쇄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백여 가지의 법과 제도를 고쳐야하는 이 협정이 전면 시행된 이후 그 방향전환은 극히 어려워질 것이다. 이미 출발부터 통상협정에 한정하는 한-EU FTA는 한미FTA와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당신이 배신한 것은 지지자 뿐이 아니다

▲ 지난 2003년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이 때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자를 배신하면서 국가를 위한 결단을 내렸다"고 했지만 그가 배신한 건 지지자 뿐이 아니었다. 국민의 선택, 나아가 어렵게 쌓아온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선거를 통해 그나마 진보적 '경향'을 선택했던 국민에게 분명한 보수의 극단을 보여주면서 한국 민주정치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정치적 선택 기준을 완전히 무력화시켜 버린 것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열린우리당이 붕괴되니 '정계개편'의 꿈이 무너진다고 통탄한다. 이름부터 정치적 정체성이 매우 불분명한 그 정당 자체가 무슨 그런 큰 의미가 있었는지부터 매우 의문스럽다. 게다가 그에게 다른 사람을 탓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 꿈을 이미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자체를 무색하게 만든 것은 노무현 바로 그 자신이다.

덧붙이는 글 | 김보영 기자는 영국 요크대학에서 박사과정으로 사회정책과 실천에서의 정치 사상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정계개편#복지#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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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지역및복지행정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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