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슨 일이기에 장로께서 저러는 걸까? 저 놈이 뭘 도둑질이라도 했나?”
“그러게 말일세. 그런데 어차피 저렇게 아무 것도 없이 산 쪽으로 도주했다면 배가 고파서라도 마을로 돌아올 텐데.”
장정들은 마을로 돌아오며 이해가 가지 않는 방금 전의 일을 곰씹어 보았다.
“그래! 이게 아닐까?”
장정들 중 하나가 손뼉을 딱 치며 갑자기 배를 잡고 웃어 젖혔다.
“그 놈이 급히 밥을 쳐 먹고 또 밥을 받아 가려다가 들킨 거야!”
“에이 실없는 놈. 아무렴 장로께서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며 잡으라고 했을까. 내가 보기에 가끔 오던 놈이 아니라 낯을 못 봤던 놈이더라고. 저 멀리 수루 마을에서 온 놈이 아닐까. 그 놈들이 가끔 공으로 빌어먹으려 한다던데.”
“그렇다고 해도 왜 장로께서 그렇게 기를 쓰고 쫓으라고 한 걸까?
“여기서 일하고 밥 얻어먹으려다 들킨 것이겠지!”
“에끼 이 사람아 분명히 우리와 같이 일을 했으니 무작정 그냥 빌어먹으러 온 놈도 아닌데 장로께서 그렇게 매몰차게 하겠나?”
셋은 마을 어귀에 이르러 각각 흩어져 곳곳에 여러 일을 돌보고 있는 나머지 아홉 명의 장로들에게 하달의 회합소집을 알렸다.
“족장께서 고작 그런 일로? 네가 뭘 잘못 안 것이 아니냐?”
“분명 그리 전하라 하셨습니다.”
“괴이한 일이로고.”
해가 진 후 아홉 명의 장로들은 마을에서 가장 큰 움집인 하달의 집에 들어가 둥글게 파여진 화로 터를 두고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둘러앉았다.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도록 하달이 오질 않자 장로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마악이라는 자가 넌지시 말을 던졌다.
“아무래도 이번 일 말이외다. 삼십년 전 일이 마음이 걸리네.”
“삼십년 전이라면 번쩍이는 칼을 들던 이들이 쳐 들어오는 때를 말하는지요?”
장로들의 나이는 다섯이 40대였고 세 명이 30대였다. 말을 꺼낸 장로와 족장인 하달만이 50대였다. 그런 그들에게도 삼십년 전의 일은 충격적이었지만 단지 잊고 싶은 기억일 뿐이었다.
“삼십년 전의 일이라면 땋은 머리를 한 놈들이 쳐들어온 걸 얘기 하는지요?”
마악이 조용히 머리를 끄덕이자 나머지 8명의 장로들은 크게 동요를 일으켰다. 비록 그들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이었지만 그 충격과 공포만큼은 평생토록 떨쳐 버릴 수 없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과 삽 십년 전의 일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그건 내가 설명하지요.”
마침 움집으로 쑥 들어온 하달이 큰 기침 소리와 함께 소리치자 순식간에 주위는 숙연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두레마을을 이끄는 10명의 장로는 형식적으로 대등한 존재였고 족장은 그들을 대표하는 형식적인 우두머리로 여겨졌지만 가장 나이가 많으면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하달만큼은 그러한 예전의 관습을 넘어서 두레마을의 실질적인 통치자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하달에 대해서는 9명의 장로들조차 예전의 관습을 내세워 대등한 관계임을 함부로 내세울 수는 없었다.
“그 때는 내 나이 스물 다섯째 되던 해였습니다.”
하달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옛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달의 나이 스물다섯 되던 해, 그 날도 두레마을에서는 추수가 한창이었다.
“저기 우리를 지켜보는 놈들이 있구먼.”
벼를 베어내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한눈을 판 이의 말에 그 당시에는 모두들 타박을 놓을 뿐이었다.
“어서 일이나 해!”
하달이 땀방울을 훔쳐내며 소리치자 이를 말했던 사람은 무안한지 웅얼거렸다.
“옆 좀 돌아본다고 일에 방해가 되나 뭘 그리 퉁명스레 말하나.”
당시 하달에게는 아이 둘과 임신한 아내가 있었다. 그로인해 예전보다 많은 양의 곡식을 배정받게 된 하달은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일했고 옆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두레마을의 부주의는 닥쳐오는 위협에 그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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