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장안의 화제라 합니다. 저도 지인의 권유로 읽기 시작했는데 손에 쥐는 순간 내려놓을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읽는 이를 빨아들이는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격렬한 전투장면 하나 없는 <남한산성>은 예정된 장소도 아닌 곳에 고립되어 주전파와 주화파가 말로 싸우며 항복으로 내몰리는 상황들은 문장이 처절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이 절절해서 마음을 쥐어짭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오른 <남한산성>을 요즘 시대와 빗대어 말하는 이들이 많더군요.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 구도를 시장 개방이나 정치 개혁 문제 또는 전시작전권 문제로까지 끌어오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를 중년 남성 독자들의 맺힌 마음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남한산성>을 내려놓고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이덕일 지음/역사의 아침)을 읽었습니다. 한쪽은 소설이고 다른 쪽은 평전이자 역사서지만 두 책은 서로 잘 맞는 짝이었습니다. 읽는 순서 역시 시대로는 역순이지만 <남한산성>에서 <유성룡>으로 이르는 길이 많은 사색들을 불러일으키고 답을 줍니다.
왜 조선은 예상되는 청의 공세 앞에서 그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을까요?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거나 군사적 대책을 세웠어야 할 텐데 이렇다 할 반격 한 번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져 내립니다.
병자호란은 조선이 치른 첫 국제전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치열했던 임진왜란을 먼저 겪었죠. 임진왜란을 겪으며 왕실이 국경 밖으로 나갈 위기까지 겪었던 조선은 정신 차리고 다시 있을 침략에 대비책을 마련했는가? 그랬다면 <남한산성>에서 묘사했던 무기력하고 처절한 나날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 기간 내내 전시 내각을 이끌었던 유성룡은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하나는 당연히 일본과의 전선이었고 다른 하나는 피난지에서조차 당파 대립을 그치지 않았고 승전을 한 장수를 내치고 도망친 장수를 상줄 정도로 정세에 어두웠던 조정과의 전선이었습니다.
말이 좋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이지 유성룡의 정치적 입지는 취약했습니다. 전쟁 발발과 동시에 지도력을 읽은 선조는 유성룡의 능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그를 견제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려했고 조선의 정치적 특징이자 평화 시엔 장점이라고도 할 붕당정치는 결전을 이끌어야 할 전시내각의 발목을 잡는 불안요인이었습니다.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유성룡의 대책은 총력전이었습니다. 침략자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자원을 끌어내야 하고 특히 싸우고자 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이끄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도 훈련도감을 설치했고, 양반에게도 병역을 나눠지도록 했고, 전쟁에 공을 세운다면 신분의 벽마저 넘게 해주려 했습니다.
소설 <남한산성>에서 되풀이되는 말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적혀있던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다'입니다. 풀자면 임금은 남한산성에 갇혀있고 청나라 대군은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있으나 싸우려는 양반이나 백성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임진왜란을 극복하기 위한 유성룡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병자호란의 인조는 남한산성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표적이 되고 제물이 됩니다. 지금까지는 선조의 성격이나 통치 방식에서 그 이유를 찾아 왔지만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의 저자는 전쟁극복을 위해 유성룡이 제안했던 개혁방안들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으로 유성룡의 고초를 이해합니다. 공교롭게도 유성룡이 탄핵받은 날은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날로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어찌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날이 되었습니다.
유성룡의 진가를 꿰뚫어 본 이 중에 정조 임금이 있습니다.
"저 헐뜯는 사람들을 유성룡이 처한 시대에 처하게 하고 그가 맡았던 일을 행하게 한다면 그런 무리 백 명이 있어도 어찌 유성룡이 했던 일의 만분의 일이라도 감당하겠는가?" 라고 꾸짖었습니다.
역사엔 만약이 없다지만 <남한산성>에 유성룡이 있었다면 주전파와 주화파의 다툼은 하나의 에너지로 통합되어 당면한 적을 향해 분출되었을 것입니다.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은 좋은 대중 역사서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료를 바탕으로 사실을 꼼꼼하고 알기 쉽게 풀어 나가면서도 저자만의 관점으로 핵심을 찔러 줍니다. '설득과 통합의 리더'라는 부제가 붙었듯이 경영이나 자기 계발을 목적으로도 자기 몫을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유성룡이 지은 <징비록>을 새롭게 펴냈으니 짝지어 읽어도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장익준 시민기자는 토클(TOKL, 국어능력인증시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