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민 와서 사람을 사귀려니 모두 골프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에서 제일 큰 공기업 말단직원을 거친 저야 물론 골프채를 잡아보지도 못했지만 어디서 다들 배웠는지 마냥 골프 이야기뿐입니다.

세탁소에도 지금은 봄철이라 날씨가 좋아져서 캐나디언 골프광들의 골프셔츠가 막 밀려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골프를 즐기는 손님들은 죄다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날에 골프 셔츠를 들고 오더군요.

아마도 날씨에 따라 골프장으로 몰리는 성향이 비슷한 듯싶습니다. 그냥 물세탁으로 돌리고는 프레스로 깨끗이 다려주기만 해도 돈이 되니 싫은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와서 골프를 배우게 된 동기가 생각나서 그리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세탁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계모임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계원은 아니었지만 정보교환과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상견례도 필요한 듯하여 몇 번 모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옆사람이 넌지시 묻더군요.

"골프 하십니까?"
"아뇨, 골프채도 아직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순간 제가 좀 처진 느낌이 들더군요.

자연히 좌중은 골프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두 패로 나뉘었고 골프패들은 그저 골프이야기로 끝이 나지 않더군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그냥 듣고만 있으려니 은근히 위화감이 들더군요.

'골프를 쳐야만 대화축에 끼일 수 있는 게 아닐까….'

한국에서는 골프는 아스라이 먼 이야기였는데 이곳에 오니 그냥저냥 이 사람 저 사람 어디서 배웠는지 골프이야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또 다른 지인들의 모임에서 부부동반 골프모임을 정례화하자는 안건이 급조되었고 우리 부부는 등 떠밀려 골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때는 엄동설한이었지만 그래도 세탁소 인근에 체육관이 있었고 겨우내 '인도어 골프 레슨'이 개설되어 있었습니다.

척 보면 골프를 아주 잘하게 보이는 백인 코치에게 제가 먼저 등록하고 골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씩 알아갈수록 골프란 스포츠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골프레슨을 받는 중에 골프 가족모임도 나가게 되었는데 골프에 대한 저의 완전 무식함이 드러나는 순간에 좌중은 포복절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골프채 세트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골프채가 있는지도 몰랐고 아마 처음부터 그런 번거로운 사실을 알았더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참 레슨을 받는 중에 아내에게는 여성용 골프채가 따로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내심 골프채 세트 하나를 구입하여 부부가 공동으로 사용하리라 생각했는데, 남자용 여자용 골프채가 따로 있다니!

"그러면 공은 어떻게… 골프장에서 주남?"

이 어리석은 질문에 또 한 번 좌중은 포복절도를 했고 나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대체 공이 있어야 게임을 하지….'

골프공도 초보라서 많이 준비해야 하고 중고 골프공으로 시작하라는 지도를 그때 받았죠.

세탁소 손님 바지에서 나오는 요상하게 깎아 만든 나뭇조각도 골프공을 잔디밭에 고정시키는 장치라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이언으로 휘두르기도 쉽지 않았고 그냥저냥 배우는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3주를 배우고는 아내를 설득하여 백인 코치에게 배우게 했습니다. 아내는 억지로 배우는 골프를 마음에 안들어 했지만 그래도 모처럼 이민 와서 가입한 가족모임이라 이듬해 골프시즌에 맞추어 기초를 배워야 했습니다.

다행히 겨울철은 세탁소 비수기라서 시간이 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체육관에서 골프레슨을 끝마쳤습니다.

이제 골프채 세트를 구입해야 했죠. '골프 타운'이란 골프 용품점에서 '코브라'라는 중저가 남자용 골프채를 마련하고 문을 나서는데 맞은편 상점에 큰 간판이 보이더군요.

브랜드명은 없지만 제조업체에서 만든 세트를 헐값에 팔더군요. 속으로 좀 안쓰러웠지만 워낙 예상을 뛰어넘는 골프 준비라서 아내용은 그냥 그 엉터리 매장에서 적당히 사주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감지덕지 좀 작게 만들어진 여성용 세트를 처음으로 만져보게 되었죠.

▲ 서울의 한 골프장 모습(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고는 날짜가 잡혀서 다섯 부부가 필드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부부는 골프장에 머리털 나고 처음 가 본 것이지요.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아내는 제발 이야기도 꺼내지 말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군대생활에서 한 '유격훈련'보다 힘들었습니다. 운동화처럼 생긴 골프화를 조금 큰 것을 신어서인지 미끄러운 잔디에 신발은 벗겨지려 하지, 공은 이리저리 좌우로 날지, 뒤에서 다른 팀이 늦다고 불평하니 공 주우러 사방으로 내달린 기억밖에 나지 않습니다.

아내는 다른 조에 편승했는데 팀장이 연방 "뛰어! 뛰어!" 소리치는 통에 거의 넋이 나간 듯 보였습니다.

결국 아내는 18홀을 끝내지 못하고 그냥 팀을 따라다녔고 저는 골프코스가 그리도 많고 지루한지 처음 알았습니다.

뒤풀이로 중국식 뷔페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아내는 너무도 고단한지 별로 음식을 먹지 못했고 저도 햇살에 너무 노출되어서인지 열이 올라서 식욕도 나지 않더군요.

어쨌든 그날로 아내는 골프계를 영원히 은퇴했고 저는 오기로 두어 번 더 필드로 나섰습니다.

세 번째인가 나선 골프장의 마지막 홀은 요상하게 골프장 클럽하우스 건물 입구 주차장 옆에 배치되어 있었죠.

'언제 18홀을 다 도냐…' 내심으로 얼른 마치고 싶은 마음뿐인 제가 휘두른 공이 그냥 주차장으로 뻗어가더니 아스팔트에 맞아 크게 한번 튀어오르더군요.

어느 차 지붕에라도 튀었는지 대충 살폈지만 공은 보이지 않고 흠이 간 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형, 그냥 갑시다!"

흥이 깨진 양 팀장이 그 말을 남기고 얼른 골프채를 챙기더군요.

그래서 저도 그날로 골프계를 은퇴했습니다.

골프채도 녹이 스는지 아직 모릅니다. 한번도 그 이후에 골프채 세트를 열어보지 않았으니까요.

무엇보다 아까운 것은 골프장에서 5달러만 주면 빌려 쓰는 골프채 운반용 카트까지 제 것, 아내 것 2대를 샀는데 부피도 커서 세탁소 한편에 처박아 둔 것이 자리를 차지하여 괘씸합니다.

그래도 심심하면 아내와 저는 마주보고 깔깔 웃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요.

"골프도 했단다. 우하하…."

덧붙이는 글 | 캐나다 이민자의 골프 경험담입니다.


#골프#세탁업#캐나다이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