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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이 잠시 틈을 줄때마다 마을 사람들의 기원과 북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다가오는 환란을 막아주시옵소서. 이 마을의 안위를 지켜주소서."

마을 사람들의 기원 소리가 울려 퍼지자 유란은 신명나게 몸을 흔들어 대다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굿거리를 계속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어린 아이 있었네. 아이의 아버지는 난폭해서 어머니를 구박했다네. 그 아이 아버지의 아버지는 그 죄를 씻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네. 너러렁셩 아롱디리… 아이의 아버지는 사냥터에서 새어머니를 구하셨네. 그가 사냥한 짐승은 사람 짐승이었다네 어허디뎌 어히랴 디려."

굿은 해가 진 후 한참 동안이나 계속 되었고 마을 한가운데에서는 수많은 횃불이 피어올랐다. 하달의 말이 없었다면 마을 사방을 돌며 아침부터 시작하여 해질 녘에 마칠 굿이었지만 한번으로 줄어든 대다가 늦게 시작하는 터라 유란의 잡설과 춤사위가 끝난 이후에도 마을사람들은 제사상에 올려진 음식을 나눠먹으며 왁자하게 앞으로의 일을 논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 무렵, 하달과 십 삼인의 장정들은 활과 화살 통을 챙겨들고 조용히 목책의 문을 연 뒤 마을 밖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여기서 적을 기다린다."

하달의 말에 장정중 하나가 아무렇게나 그 자리에 앉아 목책 너머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마을을 보며 부러워하며 말했다.

"이거 그 놈들이 오지 않아서 그냥 돌아가면 굿도 못보고 비웃음만 사는 거 아냐?"

하달이 즉시 그 장정에게 주의를 주었다.

"누가 여기서 앉아 있으라고 했나? 여기에만 모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네. 둘씩 짝을 지어 흩어져 몸을 숨기고 기다리는 것이네! 자네는 이름이 뭔가?"

장정은 비시시 일어서며 움츠려든 목소리로 말했다.

"처얼이라 하옵니다."

"처얼 너는 나와 함께 수시로 돌아다니며 행여 경계를 게을리 하는 자가 없나 볼 것이야. 알겠나?"

"네? 예엡…."

하달은 요소요소에 인원을 배치한 후 적을 기다렸다. 하달과 그 일행이 위치한 곳은 도랑 너머로 활을 쏘아 넘겨 상대를 맞출 수 있지만 상대는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땋은 머리를 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슬그머니 도랑주위로 몰려들었다. 이미 도랑에 놓여져 있던 다리는 치워진 상태라 그들은 목책 가까이까지는 접근 할 수 없었다. 도랑의 폭은 사람이 한번에 그냥 뛰어 넘기에는 조금 어려웠고 그 깊이는 어른의 머리까지 왔기에 그냥 넘는다면 목책위에서 쏘아대는 화살로 인해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터였다.

"내가 쏘라고 할 때까지는 절대 쏘지 마라."

하달은 몸을 낮추며 옆으로 말을 전달시켰다. 도랑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은 다시 돌아갔고 두레마을의 장정들은 팽팽했던 긴장감을 잠시 풀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저들을 봤을까요?"

처얼이 걱정스럽게 묻자 하달은 코웃음을 쳤다.

"저놈들이 지금 당장 목책 위로 기어오른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은 제사음식을 나눠 먹으며 흥청대느라 경계는 게을리 하고 있을 걸세. 그런 낌새를 눈치 채기 전에 우리가 나서서 이곳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거네. 알겠나?"

하달의 각오와는 달리 두레마을 장정들은 좀 전의 애타는 긴장감을 떠올리며 정말로 화살을 쏘아대야 할 상황이 오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그러나 얼마 후, 수풀 속에 매복하고 있던 두레마을의 장정들은 온 몸이 오싹 얼어붙은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와! 와! 와!

어둠 저편에서 상대의 숨통을 조이는 것만 같은 단음절의 함성소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넘실거리는 불길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일제히 고함을 치며 횃불까지 든 채 당당히 두레마을의 목책 앞으로 다가오는 땋은 머리 족의 행렬이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최항기#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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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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