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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친정아빠께서 보내신 앵두
ⓒ 전복순
세 살 베기 둘째아들과 살을 비벼가며 놀고 있는데 1시쯤 되었을까 초인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밑에 첫째 동생이었습니다. 동생은 시골집에서 오는 길이라며 양손에 가득 무언가가 들려있었습니다. 바로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앵두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친정시골집 뒷산에는 앵두열매로 풍성할 때입니다. 어릴 적 한참 모내기에 바쁘셨던 어른들은 앵두를 딸 시간이 없어 제때 앵두를 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뒷산의 앵두는 항상 동네 아이들의 몫이었습니다.


빼곡히 열린 앵두는 우리네 마음을 참으로 행복하게 만들었고 별 간식거리가 없었던 그때는 우리에게 최고의 간식거리였습니다. 때묻지 않고 순수했던 그 시절이 새록새록 기억에 묻어납니다.

김치통에 가득 담긴 앵두를 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한 움큼 손에 쥐어 입속에 집어넣고는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한참 바쁠텐데 언제 앵두를 이렇게나 많이 따셨대니."
"아빠가 딸들 줄라고 팔도 아프신데 반나절 동안 땄데…."

"뭐? 팔이 또 많이 아프신 거야?"
"어제도 병원 가서 물리치료 받고 그러셨대."

동생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예전에도 어깨에 심한 통증이 심하셨던 터라 더 악화되신 건 아닌지 걱정이었습니다. 앵두를 먹다 말고 전화기 앞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아빠께 안부전화도 안 드리고 무심한 딸이었기에 손이 부끄러워 한참을 망설이다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 농사일에 바쁘신 아빠
ⓒ 전복순
"아빠 둘째에요."
"응 ○○가 앵두 가져갔냐?"

"예 아빠 지금 먹고 있어요."
"팔도 아프신데 뭘 이렇게 많이 따셨어요. 엄마 아빠 드실 것만 따서 드시죠."

"너그들 생각이 나서 땄재. 오래두면 상헌게 후딱 먹어라이."
"근데 아빠 팔은 이제 괜찮으세요."

"병원서는 일을 허지 말라고 허지. 시골 농사짐선 어떻게 일을 안허냐 해야제."
"아빠 바쁜 일 끝나면 엄마랑 전주로 한 번 올라오세요. 제가 엄마 아빠 좋아하시는 장어 사 드릴께요."

"응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전화 한 통화에 좋아하시는 아빠 목소리가 저를 더욱 부끄럽고 가슴 아프게 합니다. 갈수록 늙고 쇠약해지는 아빠, 어릴 적 내 기억 속 아빠의 모습은 매일 호통만 치시고 칭찬보단 항상 질타와 꾸중이 먼저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사랑보다 마음의 상처를 주는 아빠의 그런 모습들이 너무도 싫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 아빠에게 우리 가족은 점점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려 아빠와 더 멀어지게 된 것 같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새 할머니 밑에서 모진 세월을 견뎌오신 아빠, 어쩌면 우리보다 더 외롭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채 고독한 삶을 살아오신 건 아닌지 왠지 모를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이젠 아빠의 모습에선 호통과 질타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함께 흘려보내신 것 같습니다. 아빠 마음속에 표현하는 사랑만이 남은 거 같아 그저 행복합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사랑을 주지 않은 게 아니고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아빠는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아빠는 우리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고 계셨다는 걸 저는 이제야 압니다.

올해 가을이 되면 벌써 아빠의 환갑이 돌아옵니다. 세 자매들이 4년 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이참에 효도를 할 생각입니다. 중국에 사는 언니가 이번에 나오면 같이 다니면서 시골집에 없는 전자제품이며 이것저것 사드리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아빠 엄마께서 기뻐하실 생각에 우리 자매들은 무척 행복하답니다. 역시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은 두 배로 크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아빠 회갑 땐 꼭 두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빠 사랑합니다!"

#앵두#아버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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