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현모양처 아내 지수(왼쪽)과 남편의 불륜 상대인 화영.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현모양처 아내 지수(왼쪽)과 남편의 불륜 상대인 화영. ⓒ 여성신문
[박윤수 기자] "또 불륜 드라마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안방극장을 불륜 드라마가 휩쓸고 있다.

그동안 불륜 드라마는 주부들의 시청시간대인 아침드라마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 매일 저녁시간대의 일일 드라마(<나쁜 여자 착한 여자>), 평일 밤 주간 드라마(<내 남자의 여자>), 주말 저녁 드라마(<행복한 여자>) 등 모든 시간대에서 방송되고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는 모두 '여자'를 제목에 내세우고 있다.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묘사

언론수용자운동단체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미디어열사)은 최근 발표한 모니터 보고서에서 현재 방송중인 불륜 소재 드라마들이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가해자인 남편은 사라지고 ▲성적 묘사가 수위를 넘고 있으며 ▲불륜을 극복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자녀가 겪는 문제를 외면하는 등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물론 불륜이 우리 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인 만큼 불륜을 소재로 했다고 해서 나쁜 드라마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의 드라마들은 불륜녀를 고소득 전문직의 매력적인 여성으로 그리고, 현모양처 아내를 가정적이고 성실하지만 여자의 매력을 잃은 '무성(無性)'의 존재로 대비시키며 불륜의 원인으로 매도하고 있다.

KBS 드라마 <행복한 여자>의 지연(윤정희)은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시댁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직장과 시댁 양쪽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남편 준호(정겨운)와 불륜에 빠지는 하영(장미인애)은 부유한 집안 출신의 도발적 매력을 지닌 여성이다.

MBC 드라마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건우(이재룡)와 서경(성현아)은 각자 성실한 배우자를 가진, 둘 다 의사라는 고소득 전문직의 엘리트들이고, <내 남자의 여자>의 준표(김상중)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교수, 화영(김희애) 또한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의사 출신이다.

예전의 불륜 드라마에선 바람 피우는 남편은 '죽일 놈'이라고 욕을 먹었고, 피해자인 아내는 시청자들의 동정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에선 불륜을 둘러싼 두 여자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그려지고, 둘의 설전 속에서 진짜 가해자인 남편은 이렇다 할 피해도 입지 않고 죄책감 없이 당당하다. 바람 피우는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사랑을 채워주지 못했다고 변명하면서 말한다. "그 여잔 날 남자이게 해줘요"라고.

너무 심한 성적노출·육탄전·욕설

드라마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세영(왼쪽)과 건우 부부.
드라마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세영(왼쪽)과 건우 부부. ⓒ 여성신문
최근 불륜 드라마들의 또 다른 특징은 과감하고 본격적인 성관계의 묘사다. 지금까지는 이를 정면으로 드러내지 않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내 남자의 여자>는 불륜 자체에 집중하고 첫회부터 격렬한 러브신으로 시선을 끈다.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건우와 서경은 아예 별장을 마련해놓고 주말부부 행세를 한다.

육체적인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 여자들 사이의 폭력적인 육탄전, 욕설이 난무하는 대사, 김희애의 노출 심한 의상 등을 감안해볼 때 15세 등급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의견이다.

옥선희 미디어열사 대표는 "불륜은 성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며 필연적으로 육체관계를 동반하는데 15세 연령에게 시청을 허가해도 되는지 의문"이라며 "등급을 정할 때 소재가 어떠하든 표현 수위만을 문제삼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원 문화평론가는 "<내 남자의 여자>의 관전 포인트는 '화냥년'의 속옷차림뿐"이라고 꼬집는다.

분명 대안은 있다

남편의 불륜을 겪은 아내들은 어떤 해결책을 찾아야 할까.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여성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들 드라마 속에서 아내들은 불륜의 피해자에서 벗어나 홀로 서기보다, 급하게 다른 가족으로 편입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한다.

<행복한 여자>에서 지연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았을 때 임신 사실을 감추고 이혼을 고집한다. 인터넷 쇼핑몰을 경영하고 딸을 키우며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듯하던 그는 이내 재혼을 결심한다. <내 남자의 여자>의 지수는 남편을 붙잡지 않는다. 아들과의 모자가정을 선언하지만 그에게도 이내 새로운 상대가 나타난다.

옥선희 대표는 "불륜 사건을 겪은 여성이 이를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보다 전남편과 아이 양육, 이에 따른 감정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함으로써 주변인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 사이에서 고통받는 아이의 인격은 무시되고 유린된다고 주장한다.

이 시점에서 김진숙 대검찰청 부공보관이 검찰 전자신문 '뉴스프로스'에 실은 글을 곱씹어볼 만하다.

"극에서의 불륜은 대부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지만 현실은 훨씬 냉혹하다. 극은 대부분 불륜의 시작과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그 끝이 어딜까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냉정히 말한다면 불륜의 끝은 아마도 교도소일 것이다."
#내 남자의 여자#ㅊ나쁜 여자 착한 여자#행복한 여자#드라마#불륜
댓글

(주)여성신문은 1988년 국민주 모아 창간 한국 최초의 여성언론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