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게 하소서
여기서 그 유명한 아리아 '울게 하소서'가 나옵니다. 감옥에 갇힌 알미레나가 부르는 곡입니다. 아르간테의 환심을 거절하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날 울도록 내버려두오, 잔인한 내 운명이여, 자유를 갈망하도록…."
영화 <파리넬리>에서 나왔던 곡이고, 장엄하고 슬픈 곡조의 노래는 다른 곳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곡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낯선 오페라가 홍보에 중점을 둔 내용이 이 노래이기도 했습니다.
우연하게도 이 글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던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잠시 본 형사 드라마 <히트>에도 이 곡이 흘러나오더군요.
그러나 리날도와 알미레나는 끝까지 지조를 지키고 어떤 유혹에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말고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을 눈치 챈 아르간테와 아르미다는 서로 미워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 사이 사령관 고프레드는 다른 마법사(이 오페라에서 유일하게 한국인이 맡은 배역)의 힘을 빌려 리날도와 알미레나를 구합니다. 그 뒤 아르간테와 아르미다는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합니다.
그리고 두 세력 간의 일전이 벌어집니다. 승리는 물론 고프레드와 리날도의 몫. 그리고 리날도는 알미레나와 혼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헨델의 원작이 그런건지 아니면 연출자가 그런건지는 모르겠으나 십자군 사령관 고프레드는 마지막 장면에서 적군인 아르간테와 아르미다를 용서합니다. 그렇게 두 쌍의 연인이 맺어지는 것으로, 그러니까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습니다. 끝 부분에 나오는 네 주역 배우들의 합창은 오페라의 매력을 만끽하게 합니다.
마지막의 이 용서의 장면이 저는 좋았습니다. 십자군 원정이 성지회복이라는 순수한 종교적 이유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서로 같이 살게 되는 화해가 좋았습니다. 권력을 지닌 이의 힘은 이런 점에서 중요합니다. 그들의 용서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울게 하소서.
바로크를 알다
헨델은 자신의 고국이 아닌 영국의 런던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을 그곳에서 발표합니다. 이 오페라의 특징은 바로크적 상상력을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바로크라는 말 자체가 '기괴한', '장식적인'의 의미를 뜻하는 17~18세기의 양식을 말합니다. 르네상스 이후 새로운 양식을 찾던 이들의 모습을 총칭합니다. 바로크 건축물은 그래서 아주 외관이 화려합니다.
평지가 많은 프랑스와 달리 우거진 숲이 많은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환상적인 이야기, 그러니까 요정, 마법사 등의 이야기가 문학작품 속에 잘 등장합니다.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리날도>도 이탈리아적 환상이 가득 합니다.
자연적 배경이 문학작품에도 영향을 끼친 경우인데, 프랑스는 바로크 양식 이후의 왕권이 뒷받침된, 잘 정련되고 질서가 있는 인공적 양식인 고전주의에 한껏 빠져듭니다. 그래서 프랑스 문학작품에는 환상적 요소가 적습니다.
헨델은 더욱이 관객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 더욱 현란한(바로크적인) 요소를 만들어냅니다. 아마 카스트라토를 중심배역에 세운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지.
그런데 바로크 음악의 특징으로 '정서론'을 들 수 있다 합니다. 즉,
"바로크인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음악의 힘이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데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있었다......바로크 시대의 표현방식이란......특정 정서를 상징하는 기호 역할을 함으로써 누구든지 인식할 수 있는 지극히 표준화된 표현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두려움을 표현할 때는 낮은 음역에서, 하행하는 선율로, 잦은 쉼표와 함께 불협화음을 사용하고, 기쁨을 표현할 때에는 빠른 템포에, 셋잇단음표, 짧은 트릴, 꾸밈음들을 자주 사용한다."
-<서양음악사 100장면1> 중에서.
그러고 보니 바로크에도 형식이 있었군요.
저는 그렇게 이곳에서처럼 마법사, 인어, 마술궁전 등이 나오는, 깊은 숲속에서나 어울릴 이런 요소들이 좋습니다. 프랑스도 기나긴 고전주의의 시대를 거치고 그 반발로 낭만주의가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러나 양식은 돌고 도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반발과 대립을 통해서 예전의 것을 되살리고 고쳐나가고 그러면서 새로운 양식도 만들어나갑니다.
바람둥이가 되다
첨단시대에 첨단의 원형 건축물 안에서, 그것도 보조 출연자들이 힘들게 끌며 가는 탁자 위에서 성악가들이 왕이나 여왕이나 입을 법한 화려한 의상을 갖춰 입고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그 점이 어떤 면에서는 신기하기도 합니다.
오페라 극장 안은 그 시설이 최첨단이든 아니든 무대에서 펼쳐지는 내용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 속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실, 예를 들면 정의나 사랑 같은 고래(古來)의 가치들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그걸 보며 다시 인공의 현실 속에서 자연의 심성을 키우며 살아갑니다. 예술의 힘이지요.
베르디나 푸치니가 아닌, 변방도 한참 변방에 위치한 오페라 작품을 첫경험으로 만났습니다.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첫경험인데요.
자료를 찾으며 오페라가 어떤 것인가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될까요? 여전히 오페라는 제게 먼 세상이지만, 왜 오페라를 보고 즐기는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수확이라 하겠습니다. 서울 촌놈이 횡재했습니다.
오페라에 중독된 사람은 말합니다.
"예를 들어 '희망'이라는 단어를 관객이 정말 가슴 벅차게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작곡가가 그 부분에서 어떤 악기들과 어떤 화음을 사용했는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무대 위의 성악가가 '희망'이라는 단어를 노래할 때 그 표현에 딱 들어맞는 음악적 분위기 때문에 뭔지 모를 전율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바람둥이들이다. 그들의 사생활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관심분야의 폭이 넓고 곁눈질을 잘하며 인생에서 '한 우물'을 파지 않는 사람들이 종합예술인 오페라를 사랑한다. 오페라에 총체적인 애정을 느끼려면 문학, 음악, 연극, 미술, 기술 분야에 골고루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혹을 이겨내면 사람은 강해진다. 그러나 유혹을 받아들이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오페라, 행복한 중독> 중에서.
그래서 제가 보기에 위 책의 저자 이용숙 님 말고도, 제가 언급한 책의 저자들 문호근, 김학민 님도 다 '바람둥이'입니다. 저요? 이제 이제 한 작품을 보았고, 자료 좀 읽었고, 다음 오페라는 언제 볼지 기약도 안되어 있는데요. 그러나 이렇게 이곳저곳 해찰거리는 습관에 있어서는 저도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합니다.
삶 속에 오페라적인 요소가 혹시 있지 않을까요. 뻔히 알지만 격식을 차리고 화려한 치장을 하고 걸음걸이도 달리 하고 조금은 우아한 몸짓을 하는 경우 같은 거… 그렇게 우리도 한가닥 문화를 살며 작은 힘을, 위로를 얻습니다.
연출자의 사인 공세를 뒤로 하고 나옵니다. 예술의전당 마당 저어기, 무대 주역은 아니지만 오케스트라의 한 파트를 담당했을 법하게 몸짓 큰 악기 케이스를 짊어지고 가는 이가 보입니다. 그이의 퇴근길. 오페라에 빠져 한몫을 한, 그래서 제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그이도 이제 일상을 살아가겠지요. 오페라틱한 삶을 꿈꾸면서요.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의 사진은 <리날도> 공연을 주최한 '한국오페라단'의 허락을 받고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