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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상상변주곡' 주제 발표를 맡은 인하대 김명인 교수
여섯 번째 '상상변주곡' 주제 발표를 맡은 인하대 김명인 교수 ⓒ 이정환
민주주의 정착 과정으로 알고 있던 지난 20년

먼저 김명인은 "우리가 세계사적 반동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화덕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비록 "1987년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혁명적 변화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 정착 과정으로 알고 있던 지난 20년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체제'가 남한 사회에 관철된 시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70년 오일 쇼크로 결정적 위협을 감지한 세계자본은 이미 당시부터 공공부문 등 사회 전 영역을 상품화하는 새로운 노선을 개발하고 실현시키고자 했다"고 전제한 김명인은 박정희의 죽음에서 참여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혁명을 성취"했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에 의해 부르주아 민족국가가 해체될 운명에 놓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명인은 '문민정부'를 "OECD와 WTO 가입을 통해 신자유주의 체제 정착을 위한 지반을 다진 정권", "경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결국 정치적 민주주의조차 불구로 만들어버린 국민의 정부",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밀어붙임으로써 시장 독재 체제를 완성시킨 지금의 참여 정부"라고 각각을 규정했다.

특히 "국민의 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삼는 햇볕 정책"에 대해서도 김명인은 "이미 남북 관계는 군사적 긴장을 통한 적대적 의존 관계에서 교류 협력을 통한 비적대적 의존관계 단계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며 "훌륭하긴 하나 정말 엄청난 것은 아니라는 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명인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20년 전에 가졌던 인간 해방에 대한 희망을 신자유주의의 주구가 되어 버린 제도권 민주화세력들에게 도매금으로 팔아 넘겨 버리고 대부분 공동체에서 개인의 영역 속으로,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 속으로 도피하고 투항했다"는 말로 지난 20년 동안 일어난 일을 정리했다.

"이른바 '운동권'도 신자유주의 세력과 유착"

이제는 '화덕 속에서 펄펄 뛰는 오늘의 현실'과 마주 할 차례다. 김명인은 "1997년 IMF 사태를 계기로 완전히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의 일부분이 된 한국은 이제 세계적 자본 각축이 일어나는 하나의 지역 시장에 불과하다"며 "미국은 자국 출신 초국적 자본이나 자국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시장으로서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객관적 조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설가 방현석 씨
소설가 방현석 씨 ⓒ 이정환
이어 김명인은 "다만 미국 자본 이익 실현에 있어 경제적, 경제외적 기득권이 살아 있는 특수 지역이 한국 시장"이라며 "중국 등의 영향력을 독점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한미FTA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한미FTA 체결을 "균질화(성분이나 특성이 고루 같게 됨)-미국화 프로젝트의 구조적 정착"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체적 조건은? 그는 "정치 엘리트에서부터 자칭 진보 인사들까지 모두 한 편으로는 분배정의와 복지를 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성장동력 발굴론, 사회 전 부문 경쟁력 강화론, 개방 불가피론 등을 말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뒤섞여 헝클어진 현실 인식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시장독재 대항 주체 구성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압도적 우위 속에서"는 "변혁적인 정치 역량 형성 역시 기대하기 어려우며", 이런 현실에서 "시민사회운동·노동계급운동 영역 또한 신자유주의 세력과 이데올로기적·제도적 유착 상태에 빠져 있다"고 이른바 '운동권'을 함께 비판했다.

"운동권이란 말이 나오면서 변혁운동 혹은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사람들이 대중으로부터 분리되어 타자화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 김명인은 '신자유주의 세력과 유착의 예'로 "민주화 이후 운동의 준 국가기구화와 관료화, 자기 재생산을 위한 보수화, 대중으로부터의 고립"등을 꼽았다.

김명인은 지식인 사회에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나 스스로도 '선진대안론'에 참여한 것처럼, 한국 지식인 사회가 본래의 변혁성을 잃고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며 "이제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를 용인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덕분에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이민자, 실업자 등 각종 소수자들은 아무런 조직도 대변 세력도 없이 맨몸으로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 체제에 맞서고 있는 형편"이라며 "신자유주의 경쟁 대열에 합류할 수 없었던 민중들은 양극화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불안과 공포 속에 떠돌고 있다"고 못박았다.

민중의 이름으로, 하나의 연합으로

암울한 진단은 끝났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의 시대에도 희망이 있는가"란 물음의 대답을 찾기 시작했다.

김명인은 "자기 영역 확장에 필요하다면 낡은 이데올로기 대립이나 적대적 분단 체제도 얼마든지 붕괴시킬 힘이 있는 체제가 신자유주의"라며 "이에 대한 저항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민족국가의 자주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민족적 자주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정통 맑시즘이든 비정통이든, 환경·생태주의든 근본주의 페미니즘이든,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로부터 삶의 자유를 지키려는 모든 움직임들은 복수의 대안, 복수의 세계를 인정하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반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 세력의 '연대'를 이야기했다.

토론자로 나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그는 주제 발표에 "전반적으로 동의한다"며 '민중론'에 대해서는 "실천 주체로서의 민중이 누구를 말하는지 다소 모호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토론자로 나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그는 주제 발표에 "전반적으로 동의한다"며 '민중론'에 대해서는 "실천 주체로서의 민중이 누구를 말하는지 다소 모호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 이정환
이처럼 '자주'와 '연대'를 신자유주의 체제 극복을 위한 '과제'로 제시한 김명인은 이를 위해 "반신자유주의 투쟁 주체의 구성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맥락에서 민중 개념을 다시 복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70~80년대적 민중 개념은 근대 부르주아 사회와 세계 체제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는 이념형적 주체 개념이었다"면서 "이는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지구상의 모든 지역 인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 상당한 적합성을 지닌다"고 민중 개념 귀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끝으로 김명인은 "신자유주의 시장독재 체제의 현재적·잠재적 희생자들이 민중의 이름으로 하나의 '연합'을 이뤄 전면적으로 또 세계적 규모로 저항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최대치의 전망이자 희망"이라며 "저항 투쟁은 동원이 아닌 참여로, 중심화가 아닌 탈중심화로, 위계화가 아닌 평등화로, 동일성이 아닌 차이의 힘으로, 그러면서도 긴밀한 네트워크적 연대를 통해 전개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로 '희망이 있는가'란 질문의 대답을 마무리했다.

한편 '풀로엮은집'이 기획·진행하는 '상상변주곡'은 '아름다운 저항' 등의 방현석 소설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으며,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와 6월민주항쟁 20년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했다.

7회 토론회는 '세계화 시대에 구상하는 진보 운동의 문화 전략'을 주제로 5월 31일(목) 저녁 7시에 서울 배재정동빌딩 B동 1층에서 열린다. 조정환 문학평론가가 주제 발표를 맡을 예정이다.

방현석 "민족문학작가회의 하루 빨리 해산해야"
"최소한의 연대 틀만 남기고 분화 바람직"

주제 발표에 이어 토론에 나선 방현석 소설가(아래 호칭 생략)는 "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되돌아 볼만한 주제 발표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방현석은 "지나치게 주체적인 역량과 역할이 과소 평가된 측면이 있는 역사 해석이란 생각이 든다"면서 "자칫 주체적인 노력들까지 미국의 세계 질서 재편 과정의 부속물로 취급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명인의 '87보다 못한 후퇴' 주장에도 방현석은 "광주 항쟁이나 6월 항쟁에서 나타난 대중들의 요구는 혁명적·변혁적 이데올로기 수준에 이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7·8월 노동자 대투쟁의 핵심 사안이 노조 결성 등 최소한의 권리였던 것을 감안하면, 87년 이후 민주노총 합법화 등을 통해 노동 대중의 요구 역시 거의 실현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방현석은 "이른바 '운동권'에게 갖고 있는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세력들'이란 대중들의 부채 의식 역시 노 정권 당선 등을 통해 해소됐다고 본다"며 "이미 몫을 성취하고 부채를 청산했다고 생각하는 대중에게 그 이상을 요구한다면, 바로 그것은 그 이상 꿈을 꾸는 사람들의 몫 아니겠냐"는 반문으로 '운동권'에 대한 비판으로 눈을 돌렸다.

방현석의 비판은 "민중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다음 단계로 상정할 수 있도록 과연 어떤 작업을 해왔나. 아무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오늘의 현실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는, "90년대 저쪽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세력을 재편하는 동안, 이쪽은 진영 개편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자성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최근 '민족문학작가회의' 단체 이름 변경을 둘러싼 논란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방현석은 "정체성이나 지향성 등에서 동일성을 찾기 어려워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작가회의란 '조합'은 명칭 논란을 벌일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해산해야 한다"며 "각 분야로 나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연대 틀만 남겨 놓는 형태로 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방현석은 "주제 발표 덕분에 '운동권'이란 말이 한참 뒤에 나온 것을 깨닫게 됐다"며 "운동권이란 말이 나오면서 '망했구나', 그런 '딱지'를 받아들인 순간에 이미 운명을 다했던 것"이라고 이른바 '운동권' 호칭 문제에 공감을 표시했다.

당연히 '386'이란 호칭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방현석은 대학생이 아닌 노동 계급은 80년대 세대가 아니라는, 그런 민중 배제적인 규정이 어디 있느냐"면서 "386이란 용어를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80년대 운동권은 끝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386이란 개념을 수용하지 말았어야 한다. 광주항쟁 세대가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며 "이것도 양보한다면, 적어도 80년대 세대라 불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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