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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행동에 앞서 대부분의 경골어류에서는 다양한 구애행동을 볼 수 있다. 이것을 사람이라는 포유류와 대비하여 비교해 보자.

사람의 경우는 이메일이나 러브레터·러브콜 또는 문자메시지 등을 날리다가 데이트라든가 선물을 주고받고 나중에는 사이가 깊어져서 악수나 포옹에 이어 키스로까지 진전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이다. 하지만 언어와 문자가 존재하지 않는 물고기 사회에서는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이나 러브레터 등이 없다. 그렇지만 물고기에게도 무언가 의사표시를 하는 최소한의 수단은 있다. 수놈이 암놈의 주의를 끌기 위해 나타내는 행동을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로 해석한다면 물고기도 사랑의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수컷이 암놈을 유인할 때 내는 소리는 러브송에 해당하며, 이것은 개구리 등의 양서류나 조류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물고기에서는 그 사례가 드물다. 하지만 어류에게도 분명히 그 예가 있다. 다만 물고기에게는 성대(聲帶)가 없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우는 것이 아니라 부레를 신축시켜 소리를 내거나 어떤 부분의 뼈를 서로 비벼서 내는 소리이다.

조기나 성대는 부레를 부풀려서 커다란 소리를 낸다. 산란장에 모인 조기 한 마리가 ‘구~구~’ 하는 소리를 내면 그것이 무리 전체에 퍼져서 시끄럽게 합창이 시작된다. 수심이 얕은 산란장에서는 배 위에서도 그와 같은 대합창을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기파시(波市)로 들썩이던 곳들이 서해에 많았다. 봄철 조기가 산란을 위해 북상할 때는 마치 개구리 울음처럼 소리를 내어 운다. 전라도 칠산도 앞바다 일대에 조기가 올라올 즈음이면 철쭉꽃이 피고, 전북 위도로 올라올 즈음이면 살구꽃이 활짝 핀다. 이 때는 멀리서 조기가 몰려오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어부들은 긴 대롱을 물에 넣고 조기 무리가 ‘구욱 구욱’ 하며 몰려오는 소리를 귀로 듣고 그물을 내려 잡았다. ‘꾸룩꾸룩’ 우니까 놈들의 영어명도 크로커(Croaker)이다.

아귀에 가까운 물고기로서 대서양 서부에서 나는 물고기의 한 종류(나트토드 피시) 역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컷이 싸울 때는 마치 신음소리와 같은 저음을 내며 구애를 할 때는 배의 기적소리와 같은 고음을 낸다. 산란기의 수놈은 돌 밑이나 조개껍질 등에 둥지를 만들고 기적소리를 내어 주변에 자기 집과 영역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암컷을 부른다. 이 신호에는 몇 종류의 패턴이 있다. 암컷을 유인하는데 유효한 방법으로는 1분에 12~25회의 단속음을 내는 것이다. 암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수놈이 가져온 먹이를 주는 행동은 새들의 세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방식이지만, 물고기 세계에서는 구체적으로 그와 같은 예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컷이 그 주변에서 먹이를 먹는 암컷을 쫓아내지 않고 묵인하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는 수컷이 암컷에 주는 선물이라고 하겠다.

아프리카의 탕가니카호에 사는 틸라피아 종류 하나는 조류(藻類)를 주로 먹는 조식성(藻食性)으로 평소에는 암수가 따로따로 영역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산란기가 가까워오면 암컷은 수컷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영역에 들어간 때보다도 왕성하게 조류를 먹는데도 수컷은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결코 내쫓지 않는다. 그것 역시 수컷이 암컷에게 주는 선물이다.

물고기의 가슴지느러미는 포유류로 따지면 팔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 구조로 보아 상대를 껴안는다든가 악수를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괭이상어는 교미를 할 때 가슴지느러미는 서로를 껴안는 데 쓴다. 이것을 물고기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물고기답지 않은(?) 행위라고 파악할 것인가?

한편 보리멸낚시에 가끔 낚이는 양태는 전형적인 바닥고기로 평소에는 바다 밑바닥을 돌아다니지만 산란기에는 암수가 V자형으로 의지하며 해저에서 벗어나 헤엄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은 가슴지느러미로 악수하며 랑데부를 하는 것이다.

키스를 잘 하는 물고기로서 유명한 컷이 키싱구라미라고 하는 열대어이다. 이 물고기의 입은 열면 흡반처럼 되어 있어서 부착조류를 뜯어먹기 좋게 되어 있다.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하고 입을 맞추는 동작을 사람들은 애정표현으로 보지만, 사실은 서로 영역을 다투는 일종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구애행동의 하나로서 주둥이를 맞추는 물고기도 있다. 벤자리과의 물고기인 군평선이는 산란에 앞서 바다 밑바닥에서 암수가 서로 마주하고 반은 열린 입끝을 맞대거나 서로 배를 맞대는 구애행동을 한다. 사람 못지않게 찡한 놈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다랭이·참치류로 대표되는 유영형의 물고기는 한 마리의 암놈을 여러 마리의 수컷이 뒤따르는 것으로 구애행동이 시작된다. 일본 긴키대학(近畿大學) 수산연구소에서 1979년에 세계 최초로 참치가 양식되었는데, 그 양식장에서 산란 및 추미행동(追尾行動, 산란기 수놈이 암놈 꽁지를 따라 다니는 것)을 관찰했다. 1m가 넘는 거대한 몸뚱이로 물을 뿜어올리며 유영하는 박력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물고기처럼 회유하지 않는 물고기 중에서도 마치 공작 수컷이 그 화려한 꼬리를 펴서 암컷을 유인하듯이 수컷이 지느러미를 펴서 자신의 위세를 암놈에게 보이는 정면과시(正面誇示)·측면과시(側面誇示)를 하는 구애행동을 관찰할 수 있었다.

양태 중 한 종류는 암수가 서로 붙어서 중층을 유영하기 전에 수컷은 암컷에 대해 측면과시를 반복한다. 그 사이에 제1등지느러미를 활발히 굽혔다 폈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 지느러미에 있는 특유의 반문은 성숙한 수놈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때로는 수놈이 똑같은 수놈에 대해서 측면과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우리네 호모처럼 암놈과 수놈을 혼동한 것이 아니다. 다른 수컷 즉, 연적을 견제하기 위한 공격적인 행위이다.

산란상(産卵床, 둥지)을 만들고 그 속에서 암놈이 산란하게 하는 자리돔류의 수컷은 시그널 점프(Signal jump)라고 하는 독특한 구애행동을 한다. 이것은 둥지 위에서 수컷이 격렬하게 아래 위로 오르내리는 동작을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유영을 함으로써 암컷의 주의를 끄는 것이다. 시그널 점프의 높이는 종류에 따라 다르며 그 차이는 수컷 몸의 크기와 대략 비례한다. 체장이 수 cm밖에 안 되는 자리돔 종류의 일부는 5~10cm 정도밖에 점프를 하지 못하지만 15cm 정도로 몸이 큰 자리돔 종류 중에는 1.5~2m 가량 높이 점프를 하는 것도 있다. 이 차이는 포식자인 적과의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애행동에는 양태처럼 체색이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수컷이 뚜렷하게 체색 또는 반문을 바꾸는 예도 적지 않다. 암컷을 뒤따르는 전갱이 종류(또는 シマアジ, 시마아지) 가운데 하나는 수컷의 머리 부분이 검은 색으로 변색되며 때로는 몸 전체가 검게 된다. 가다랭이 수컷은 암놈을 뒤쫓는 추미행동을 할 때 체측에 검은 세로줄이 나타난다.

산란기를 맞은 자바리 종류 가운데는 수놈의 몸이 희게 변하고 등에서 몸 중앙부에 걸쳐 여러 개의 폭넓은 가로띠가 나타나는 놈이 있다. 이 띠 모양과 흰 바탕색의 대조는 측면과시 때 특히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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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및 중국 고대사 연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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