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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어떤 생각을 하는가. 아마도 하얀 가운을 입고 머리를 다 깎은, 앙상한 얼굴로 온 몸 여기저기에 튜브를 꽂은 채 시들어가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혹은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접하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많이 봐온 터, 우리는 흔히 암 환자를 ‘곧 죽을 누군가’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암 환자들에게 있어 일종의 폭력 행위이다.
물론 암 환자들은 죽는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 역시 죽는다. 우리 역시 모두 최후의 순간에는 지난 인생에 다시 없이 노쇠해 있을 것이며, 바로 코앞에 죽음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사실, 암 환자들이 모두 코앞에 죽음이 닥친 것은 아니다. 이것이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이다. 의사가 암을 선고(이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가)하고 나면 그 때부터 암 환자의 삶은 불붙은 시한폭탄처럼 급박하게 끝이 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실제로 암에 걸리고 나서도 훌륭한 아버지, 어머니, 아들과 딸로 웃고 울며 살아간다. 여전히 능력 있는 조직원으로 직장에서 생활을 하기도 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며, 시를 쓰기도 한다.
암에 걸렸다는 것은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맞으나 내일 당장, 아니면 그 다음 날 당장 죽어야 하는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우리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과장된 암 환자의 모습으로만 그들을 정의하려 할까. 그것은 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불가능케 하며, 나아가 암 환자들에게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사람 취급을 받는 사회를 만들게 된 것이다.
‘불쌍해’, ‘어떻게 해’, ‘안타까워’, ‘난 아니라 다행이다’. 우리는 브라운관을 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도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있다. 쉬지 않고 심장이 요동치며, 뜨거운 피가 온 몸으로 흐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며, 그보다 더하게 사랑 받고 있다.
나의 아버지가 암에 걸리신 것은 나와 동생이 군복무 중이던 2004년 1월의 일이다. 당시 아버지는 위암 3기를 넘어선 상태이셨고, 즉각 수술을 해야 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날 밤새 부대가 있는 강원도 산골엔 유난히 눈이 많이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침낭을 뒤집어 쓴 채 웅크리고 있었다.
달리 무언가를 하지도 못했다. 그저 웅크리고만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첫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수술실로 들어가고 계셨다. 아버지는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가 고모를 바라보다가 내 손을 한번 잡았다. 수술을 하는 내내 어머니는 기도를 하다 울다를 반복하셨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수술 집도의가 보호자를 찾았다. 혹시 무어라도 잘못되었을까 싶은 생각에 어머니는 주저앉으셨고, 군복을 입은 채 내가 수술실로 들어섰다. 집도의는 하얀 천이 덮인 커다란 알루미늄 대야를 가져와서는 내 앞에서 천을 걷었다. 그 안에는 핏물을 잔뜩 뒤집어 쓴 아버지의 ‘무언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위였다. 지난 오십 해 동안 아버지를 먹여 살린 위가 대야 가득 담겨있었다. 그리고 의사는 침착하게 위의 여기저기를 펼쳐 보이며 내게 어떤 것이 암 조직인지를 설명하였다. 사실, 그런 것을 내가 보아야 알 리도 없었다. 나는 그저 아버지의 위가 참으로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시 동생은 백일 휴가도 못나온 이등병으로 아버지의 소식을 듣지 못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보름이 넘게 식음을 전폐하셨고, 잠도 주무시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 병실로 옮긴 아버지는 되려 어머니를 걱정하셨다. 낮에는 어머니가 병실을 지키고, 밤에는 내가 병실에서 새우잠을 잤다. 밤이 깊어 병실 간이침대가 작아 잠시 병원 로비 의자에 누워있으면, 앙상하게 말라붙은 아버지가 매일 매일 모르핀에 의지하시며 생을 연명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암 환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나는 숱하게 많은 날, 고통에 헐떡거리며 창백하게 시들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 3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는 지리산을 종주하시고, 한라산을 등반하셨다. 올해 안에 백두산을, 내년엔 킬리만자로에 오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지난 주엔 가족끼리 마라톤 대회에도 참석했다.
물론, 아버지가 100% 정상인과 같은 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성공적인 사례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암에 걸린 순간부터 삶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수술이 끝난 후 나는 아버지의 삶이 끝났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암에 걸렸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삶은 그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나는 것이다.
아버지를 비롯해 암이라는 병에 걸린 뒤에도 충실히 그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와 동시에 수많은 암 환자들이 이러한 것을 모른 채 스스로 삶을 체념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인이 살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세상 그 어떤 좋은 약과 좋은 치료라도 효과를 볼 수가 없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가장 좋은 약이며 가장 좋은 치료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러한 생각에 사회단체인‘구름’이라는 곳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환자들의 생명을 거짓 정보와 거짓 상품으로 유혹해 소중한 남은 인생을 훼손시키고 있는 수많은 장사치들로부터 제 2의 아버지, 어머니를 보호하고 싶었고, 홀로 방에 누워 외롭게 시들어 가고 있을 누군가에게 남은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물론, 그러한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돈이 되는 일이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꼬이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관이 없다. 영어 공부를 하고, 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따고, 시험 준비를 해서 충실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는 삶에 대해, 암에 걸리고 난 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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