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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종묘 ⓒ 이정근
"경들이 아무 소리 안 하니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이제 종묘에 들어가 송도와 한양과 무악을 고(告)하고 그 길흉을 점쳐 길한 데 따라 도읍을 정하겠다. 도읍을 정한 뒤에는 비록 재변(災變)이 있더라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점으로 결판 짓겠다는 말이다. 종묘로 이동한 태종 이방원이 제학(提學) 김첨에게 물었다.

"무슨 물건으로 점을 칠 것인가?

"종묘 안에서 척전(擲錢)할 수 없으니 시초(蓍草)로 점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척전이란 동전을 던져서 점을 치는 것으로서 일명 척괘(擲卦)라 하는 돈점이다. 조상을 모시는 신성한 종묘에서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돈점을 칠 수 없다는 얘기다.

돈점은 한꺼번에 동전 셋을 던져 1개가 뒷면이 나오고 2개가 앞면이 나오면 단(單)이라 하여 작대기 하나 모양으로 표시하고 2개가 뒷면이 나오고 1개가 앞면이 나오면 탁(拆)이라 하여 작대기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모양으로 표시하고 3개가 모두 뒷면이 나오면 중(重)이라 하여 ○로 표시하고 3개가 모두 앞면이 나오면 순(純)이라 하여 ×로 표시하는데 세 번 던져서 하나의 괘(卦)를 만들어 길흉(吉凶)을 판단하였다.

"시초(蓍草)가 있으면 좋으련만 척전은 요사이 세상에서 하지 않는 것이므로 길흉을 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느냐?"

개경을 떠나올 때 시초점을 칠 것이라 예상했으면 점 도구를 준비해 왔겠지만 전혀 뜻밖이라 제학 김첨도 난감했다.

시초점이란 중국 주나라 때부터 전래되어 내려온 점술로서 빳빳한 톱풀나무 가지 50개를 준비하여 죽통에 넣고 흔들어서 그 중 하나를 제외하고 남은 49개를 두 손으로 모아 잡고 오른손과 왼손 양쪽으로 나눈다. 여기에서 오른쪽에 남은 숫자를 헤아려 음양으로 점괘를 본다. 톱풀나무 가지 구하기가 어려우면 댓가지를 대체 이용하다 현재는 쌀알을 사용한다.

"점괘(占卦)의 글은 의심나는 것이 많으므로 정하기가 어렵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알 수 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 낫겠다. 척전이 속된 일이라 하나 중대사를 결정할 때 중국에서도 사용했었다. 고려 태조가 도읍을 정할 때 무슨 물건으로 하였는가?"

뒷말을 없애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역시 척전을 썼습니다."

정승 조준이 답했다.

"그랬다면 지금도 척전이 좋겠다."

조금 격에 떨어지기는 하지만 돈점으로 결정이 났다. 태종 이방원은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종묘에 예를 올렸다. 조상께 예를 올린 태종 이방원은 완산군 이천우, 좌정승 조준, 대사헌 김희선, 지신사 박석명, 사간 조휴를 거느리고 묘당(廟堂)으로 들어갔다.

이천우의 손끝에서 결정된 한양

묘당에 향을 올리고 꿇어 앉아 이천우에게 돈을 던지라 명했다. 이천우의 손끝에서 모든 것이 결정나는 순간이었다. 좌우를 살피며 호흡을 가다듬은 이천우가 돈을 집어들었다. 국가의 중대사가 자신의 손끝에서 결정난다 하니 이천우 역시 긴장된 모습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천우의 손끝에 모아졌다. 이천우의 손을 떠난 동전이 허공을 가르며 날았다.

임금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동전의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착지한 동전이 떼구르르 구르다 멈췄다. 한숨과 환호가 엇갈렸다. 이천우의 동전 던지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아홉 번 계속되었다. 그럴 때마다 한숨과 환호가 이어졌다. 결과는 한양이 2길(吉) 1흉(凶)이었고 송도와 무악은 각각 2흉(凶) 1길(吉)이었다. 한양으로 결판이 난 것이다.

"한양으로 결정이 났다.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종묘를 능멸하는 것이다."

태종 이방원의 한양 선언이다. 새로운 도읍지로 한양을 선택한 임금은 환도를 차질 없이 수행하라 명하고 종묘를 빠져나와 어가를 돌렸다. 광나루에 휴식을 취하던 태종 이방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무악에 도읍하지 아니하였지만 후세에 반드시 도읍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빼어난 명당 무악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
#척전#시초점#종묘#무악#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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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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