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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밤 대전 하나은행 10층 강당에서 열린 '6월항쟁 20주년' 기념대담
ⓒ 오마이뉴스 심규상
"재미있었던 구호요? 기말고사 거부하고 군사독재 끝장내자! 군부독재 타도하고 2학기엔 공부하자!"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당시의 대전지역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날을 증언했다. 7일 늦은 밤 '포럼 대전소통과 전망'이 그 날의 역사를 다시 읽고 생생한 현실인식을 위해 마련한 기념대담에서다.

참가자는 송대헌(당시 충청민주교육실천협의회) 이종명(당시 대전기독교청년협의회 총무) 임성대(충청민주운동청년연합 사무국장) 김승일(당시 대전충남 애국학생투쟁위원회 위원장)씨.

이들에게 6월은 감동 그 자체였다.

▲ 송대헌 (6월항쟁 당시 충청민주교육실천협의회)
ⓒ 오마이뉴스 심규상
송씨는 "당시 대시민선전홍보 활동을 맡았는데 선전물을 아무리 만들어도 부족해 감당할 수 없었다"며 "이때 시위현장에서 만난 제자들을 중심으로 '제자부대'를 만들어 대자보를 써서 붙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에 벽보 한장을 붙이면 시민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다. 한마디로 굉장한 감동이었다"고 회고했다.

학생시위 대열을 지도했던 김씨에게도 6월은 특별한 기억이다.

"충남대 정문이 처음 뚫릴 때 생각이 난다. 농과대 학생들이 미리 학교를 나가 있다가 전경들의 뒤를 공격해 전경대열을 교란시켰고 이때 정문이 처음으로 뜷렸다. 저녁도 안먹고 대전역으로 밀물처럼 걸어갔는데 그때 외친 구호가 '호헌철폐 독재타도'였다. 시민들의 호응 또한 대단했다. 다음 날 부터는 특별히 시위대열을 지도하지 않았다. 학생 한명 한명이 다 지도부였다. 학생들이 스스로 '기말고사 거부하고 군부독재 끝장내자', '군부독재 타도하고 부모님께 효도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

"제자부대와 함께 대자보 작전 펼쳤던 6월"

임씨는 "6월 어느 날 대전 시내에서 백골단에 의해 잡혀 경찰서로 끌려가고 있었다"며 "그 때 시민들이 '우리의 지도자를 구해내자'며 백골단에게 달려들어 구출됐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 대중의 힘을 몸소 체험했고 승리를 확신했다"고 덧붙였다.

이씨에게 6월은 동지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남아 있다.

▲ 이종명(6월항쟁 당시 대전기독청년협의회 총무)
ⓒ 오마이뉴스 심규상
"어느 날 처음으로 충남도청 앞에서 대전역까지 시민들이 꽉 찼어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청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도청문을 부수려던 상황이었어요. 그때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더니 최루탄이 수도 없이 터져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됐죠. 제 걱정은 목발을 짚고 같이 참여했던 장애인 동지에 대한 걱정뿐이었죠. 그런데 이 분이 목발을 짚고 대열 맨 앞에서 경찰측에 항의하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을 보호하려 애쓰고 있더라구요. 순간 '참으로 역사 앞에 진지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이 뭉클해 졌습니다"

항쟁 당시의 새로운 증언도 보태줬다.

6월 항쟁 당시 충남경찰국에서 시위진압 일에 관여했다는 한 참가자는 "6월 중순이후에는 서울은 물론 전남 경북 심지어 경기 지역에서까지 경찰병력이 대전으로 지원을 나왔다"며 "그만큼 대전이 다른 지역에 비해 시위를 비롯 참가자가 유달리 많았고 위협적이었다"고 말했다.

"대전에 위수령 선포하려 했던 것 아세요?"

그는 "당시 군과 경찰 수뇌부와 안기부, 충남도청 수뇌부들로 구성된 지역방위사령부에서 지역 위수령을 발령할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논의를 했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현재 삶은 6월 항쟁과 종횡으로 이어져 있다. 송씨는 이후 해직과 복직을 반복하다 지금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충남 아산의 농촌마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임씨는 민주노동당 충남도당을 이끌고 있고, 김씨는 철도노동자로 노조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 임성대(6월항쟁 당시 충청민주운동청년연합 사무국장)
ⓒ 오마이뉴스 심규상
이들이 인식하는 6월이 남긴 과제는 무엇일까?

송씨는 교사운동에 대한 성찰과 함께 민주개혁세력이 6월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수년전 가족단위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촛불시위를 보며 6월을 떠올렸다"며 "6월 항쟁때 가졌던 대중에 대한 믿음과 헌신하려고 한 그때의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도 "당시 항쟁의 주인은 지도부가 아닌 시민대중이었다"며 "그간 민주개혁세력의 고립은 항쟁의 성과를 독점하려 한데 따른 것으로 시민대중의 시대적 흐름을 일고 반영하기위한 고민에 치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시민에게 남긴 6월 과제는?

임씨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진척도에 비해 경제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약하다"며 경제적 민주주의 제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일례로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정책방향으로 추진해 완성한 정부"라며 "노 정부가 민주주의를 진척시켰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진보정치세력 형성 등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말하는 항쟁정신의 계승점은 '인간 존중'이다.

▲ 김승일(6월항쟁 당시 대전충남 애학투위원장)
ⓒ 오마이뉴스 심규상
"담배를 피우기 전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는 배려와 존중이 6월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 권리가 무시될 때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6월 정신입니다. 6월은 주권자인 국민이 권리를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끈질지게 대항해 인권의 가치와 이념을 지켜낸 투쟁이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부족한 것 같아요"

한편 대전충남 6월항쟁 20주년 사업연대는 9일 오후 3시 대전역에서 중앙데파트→ 으능정이→ 동양백화점 4거리→ 서대전시민공원까지 6월의 거리를 다시 걷는 축제를 연다.

이날 거리 행진에서는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비롯 당시의 구호가 재현될 예정이다. 이어 '다시 부르는 희망의 노래'를 주제로 축하공연도 열린다.

#6월항쟁#대전충남#6월정신#소통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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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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