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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드라마가 넘쳐난다. 그래서 불륜 드라마도 이젠 무조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밑져야 본전치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쓴잔을 마시는 경우도 적잖다. 이런 탓에 불륜 드라마 제작진은 저마다 새롭게 전개하고 구성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한창 전쟁 중이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은 불변의 법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은 있고 아내는 없다는 사실! 역으로 말하면 내연녀는 수두룩한데, 내연남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불륜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하나같이 비열하고 파렴치하다.
남자는 모두가 하나같이 파렴치!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절대적인 법칙으로 모든 남성들이 파렴치로 그려진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우선 파렴치의 선두주자는 단연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건우(이재룡)이다. 사랑을 위해 6년을 자신을 위해 살아온 부인에게 할 짓 못할 짓을 다하고 이혼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그러한 뻔뻔한 행동을 넘어서 훈계까지 할 정도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기에 당신만 고생이다'라는 식이다. 이뿐인가? <내 남자의 여자>의 준표(김상중)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지금이야 극의 후반으로 치달아 많이 정화가 된 준표가 등장하지만 극 초반에 그가 한 행동은 부인 지수(배종옥)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또한 건우처럼 당당하지 않지만 은근슬쩍 말을 돌려가면서 빈정을 상하게 하니 건우와는 또 다른 파렴치다.
얼마 전 끝난 <아줌마가 간다>의 김재광(이세청)은 거의 원조급이다. 부인을 무식하다고 욕하며 자신의 불륜에 너무나 떳떳하다. 자신의 어머니까지 설득하는 모습에선 기가 찰 정도였다. 여기에 新파렴치 인간 한 명이 더해졌다. <新현모양처>의 허명필(김호진)이 김재광과 닮은 꼴 형제다.
그는 돈 하나 제대로 못 벌어오는 아내를 구박하며, 자신이 모든 것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 다. 짜증난단다. 거기에 자신의 어머니를 꼬여내고 그도 모자라 아내에게 명언을 남겨 주부시청자들을 자극시켰다.
"집 장만하고 자식들 양육한 것은 모두 내가 돈을 벌어 그렇게 됐다. 이 집에서 유일한 물건은 네가 장만한 김치 냉장고가 전부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싶을 정도다. 이처럼 불륜 드라마 속 남편들을 파렴치로 만들면서 남성이란 동물을 본능에만 치중하는 것처럼 만드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
적어도 과거 불륜 드라마 속 남편들은 <내 남자의 여자>의 은수(하유미)의 남편인 달삼(김병세)처럼 아내에게 미안해하는 양심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요즘 남자들은 양심은 어디 갖다 팔았는지 뻔뻔하고 비열하고, 파렴치하다. 그럼, 왜 그러한 설정이 절대적인 법칙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
김수현 작가도 사회적 통념을 깨기 힘들어!
아마도 사회적인 통념 때문이 아닐까? 여성보다 남성이 불륜을 더 많이 저지르지만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면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드라마 시청자 층도 주부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월이 변해 불륜이 다양해졌다. 여성이 먼저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아지는 시점에서 현실을 묵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엄밀히 말하면 '남자는 불륜이 허용되고, 여자는 불륜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남녀차별의 문제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
특히 인기를 누리며 심리극으로 발전하기까지 한 <내 남자의 여자>도 이 문제에선 자유롭기 힘들다. 김수현 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는 제목 자체부터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와 내연녀, 아내의 이야기다. 물론 이 드라마는 대박 인기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자극적인 불륜 드라마라는 오명을 벗어나고자 불륜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심리극을 표방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여타의 불륜 드라마보다는 조금 덜 비난을 받는 편이다. 그 이유는 줄곧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와 내연녀 대 아내의 구도가 일반적인 불륜 드라마 코드였다. 그리고 그 코드는 선악구도로 이어지면서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은 악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까지 내연녀로 등장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악녀로 등장했다.
그렇지만 <내 남자의 여자>는 화영(김희애)이란 인물이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해?"라고 연신 묻는 이유를 만들어 내 단순한 악녀로 머무르지 않았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움을 자아내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는 단지 불륜 드라마가 직면하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일 뿐 어디까지나 불륜 드라마다. 그리고 역시나 불륜을 저지르는 것은 남자다. 물론 본능적인 동물에 가까운 것이 남자일 수도 있겠지만 무조건 남자가 불륜을 저지르는 불륜 드라마의 절대 법칙을 깨부수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러한 절대 법칙이 형성된 이유는 사회적인 통념이 많은 작용을 했을 것이다. 일반적은 여성보다 남성이 불륜을 더 많이 저지르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는 더욱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여성도 늘어나는 상황을 볼 때 이러한 절대적인 법칙도 변해야 한다. 현실을 반영하는 불륜 드라마를 표방한다면 말이다.
애초 이 드라마가 기획된 것은 40대의 중년의 현실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뤄냈다. 그렇지만 사회적인 통념에 철저히 기댄 절대적인 법칙까지는 깨부수기엔 힘이 들은 모양이다.
<내 남자의 여자>가 이 정도니, 다른 여타의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아내인 지수는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여타의 드라마의 아내들은 시종일관 가정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등장해 여전히 선악구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물론 <新현모양처>에서 경국희(강성연)이 지수와 이복자매처럼 행동을 비슷하게 하고는 있지만 경국희란 인물은 <아줌마 간다>의 나오님(양정아)과 <내 남자의 여자>의 지수(배종옥)와 절묘하게 섞어 놓은 캐릭터여서 진보적이지 못하다.
아내의 불륜은 언제나 사랑으로 포장
더욱이 아내가 불륜을 요즘 남자들처럼 당당히 저지르는 아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있다 해도 언제나 아내의 불륜은 사랑으로 포장하되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만큼만 묘사한다. 그것인 일종의 불륜 드라마의 룰이다.
<나쁜 여자, 착한 여자>에서 서경(성현아)이 불륜을 저지르지만 그것은 이루지 못한 첫 사랑을 이루고 싶은 욕망의 산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포장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남성들의 불륜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남편의 경우 싱글여성과 불륜을 저지르지만 아내는 언제나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른다.
이 점은 몇 년을 거슬러 올라가 불륜 드라마의 전성기를 연 <애인>에서도 그러했다. 각기 다른 배우자가 존재하고 남녀가 만나 불륜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것은 각각의 배우자가 있기에 이혼을 쉽게 결심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애틋한 사랑으로 포장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아내가 바람이 날 경우 상대 남자는 유부남이어야 한다.
이것이 룰처럼 적용되면서 남성의 불륜은 싱글여성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쉽게 이혼하고, 결혼을 감행하는 무모함과 비열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성의 불륜은 파렴치함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고 언제나 '죽일 놈'이 된다.
따라서 아내의 불륜은 쉽게 찾아보기도 힘들뿐더러 있다 해도 이루지 못한 아름다운 사랑으로 묘사되어지고, 남편과의 철저한 싸움 끝에 이혼을 해준 아내에게 멋진 남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부각시킨다. 그것은 아내의 불륜보다 아내의 새로운 사랑으로 면죄부를 주어 시청자들의 거부감을 반감시키고자 한 것이다.
<내 남자의 여자> 지수도 그러하고, <아줌마 간다>의 나오님(양정아)도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남성이 파렴치해질수록 여성은 더욱더 남녀차별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즉 '남성의 바람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허용되고, 여성은 안 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이 여전히 절대적인 법칙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 남자의 여자>도 어쩔 수 없이 몇 가지의 절대적인 법칙을 거스르지 못한 채 불륜 드라마가 직면하는 비판에서 자유롭고자 전개 방식을 비틀어 심리극으로 이끌어 간 것 뿐이다. 어쩌면 고도의 계산이 들어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불륜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금 '여성의 불륜은 왜 없냐'고 반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 동시대를 살아가는 부부의 한 단면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한다면 더욱이 절대적인 법칙을 철저하게 부수고 리얼리티를 살려야 한다.
당초 <내 남자의 여자>가 40대 중년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하는데, 조금 색다른 시도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시대의 부부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했다. 즉 진정으로 이 시대의 부부가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시청률에 의해 만들어진 불륜 드라마는 당분간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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