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을 하려거든 교회로 가라는 말이 통용되던, 기독교 입장에서는 황금의 시대가 있었다.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통일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웬만한 사회운동의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기독교와 맞닿는다. 교회의 우산 속에서 숨죽이던 사회운동은 1987년 6월항쟁를 거치면서 기지개를 폈다. 기독교는 6월항쟁을 최전선에서 이끌었고 든든한 지원군 역할까지 감당했다.
그렇지만 6월항쟁은 운동의 요람으로 군림하던 기독교의 위상이 흔들린 시점과 맞아떨어진다. 기독교는 6월항쟁 후 20년 동안 사회적 영향력과 도덕적 권위가 급격히 추락하는 동시에 보수화의 길을 걸었다. 최소한 6월항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진보 진영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최근 20년은 암울 그 자체다.
6월항쟁 이후 사회는 민주화됐는데, 도대체 왜 기독교 진영에서는 보수가 득세하는가.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기독교 진보 목회자와 학자들의 심정은 우울하다.
자괴감 묻어났던 강연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 진보적 사회 세력의 활동 공간이 넓어지고 보수적 사회 세력이 위기감을 느끼거나 최소한 합리화를 추구하는 상황인데 반해, 기독교에서는 그와는 달리 역류현상이 나타나고 있다."(최형묵)
"시대의 양심 위치에서 사회 진보의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전락하고 이에 실망한 신도들이 천주교 등 다른 종교로 이동하는 암울한 시기를 맞이하였다."(김경호)
"미안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한국 신학계는 별로 한 것이 없다. 한국교회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학계의 노력이 아니라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일부 평신도운동에서 나왔다."(김상근)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지난 11일 기독교회관에서 '민주화 20년 비판과 전망 심포지엄'을 공동 주최했다. 발표자로 참여한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김상근 교수(연세대)는 지난 20년간 퇴행한 기독교의 현실을 각각 교회와 기독교사회운동, 신학 차원에서 분석했다.
김경호 목사는 "교회가 시대적 부름에 거슬러 움직인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었던 사립학교법을 지키겠다고 단체로 머리 깍은 목사들과 민족·자주를 소리 높여 외친 3·1절에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집회하는 기독교인들을 들었다.
한국교회가 이처럼 수구 집단의 상징이 된 이유에 대해, 김 목사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우선 한국교회의 보수화의 원인을 미국 보수 기독교계가 정치 전면에 나서 부시를 대통령으로 세우고 의회를 장악한 사례에 고무된 한국 수구 기독교인들이 미국의 경우를 흉내 내는 것에서 찾았다.
둘째, 김 목사는 기독교 개혁 세력이 정치권에 참여함으로 인해 발생한 교계 지도력의 공백이 한국교회의 보수화를 가져왔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해외 교회의 지원에 의존하던 진보 진영이 보수 교단이나 대형 교회를 끌어들이면서 진보운동의 정체성을 잃어갔다고 김 목사는 주장했다.
교회, 대형화 욕망 버리고 분가선교가 살 길
기독교는 사회에서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어가는 동시에 내적으로는 성장주의와 주술적 신앙으로 병들고 있다. 김 목사는 "복음의 내용과 질보다는 교인의 머리수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면서 교회는 불의에 대해 침묵하거나 자기 성장을 위해 불의한 권력과 내통하게 되었고, 고난을 피하는 신앙 구조를 양산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러한 교회는 다단계 판매 조직처럼 중간 관리자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진정한 설교는 없고 요란한 선전만 난무한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대형 교회가 사회정의나 지역 사회의 문제에 관여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진단했다. 어려움이 따르고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을 시행하려면 교인 전체의 합의가 필수적인데, 대형화된 교회는 교인들의 합의를 끌어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결국 대형 교회는 누구에게나 무난한 일만 하다 보니 결국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형 교회를 찾은 이들의 심리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김 목사는 한 조사를 인용해 "대형 교회에 나가는 가장 큰 동기는 사회 저명인사를 사귈 수 있고 신분도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국회의원과 장관의 주차 안내를 받으며 교회로 들어서면 자신이 높은 신분으로 대접받는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대형 교회에 출석하면 익명성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작은 교회에서는 쉽게 노출되지만 대형 교회에서는 조용히 예배만 참여할 수 있다. 김 목사는 대형 교회를 "오랜 관습 때문에 신앙생활을 중단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활동하기는 부담스러워 가장 소극적인 신도생활을 유지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규정하며, "냉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선교가 과연 앞으로 한국교회의 건강한 신앙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교회가 대형화되고, 또 사람들을 끌어 모이기 위한 수단으로 주술적인 신앙이 도입되는 악순환을 막을 길을 대형화를 포기하는 길이다. 김 목사는 "교회의 가장 건강한 성장 방법은 분가선교"라고 말했다. 자신이 목회하는 들꽃향린교회도 분가선교를 통해 세워졌다.
김 목사가 말하는 분가선교란 "교회 공동체가 좋은 의지로 공동의 합의를 통하여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공동체로 나눈 후, 나누어진 공동체가 각자 본래 공동체의 목회와 선교, 그 규모에서 자립적인 공동체가 될 때까지 서로 돕고 기도하며 책임지는 선교의 방식"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분가선교와 최근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이 '분점' 차리듯 분립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조금 더 들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김 목사는 일회성 분가가 아니라 일정 정도 성장하면 계속해서 분가한다.
실제로 향린교회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교인 500명이 채 안 되었을 때 강남향린교회를 분가했다. 강남향린교회는 10년 뒤 다시 들꽃향린교회를 분가했다. 특히 강남향린교회와 들꽃향린교회는 가까운 지역에 있으면서 지역사회와 사회 전체의 민주화와 개혁운동을 분담한다.
김 목사는 "작은 교회들은 덩치만 크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구조를 가진 대형 교회들에 비해 하나님나라를 위해 최전선에 나가 기동성 있게 일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졌다"며 "건강한 교회가 있다면 그 지역 전체가 하나님나라를 경험하고 맛본다"고 말했다.
기독운동, 위상 추락한 현실서 대안 찾기
최형묵 목사는 기독교 사회운동의 최근 20년 흐름을 정리했다. 우선 6월항쟁 이전까지는 기독교의 보수와 진보는 정치 참여를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갈렸다. 그렇지만 민주화 이후 보수 세력이 정치 전면에 등장하면서 정치 참여를 전제로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졌는가에 따라 구별되는 양상을 띠었다. 게다가 단순히 보수와 진보라는 틀로는 제대로 규정할 수 없는 세력들이 생기고 있다.
일반적인 사회운동은 민주화를 거치면서 전반적으로 보수주의가 강세를 보이고, 자유주의 진영이 분화되었으며, 진보주의가 상대적으로 약세를 면치 못하는 형국이라고 최 목사는 분석했다. 그는 "진보주의 민중운동의 약화는 일반 사회운동과 기독운동이 비슷하지만, 일반 사회운동의 판도에서는 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이 대거 확장되면서 보수주의 세력에게 위기감을 조성하는 데 반해 기독교 사회운동 내에서는 오히려 보수주의가 전면에 등장하고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최 목사는 그 이유를 밝히기에 기독교 보수주의가 정치사회 전면에 등장하기 전에도 기독교 내에서 보수주의는 규모 면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점을 상기했다. 문제는 왜 이들이 급작스럽게 공격적인 정치참여를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
민주주의가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합리성과 공공성이 교회 내부로까지 확장되면서, 기독교 보수주의는 이것을 자신의 기득권 침해로 읽었다는 게 최 목사의 설명이다. 최 목사는 1990년대 조세 논쟁과 최근 개정사학법 논란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기독교 보수주의의 등장에 대한 최 목사의 또 다른 설명은 정신분석학적 해석이다. 최 목사에 따르면, 과거 진보 기독교의 반독재·민주화운동은 도덕적 정당성을 지녔다. 그리고 그 정당성은 보수 기독교 세력의 특권적 입장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 진보 인사들이 정권에 참여하자, 기독교 보수 세력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졌다.
정권에 참여한 기독교 세력도 위상이 흔들렸다. 최 목사는 정권에 참여한 기독교 세력이 "경제적 자유화로 인한 폐해가 심각해진 지금 정권 내에서 대안을 제시하거나 별다른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은 이미 진보적 사회운동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정권에 참여한 기독교 세력은 더욱 보수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최 목사의 판단이다.
그는 "이들이 민주화를 이미 이룬 것으로 여기고 오직 정권 재창출에만 관심을 기울여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방으로 피폐한 민중에게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보수화 경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보수주의 세력이 대약진하고 정권 참여 세력이 보수화되면서 진보주의 세력은 영향력을 현저히 잃어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복음주의 진영의 일부 그룹이 한미FTA, 미군 기지평택 이전 문제와 같은 사회 문제를 진보 진영과 연대하고 있다는 것. 최 목사는 "에큐메니컬로 불린 과거 진보 진영과 복음주의로 불린 과거 보수 진영 사이에 수렴 현상이 일어나는 건 반길만한 일이다"고 평가했다.
신학,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과거
교회가 보수화되고 진보 기독교 사회운동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신학은 무엇을 했을까. 김상근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처참한 결론을 내렸다. (김 교수가 중국 출장을 가 윤병민 목사가 대리 발표했다.)
김 교수는 "2007년 한국교회의 특징인 대형 교회 선호, 교단을 초월한 순복음 신학의 파급력, 온누리교회로 대표되는 이벤트 지향적 목회, 평신도운동의 반성직자적 태도, 보수적 기독교인의 정치세력화 현상에 대해 한국 신학계는 특별한 학문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과 인문학의 퇴조 현상,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조급성까지 겹치면서 "목회현장에서 신학 무용론까지 대두되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신학이 지경인데도 "신학자들은 다른 신학교와 교단에서 어떤 연구가 진행되는지 의도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김 교수는 한탄했다. 학문끼리 가로지르는 시대에 한국 신학은 오히려 단절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에큐메니컬 진영에 속한 교단의 신학자들도 자기가 속한 교단에 대한 패권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다며 '무늬만 에큐메니컬 학자'들을 꼬집었다.
김 교수는 "비민주적 교회 운영, 합리성이 결여된 신학 교육, 물량주의에 우선하는 선교, 자기 식구 챙기기에 바쁜 기독교 계통의 NGO 활동 등에 아무런 신학적 반성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신학계의 슬픈 자화상이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김 교수는 감신대 홍정수 교수와 변선환 학장을 몰아낸 타락한 종교 권력의 횡포와 김홍도 목사(금란교회) 같은 이들의 범죄 행위와 '쓰나미 설교'에 침묵하는 신학자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신학자가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라고 회개를 촉구했다.
김 교수는 글을 맺으며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을 붕어빵 굽듯이 찍어대는 신학자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한국 신학계가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공헌한 점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울하고 자괴감 넘치는' 발표를 마치면서 다만 김 교수는 "신앙의 이름으로 한국사회를 분리시키는 잘못만은 신학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막아야 한다"며 앞으로 신학의 과제를 제시했다.
논평자들 "현장에서도 퇴행을 느낀다"
세 사람의 발표에 이어 오현선 목사(안산다문화교회), 조정현 회장(생명선교연대), 양권석 부총장(성공회대)이 논평했다.
오 목사는 김경호 목사의 주장을 이어 받아 작은 교회들이 다양하게 연대하는 망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교회가 NGO적인 기능까지 다 수행하려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노동운동이나 인권운동은 단체들에게 맡기고 교회는 축제하고 풀며 목회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기독교 사회운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조 회장은 일부 지도자에 의해 후배 활동가들이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공개했다. 조 회장은 "선배 목회자들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조찬 모임에 동원되고, 밤 지새며 농성하던 시위도 선배들의 입장 변화에 따라 정당한 의사소통도 없이 다음날 접거나 접었던 시위도 필요에 따라 늘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양 부총장은 "보수화하고 우경화하고 권력화하는 기독교 대한 절망을 넘어서는 길을 찾는 건 큰 목소리로 하는 신학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양 부총장은 "전체 사회가 알아 챌만한 움직임이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러한 무명의 신학을 하려는 각오가 필요한 때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