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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본격적으로 농사지으려는 사람은 물론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꾸려는 사람이라면 농약을 안 치고 농사짓고 싶으리라. 약을 치지 않고도 수확이 괜찮고 품질도 좋다면 그걸 마다할 사람이 뉘 있으랴.
약을 전혀 칠 필요가 없는 상추와 오이, 감자, 고구마 등은 걱정할 필요가 없으나 다른 건 심각하다. 배추와 무, 토마토, 고추 등 텃밭에 많이 심는 작물은 약 치지 않으면 수확이 반도 되지 않고 알차지도 않다. 작년 바로 우리 집에서 그랬다.
고추를 심어 붉은 고추 될 때까지 키워 고춧가루를 얻을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쉬엄쉬엄 풋고추만 따다 먹어도 된다고 싶어 백 그루 가까이 심었다. 그런데 … 처음 일군 밭에는 병충해가 잘 달려들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게 잘못이었다. 며칠 간 잘 따먹었다 싶었는데 잎이 누렇게 변하는 병이 들면서 나중엔 하나도 못 먹게 돼 버려야 했다.
올해 고추를 심느냐 마느냐 갈등하다가 한 번만 더 약을 치지 않고 키워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유기농 하는 이들에는 분명 병충해가 오더라도 일반 농약을 치진 않는 다른 방법이 있으리라 여겨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몇 가지 방법이 나와 있었다.
전문적으로 유기농을 하시는 분들은 사람에게 해롭지 않은 약을 나름대로 만들어 쓰고 있고, 또 비싸기는 하지만 유기농 농약이란 이름의 약도 나와 있었고, 목초액을 이용하여 만든다든지 하는 다양한 방법이 소개돼 있었다. 그 중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바로 식초 요법이었다.
황토로 지장수를 만든 뒤 100% 빙초산을 사서 섞으면 된다는 것. 그리고 지장수와 빙초산의 비율은 10:1로 하라는 것. 가장 돈 안 들면서 쉬 만들 수 있는 이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황토야 전에 구해 둔 것이 있고 지장수도 만든 경험이 있으니 빙초산만 사서 섞으면 되니 얼마나 간단한가.
며칠 전 고추에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비장의 약(?)을 만든 뒤 그대로 실천에 옮기기 전에 두 그루에 먼저 실험을 했다. 내일 아침까지 아무렇지 않으면 다 뿌리려고. 그런데 곁에서 풀 뽑고 있던 아내가 "식초를 묽게 한 건데 무슨 일 있을라고" 하는 말에 그렇다 싶어 다시 모든 고추에 뿌렸다. 그리고 기왕 뿌릴 바에야 대충 주는 것보다 듬뿍 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밭에 들렀다가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미 잎이 타 버려 누렇게 뜬 것부터 꺾어지기 직전에 이른 것까지 하여 대부분의 고추가 원래의 빛깔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더욱 비참했다. 완전히 꺾어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 절반쯤 되었다.
절로 입에서 욕이 나왔다. 엉터리 정보를 올린 이가 누군지 탓하면서. 그런데 날이 지나면서 그 정보를 올린 이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검증하지 않은 내게 더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농사는 요령이 통하지 않는다. 꾸준한 노력과 정성만이 알찬 수확을 보장할 뿐이다. 그래서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나는 편한 것만 찾다가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만약 병충해를 그런 쉬운 방법으로 일거에 물리칠 수 있다면 왜 다들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진지한 고민 없이 쉬운 길을 찾으려 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세상에 쉬운 길은 없다'란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 깊이 와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