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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임진왜란 후 맥이 끊어졌던 조선 막사발을 재현한 사기장 신정희(申正熙)씨가 18일 오후 7시 부산 침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경남 사천군 용현면 출신인 고인은 소학교 3학년 학력이 전부이나 19세 때 인근 삼천포 중 국어교사이던 시조시인 김상옥으로부터 청자 사금파리 하나를 얻은 것을 계기로 평생을 우리 그릇 재현에 바쳤던 장인이다.

한국 전쟁기를 포함해 8년간 군복무 후 1959년부터 부산에서 골동품 행상 및 수집상을 하면서 골동품 감정에 대한 안목을 키운 그는 전국의 옛 가마터 200여곳을 돌아다니면서 깨진 그릇조각을 수집, 사용된 흙과 유약을 분석했다.

그는 특히 부산에서 일본 도예인들과 교류하면서 일본에서는 '이도다완'으로 불리지만 원래 진주 지방의 제기였던 황도사발, 즉 조선 막사발을 재현하기로 결심하고 문경과 단양에서 그릇을 굽기 시작했다.

1968년 말 그가 마침내 자연유약을 바른 황도사발을 재현하는데 성공하자 "500여년만에 조선 막사발을 되살렸다"며 전국적으로 주목받았으며, 인사동의 골동품 상들은 조선시대 진품이라고 감정하기도 했고 골동품 도굴꾼으로 몰리기도 했다.

1975년부터 일본에서 여러차례 전시를 갖고 일본인들을 매료시켰으며 1979년 6월에는 서울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어 임진왜란 후 대가 끊긴 것으로만 여겨졌던 노란색 유약 사발과 연회 항아리 등을 공개했다.

그의 그릇은 소박하면서도 정교해 국빈들이나 외교사절들을 위한 선물로 사용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고인은 "나는 오륙백년전에 사라진 우리 사발을 만드는 사람이며, 이것이야말로 내 종교"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그는 "사발을 만들 때 손이 아니라 가슴으로 빚을 것"을 강조했으며 잘못 만들어진 그릇은 가차없이 깨버리고, 잘 만들어진 그릇도 결코 평균 이상의 값을 받지 않는 원칙을 지켰다.

그는 흙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조선의 '막사발'은 일제시대 조선 그릇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라며 '조선 사발'이라고 부르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인의 큰 아들 한균씨가 신정희요를 이어받고 있으며, 그 아래 아들들인 용균, 경균, 봉균씨도 역시 각자의 가마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아들들을 포함해 약 20명의 제자를 길러냈으나 일본인 제자는 받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고인이 타계한 이날 1년 6개월전부터 추진해오던 자서전 '흙과 불 그리고 혼-사기장 신정희'를 펴낸 북인 출판사 측은 "최근 1주일 사이 갑자기 선생의 병세가 악화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발인은 22일 오전 9시. 고인의 가마가 있던 경남 양산 통도사 경내에서 다비식이 치러질 예정이다. 장지는 경북 영천의 국립영천호국원. ☎051-583-8906.

chaehee@yna.co.kr


#신정희#신한균#사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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