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농림부 장관, 경실련 공동대표, 전직 교수에 현직 총장.
김성훈 상지대 총장에게 따라붙는 이력이다. 이 화려한 이력 대신 김 총장은 자신을 '유기농 전도사'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유기농법'으로 전 이사장과의 길고 긴 다툼으로 지쳐 있던 상지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2005년 3월 상지대 부임시 김성훈 총장이 표방한 것은 '세방화(世方化)'와 '학생제일주의'.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세방화의 정신은 원주시와의 일교일촌 운동, 지역 농업 기반의 '친환경 식단 운영' 등을 이뤄냈다. 2004년에는 '국제유기농친환경센터'를 설립, 원주시와 상지대는 한국 '유기농업'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학생제일주의'는 식단을 친환경으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됐다.
5월 23일 인터뷰 자리에 김성훈 총장은 상지대 로고가 새겨진 모자와 상지대 티셔츠 등 온몸에 '상지인'임을 증명하며 나타났다. 원주의 맑은 공기 탓일까, 땅의 기운 탓일까. 육십 가까운 주름진 얼굴 사이로 언뜻 '맑은 웃음'이 비친다. 김성훈 총장은 인터뷰 내내 열정적으로 상지대와 원주에서 꽃핀 유기농 철학을 설파했다.
다음은 김성훈 총장과의 일문일답.
1600원 유기농 학생식당, 총장님도 매일 간다
- 학생 식당에 유기농 식단을 도입한 계기는?
"농림부 장관일 때 유기농 원년을 선포해 지금도 '유기농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학행일치'해야지. (2005년 3월 상지대에) 와서 학생들이 인터넷에 올린 거 보니까 불평의 반 이상이 음식이더라. 질이 떨어지고 맛도 없고 1600원짜리가 기본인데 불평들이 많았다. 학생제일주의 표방했으니 바로 실천하자고 했다. 3월 9일 취임식해서 4월 18일부터 모든 식당을 유기농과 친환경 식자재로 바꿨는데, 이왕이면 이 지역인 원주권, 원주권에 없는 건 강원도, 강원도에 없으면 전국, 이렇게 하자고 했다."
-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당장 문제가 생긴 게 돈이었다. 친환경 농산물로 바꾸니까 가격이 2배 가까이 들었다. 원가랑 차이 나는 건 학교에서 보조금을 대는데(상지대 학생식당은 생협이 운영한다),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게 유기농 쌀이다. 일반 쌀하고 가격 차이가 많이 나니까.
민주관 옥상 같은 데 올라가 봐라. 우리 아이들이 넓은 데서 담소하면서 1600원짜리 밥 먹고 2500원짜리 카페 가서 커피 사먹고…. 그 된장('된장녀'를 말하는 듯) 뭐죠?(웃음) 그게 추세인데, 나도 학생들 따라 한다. 밥도 교수식당 안 가고 학생식당만 가서, 그것도 1600원짜리만 먹는다.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다 의아해 한다. 학생들이 제일 많이 먹는 기본 백반을 총장이 먹어야 질이 안 떨어질 것 아닌가. 학교 생협이 운영한다지만 수입을 내야 좋거든. 그러니 질이 떨어질 수 있다. 총장이 매일 먹고 잔소리해야 우리 학생들이 혜택을 볼 것 아닌가."
- 예산적인 어려움이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유기농 식단을 고집할 건가?
"누가 뭐래도 내가 총장으로 있는 한은 계속 유기농 식자재로 할 거다. 입학식에 학부형들이 오면 '학생들이 먹을 두 식당 중 아무데나 가셔서 유기농 식사해 보십시오, 여러분 집에서 먹이는 밥과 비교해 보시고, 식당 환경·위생도 보십시오' 그런다. 요즘 유기농 식사하는 집 없지 않나? 부모님들이 좋아하지. 총장 부임한 지 2년 2개월 됐는데 육십 평생 처음으로 살이 찌고 있다. 여기서 매일 점심 저녁 먹으니까."
"한미FTA 시작되면 유기농업도 어려워진다"
- 유기농가들이 많이 어렵다고 들었다.
"정부가 1998년 11월 11일 친환경 유기농 원년을 선포하고 유기농 하는 농민들에게 직접지불제로 도와줬다. 또 생활협동조합법을 만들어서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소비자들도 반응이 좋았다. 근데 생산은 계속 느는데 소비가 못 따라가서 이제는 안 팔리기 시작하는 거다. 이럴 때는 정부가 판매 촉진을 해야 한다. 대량 소비처인 기업 등에게 유기농을 가급적 권하고 학교나 군대 급식을 친환경 농산물로 하면 오히려 모자랄 것이다. 당장에 학교 급식부터라도….
아토피나 환경성 질환에 시달리는 아이들, 요즘에는 당뇨병까지 걸린다지 않나. 외국산이나 싸구려 농약 잔뜩 발린 것을 아이들에게 먹여서 되는가? 정부가 이것을 해줘야 하는데 안하니까 판로가 부족해서 가격이 떨어진다. 그러니 심지어 농민들이 사기를 친다. 어떤 사기를 치느냐? 유기농이라고 정부 인증 받은 딱지를 떼고 일반 농산물로 속여 판다. 가격을 내리면 다른 유기농가들에게 미안하니까…. 웃기지 않는 사기, 정확히는 사기도 아니지."
- 어떤 해결책이 있겠나?
"정부가 권장했으니까 판로를 해결해 줘야 한다. 학교 급식만 유기농으로 해도 단번에 해결된다. 간단하다. WTO가 어쩌고 저쩌고, 그거는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해 주고 알아서 하라고 하면 그만이다. WTO는 지방자치단체에는 시비 걸 수 없게 돼 있다. 정부가 의지가 없고 마음이 없는 거다. 아니면 모르거나."
- 한미FTA 이후 유기농업도 어려워지는 건가?
"그렇다. 아직 유기농 제도도 미완성인데 외국 유기농 가공식품을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관장한다. 거기서 너무 관대하다. 외국은 가공식품도 신선농산물과 똑같이 기준이 엄격하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유기농인지 아닌지 모르는 성분 불명의 외국산 유기농 가공식품들이 대한민국의 일류 백화점을 차지하고 수입업자와 백화점 돈벌이해 주고 있는데. 농림부는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보건복지부는 외국제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고."
- 학교식당 외에도 유기농과 관련된 사업이 있다면?
"상지대는 일교일촌 운동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단과대학이 6개가 있는데, 원주시 호저면 마을과 단과별로 결연 맺어서 도와드리고 한의과 병원에서 건강 치료도 하고 있다. 또 거기서 생산된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원주생협 간판으로 팔고 있다. 유기농산물 거래를 위해 전국 최초로 (대학에) 국제유기농센터를 만들어 유기농 인증을 해준다. 물론 정부에게 위탁 받아서 하는 거다. 이번에는 세계 유기농 협회(IFOME)의 정식 회원이 됐다."
"지열 냉난방, 바이오가스... 에코 상지를 꿈꾼다"
- 유기농이 상지대 전체에 활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총장이 자기들과 같이 먹어서 그런가? (웃음) 내려가서 보면 라면 먹는 학생이 있다. 그러면 내가 가서 '아줌마, 우리 학생들 라면만 먹다가 아토피 걸리면 안 되잖아요' 그러고 밥 한 사발 얻어다 주며 '애, 이 밥에 라면 섞어서 먹고, 유기농 김치도 갖다 먹어라' 그런다(웃음).
총장이 몇 번 그렇게 하고 나니 이제는 아이들이 아줌마들한테 밥 좀 더 달라고 한다. 유기농이 30%만 뱃속에 들어가면 효과는 100%와 같다. 쌀·김치·채소만 유기농이면 다른 건 아니어도 된다. 그만큼 유기농 효과가 파워풀하다. 그것 좀 적어달라(웃음). 우리 학생들은 뭐 거의 70%가 유기농이다."
- 유기농 식단 대학은 상지대가 유일한데 그만큼 힘든 건가?
"학교가 보조를 안 하니 그렇지. 한국은 의식주라고 하지 않나. 중국은 식의주라고, 먹는 걸 앞에 두는데 우리는 '옷', 멋 부리는 걸 중시한다. 나는 먹는 데 돈 아끼는 주부나 CEO는 알뜰한 게 아니라 바보라고 본다. 먹는 것에 돈 쓰는 건 투자다. 병원비 절약하고 약값 절약하고….
학교의 마인드가 학생들을 환경성 질환에서 구하고 건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학생들이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봐라. 나도 재수생 아들이 있는데, 유기농 먹인다. 그래서 건강하고 튼튼하다. 15년 전에 아토피라는 말 들어 봤나? 10년 안쪽이다. 옛날에는 없었는데 지금은 공기와 물이 나쁘니까."
- 상지대 발전에 대해 어떤 계획이 있나?
"내가 2005년에 들어왔는데 그 사이에 너무 많이 발전했다. 그 전에는 보통 지방 사립대처럼 추가 모집에도 인원을 못 채웠다. 그런데 작년에 5.4:1, 올해 7.2:1로 100% 등록했고. 취업도 4월달로 78% 다 됐다. 학생들이 살았다. 우리 대학 오면 학생이 주인이다. 아직도 모자라지만 계속 노력할 거다.
에너지 실천을 위해 전국 최초로 제일 큰, 지열을 이용해 기숙사 냉난방하고, 석유 가스로 만든 전기 안 쓰고 전 건물에 바이오가스를 이용할 계획이다. 21세기 화두가 건강·생명·환경·휴양·복지, 이 다섯가지다. 상지대에서는 어떤 전공이든 환경관련학 과목을 반드시 듣고 졸업한다. 21세기를 살면서 환경에 대해 신경쓰는 에코(Eco) 상지생이 되도록 커리큘럼을 다 고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