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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여자>가 끝났다. 시청률에서 고공비행하던 <내 남자의 여자>가 주인공의 홀로서기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화려하게 퇴장했다. 그동안 기존 불륜극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의 불륜드라마를 만들어 내면서 인간의 욕망과 여성들을 위한 심리드라마로까지 평가받았다.

파격과 열린 구조의 결말

▲ 일상의 힘에 의해 무너진 화영과 준표
ⓒ SBS
그리고 역시 기존 불륜드라마와 달리 역시 김수현 작가다운 파격적인 결말을 내놓았다. 우선 기존 불륜 드라마의 형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전개가 돋보였다. 기존 불륜 드라마를 보면 아내는 현모양처로 착한 인물, 남편을 빼앗은 내연녀는 악녀로 선악구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내 남자의 여자>는 이러한 선악구도를 탈피했다. 또 불륜 사실을 1회에 보여줬고, 불륜 사실을 당사자인 화영이 직접 지수에게 말하는 등 전개에서 이미 파격적인 설정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결말이 무척이나 궁금했었고, 김수현 작가는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다. 우선 기존 불륜 드라마는 권선징악으로 바람을 핀 남편은 때늦은 후회를 하며 가정으로 복귀하고, 악녀 짓을 일삼던 내연녀는 자신의 일들을 후회하고 떠난다. 그리고 당당해진 아내는 남편을 받아들이고 다시금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우리가 보던 불륜드라마의 결말이었다. 하지만 <내 남자의 여자>는 달랐다. 우선 화영은 자신이 사랑하던 준표의 우유부단함에 스스로 포기하고 미국행을 선택한다. 역시 쿨한 화영이의 모습이었다.

모든 비난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사랑, 행복을 위해 선택했던 그 남자. 알고 보니 1년 전에 이미 수술을 받아 아이를 가질 수 없을뿐더러 이혼도 미루고 있는 상황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살림을 배워가며 그에게 비위를 맞추려던 화영은 자신의 인생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살고자 마지막 키스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그렇다면 아내 지수는 보통 불륜드라마라면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하지만 이미 화영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그녀, 그리고 남편이 자신에게 아이의 아버지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선택도 역시 홀로서기다.

자신의 언니 은수 부부가 준표와의 만남을 주선했지만 지수와 준표는 서로 다시금 시작할 수 없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서로 갈 길을 향해 간다. 보통 아내와 바람 핀 남편의 모습이 아니다.

상당한 파격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보통 깨진 가정을 수습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빠져 억지스러운 설정임에도 다시금 가정을 복귀하는 남편과 그를 용서하는 아내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 반문하면서도 그것을 미덕으로 알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김수현 작가의 이러한 파격적인 설정은 시청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러한 파격적인 설정은 이미 김수현 작가가 두 번째 사용한 것이다. 전작 <사랑과 야망>에서 열린구조로 결말을 맺으며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며 끝을 맺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래서 이번 <내 남자의 여자>의 결말도 역시 "그럼에도 살아야 하고, 인간은 본래 혼자이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하며 관록의 작가다운 면모를 과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김수현 작가는 파격성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 아름다운 보수주의를 외치고 있었다.

일상의 힘과 아름다운 보수주의

▲ 준표와의 이별로 자신의 인생을 되찾는 지수
ⓒ SBS
아름다운 보수주의는 바로 지수가 화영이를 용서할 수 있었던 힘이자, 화영이 지수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랑을 이루지 못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실 화영이로 인해 지수는 준표와의 부부생활을 포기했다.

그리고 준표는 화영이와 함께 동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각자 삶의 환경이 바뀐 후 지수는 오랫동안 빈자리를 그리며 외로워하고,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점점 흘러서 지수는 20년이란 긴 시간동안 준표에게 맞춰 살았던 시간을 뒤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닌 준표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수는 자신의 삶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하고, 자신이 할 줄 아는 것들을 찾아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작지만 알찬 '샌드위치 가게'를 차리고 이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자 한 걸음씩 발을 뗀다.

그 사이 화영과 준표는 계속해서 전쟁을 치르게 된다. 그 때부터 일상의 힘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준표는 늘 해주는 지수에게 익숙해져 있다. 원고를 쓸 때 간식부터, 아침에 출근 준비까지 뭐하나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보통 남자다. 거기에 입은 까다로워 화영이의 음식에 타박을 한다.

그래도 가져다주는 돈으로 살림하던 적이 없었던 화영은 그것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살림에 적응하고자 노력한다. 헌데 그 노력이 화영이에게 어울리지 않은 옷처럼 그녀를 옥죄인다. 그리고 서투른 솜씨로 음식을 해주는 화영이 대견스러운면서도 어쩐지 지수가 그리워지는 준표다.

지수의 집에만 가면 굶은 사람처럼 밥 먹는데 열중하는 준표의 모습이 등장하면서 간간이 지수를 향한 마음이 들어나고, 해도 해도 준표가 요구하는 것에 맞추지 못해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화영이다. 변 사람들의 질타도 힘든 상황에 본인들마저 위태로운 생활에 지쳐간다.

하지만 그것까지도 그들은 감수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화영이가 임신을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자식을 낳고 싶지 않은 준표는 일찌감치 정관수술을 했다. 또한 이혼도 미루면서 여전히 우유부단함을 보이는 준표에게 더는 화영이 사랑을 느낄 수 없었다.

즉 '집에서 밥만 할 줄 아는 마누라'라 무시하던 준표에게 일상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맞추며 노력한 지수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깨닫게 했던 것이다. 동시에 화영은 지수처럼 살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다. 따라서 지수의 빈자리로 인해 준표와 화영의 행복은 실패하고 만 것이다.

결국 김수현 작가는 파격적인 전개에도 그 안에 일상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역으로 말하면 그것은 아름다운 보수주의라고 할 수 있다. <부모님 전상서>에서 아름다운 보수주의를 찬양했던 것처럼 일상의 힘은 곧 행복한 가족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화영이 원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화영은 끊임없이 준표에게 "사랑해?"라고 물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준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사랑을 의심했다. 또한 준표의 아이를 가져 자신의 태어나 여자로서 살아보고 싶은 욕망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소박한 화영의 꿈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그녀가 지수의 남편을 빼앗긴 했지만 한편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지수가 부러웠던 것으로 김수현 작가는 근본적으로 '아름다운 보수주의'를 드라마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비록 불륜이라는 탈을 쓰고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면서 파격적인 전개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으면서도 그 안에서 김수현 작가는 '아름다운 보수주의'가 이 세상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소신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 남자의 여자>는 그저 불륜 드라마로 보기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덕분에 쉽게 지나쳐 버릴 수만은 없는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내남자의 여자#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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