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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연기가 나는 곳이 어디인가?"

남부여의 왕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말채찍으로 가리키며 묻자 좌우에 늘어선 좌평들이 앞 다투어 대답했다.

"저곳은 함산성이 있는 곳입니다. 태자마마께서 이제 함산성을 점령한 모양입니다."

과연 얼마 후 파발이 당도해 왕에게 함산성을 함락시킨 후 불태운 사실을 전해왔다. 좌평들은 왕 앞에서 태자의 승리를 경하하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진군해 나가면 당장 서라벌까지라도 달려가겠습니다."

"이제 관산성까지는 한걸음입니다."

왕은 기쁜 표정을 감추고 애써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군 속도가 너무 빠르면 보급이 닿지를 못한다. 태자에서 전령을 보내어 쉬엄쉬엄 가라고 해라. 신라군은 관산성을 버리고 도망간다고 해도 그것으로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말은 그랬지만 남부여의 왕과 좌평들은 신라의 구원병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인접한 주를 맡고 있는 김무력이 움직인다고 해도 그 군세는 남부여군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신라가 뒤늦게 남부여군을 견제할만한 대군을 동원한다고 해도 그 때쯤에는 각 산성에 남부여군이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신라와 백제에 대해 잔뜩 벼르고 있는 고구려의 움직임이 신라군의 행동을 제한 할 것이 뻔했다.

"좌평 고슬여!"

"예!"

"지금 당장 병사 1만을 이끌고 태자를 지원하시오. 관산성을 포위하기에 태자가 거느린 병력은 너무 적소."

"예!"

"남은 병력은 내일 함산성으로 진군해 그곳에서 머물며 신라군의 지원병을 견제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관산성을 정벌하고 신라와 고구려를 동시에 견제할 요충지를 확보하겠다는 남부여 왕의 전략은 이제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 왕은 전쟁을 일으킨 이후로 가장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아버님."

"뭐냐?"

한밤중 왕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번쩍 잠에서 깨어났다. 왕의 눈앞에는 가슴에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린 채 딸 화안공주가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왕은 그 모습을 보고 목이 메어왔다. 다신 못 볼 생각으로 신라로 보낸 딸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나타나니 아버지로서의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신라가 저를 죽이고자 하는데 아바마마께선 이렇게 절 버리시나이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내 너를 어찌 버리겠느냐!"

"아니올시다 아바마마는 절 잊었사옵니다."

화안공주의 몸이 멀어져 가자 딸을 잡으려던 왕의 손은 허공을 휘젓고 말았다.

"얘야! 공주야!"

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꿈이었지만 왕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머리맡에 놓아둔 자리끼를 단숨에 들이켠 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뜻밖의 거동에 깜짝 놀란 파수병을 뒤로 한 채 뿌연 남색 빛을 희미하게 내어 뿜고 있는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밖으로 나왔다.

왕은 그 길로 호위하는 이도 없이 진지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꾸벅꾸벅 졸다가 급히 자세를 일으키는 파수병이 있는 가하면 새벽부터 돌아다니는 왕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비장들의 모습이 왕의 눈에 띄었다. 평소 같으면 크게 호통을 치며 기강을 엄히 할 일이었지만 왕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왕이 진지를 한바퀴 돈 후 돌아온 곳에는 좌평 관석이 왕을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그대가 이 새벽부터 어쩐 일인가?"

관석은 크게 몸을 조아려 인사를 올린 후 소매에서 비단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었다.

"간밤에 진지를 서성이는 자를 잡았사온데 낯선 이가 아니었습니다. 좌평 고슬여의 아들 고도라는 자인데 그 자가 이 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은 고도라는 이름을 생각해 보았다가 급히 화안공주를 떠올리고서는 좌평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빼앗듯이 받아서는 펼쳐 들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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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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