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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추가협상이 시작된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에서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가 협상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도 미국의 일방적인 일정에 따라 졸속으로 진행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1일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에서 미국쪽은 30일까지 재협상을 끝내자고 요구했다. 이번달 30일로 미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무역촉진권한(TPA)이 끝나기 때문이다.

TPA 시한을 넘길 경우 미 의회가 협상 전권을 가질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쪽 요구를 받든지, 아니면 미 의회로부터 자동차와 농업 등에 걸친 전면적인 재협상 요구를 받든지 선택하라는 것.

한국 정부는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미국쪽 요구대로라면, 주말 등을 빼면 실제 협상은 길어야 일주일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노동과 환경 분야 등에서 기존 협정문을 아예 다시 써야하는 등 협상 자체가 만만치 않다. 결과에 따라 노사문제를 비롯해 국내 경제 주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크다.

미 협상 전략에 또 다시 말린 한국 정부

그때는 웃었지만...지난 4월 2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종훈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나란히 앉아 밝게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재협상 내용을 그대로 받아 일주일 안에 끝낼 경우 '굴욕협상'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시한을 넘기면서 미 의회로부터 전면적인 압박을 받을 경우 한미FTA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미국의 일방적 요구로 진행된 한미FTA 재협상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왜 이런 논란이 계속될까. 미국 통상협상 권한은 의회가 가지고 있다. 미 헌법에 나와 있다. 미 행정부(대통령)는 통상과 관련해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의회가 통상문제에 대해 특정한 기간을 두고, 행정부에 협상권을 위임하는 경우가 있다.

무역촉진권한(TPA)이 이런 경우다. 이 권한이 오는 30일로 끝난다. 이 기간을 넘게 되면 미국 법 절차상 의회가 협상에 관여하게 된다. 각 지역과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의회가 협상을 주관할 경우, 협상 진척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한미 양국 정부가 모두 인정하는 것.

따라서 이번 재협상이 TPA 시한 내에 끝날 수 있느냐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길어질 경우 미국 의회가 한미FTA 협상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해석이 엇갈린다.

미국쪽에선 재협상이 길어질 경우, 미 의회가 협상에 관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국과 재협상이 벌어진 지난 21일 미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선 자동차와 농업 등 분야에서의 재협상 요구가 거셌다.

딜레마에 빠진 한국정부, "좀 지켜보자"

특히 한미FTA 협정을 담당하는 미 하원 세입위원회의 샌더래빈 무역소위 위원장은 "자동차 분야는 일방적으로 한국에 유리하기 때문에 반드시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께 참석한 포드 자동차 등 업계도 마찬가지였다.

이혜민 통상교섭본부 한미FTA 기획단장은 21일 오후 브리핑에서 '커틀러 대표가 30일 전에 끝냈으면 좋겠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미국쪽 희망이다"고 말했다. '미국쪽 희망'이라고 전제를 달긴 했지만, 이 단장 역시 곤혹스러움이 역력했다.

이 단장은 이어 "(미 의회의 관여 가능성에 대해) 법률가들 사이에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꺼렸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과)도 "재협상 내용이 만만치 않을 상황에서 일주일내에 끝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럴 경우 이 협상이 TPA 법을 따를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쪽 한 고위 관계자는 "협상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전제하고, "현실적으로 일주일내에 이번 협상을 끝내기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끌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정부는 그동안 재협상과 관계없이 30일로 예정된 한미FTA 협정문 서명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을 가져왔다. 하지만 협상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협정문에 서명하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해영 교수는 "결국 미국이 맞춰놓은 일정에 따라 일방적으로 한국이 끌려 다니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면서 "협정문에 서명을 해버리면 그나마 재협상을 통해 여러 독소조항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 21일 한미 양국의 FTA 재협상이 시작된 가운데 한미FTA 저지 범국본이 협상장인 외교통상부 앞에서 재협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엔 심상정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도 참석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노동과 환경 분야 등에서 한미간 팽팽한 신경전

한편 한미 양국은 21일에 이어 22일까지 노동과 환경을 비롯해 의약품, 필수적 안보, 정부조달, 항만 안전, 투자 등 7개 분야에 대한 미국 쪽 제안을 놓고 협상을 가졌다.

핵심 쟁점은 노동과 환경 분야다. 특히 노동과 환경 분야 협정 위반에 대해 미국쪽은 일반분쟁해결절차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기존 협정문은 특별분쟁해결절차로 최대 1500만달러 벌과금을 위반한 나라에 부과해 노동·환경 여건 개선에 쓰기로 돼 있다.

일반분쟁해결절차가 도입될 경우 위반한 나라에 대해선 특혜관세 중단 등 무역보복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들 핵심 쟁점을 두고 한미 양국은 이틀 동안 질의와 답변을 주고받으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밖에 투자 분야에서 미국 내 외국인 투자자가 미국 투자자에 비해 더 강한 보호를 받지 않도록 하는 역차별 금지를 선언적으로 규정해 넣자고 요청했다. 미국쪽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도 있는 부분이다.

정부는 22일 협상을 마친 후, 미국쪽 수정 제의 내용과 설명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향후 협상 대응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한미FTA#재협상#졸속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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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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