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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운하 문제가 논란의 핵심은 제쳐둔 채 보고서 진위 공방을 둘러싸고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에게 보고된 9쪽짜리 한반도대운하 보고서 외에 37쪽짜리 보고서를 누가 작성했는가? 37쪽 보고서는 왜 작성되었고 진정으로 그것이 박근혜 캠프에 흘러들어갔는가? 대통령은 한반도대운하 검토를 지시할 수 없는가? 그것이 정치개입이고 대통령 권한의 남용인가?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 건교부장관이 37쪽 보고서와 9쪽 보고서가 다르며 원본이 아니라고 건교위에서 답변한 후 다시 확인결과 산하기관에서 업그레이드 한 것이라는 게 건교부장관의 해임 요청사유인가? 건설과 국토개발, 수자원보호, 교통과 물류 등 관련 사항의 연구를 설립목적으로 하는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는 논란을 빚고 있는 한반도대운하의 경제성과 기술성 등 각종 문제에 대한 자발적 검토가 허용되지 않는 것인가? 이것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대통령이 경부운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가 장래에 큰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괜찮지만, 터무니없는 경부운하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얘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선관위의 선거중립의무 위반 결정은 자업자득이다. 그것이 시나리오에 따른 의도적인 것이었다면 다르겠지만.

대통령 뿐 아니라 각종 기관장은 업무과중으로 인해 분량이 많은 경우에는 요약보고서를 받는 경우가 보통이다. 9쪽짜리 보고서가 대통령에게 보고 됐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고, 건교부장관도 9쪽의 요약보고서를 보았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실무자 단계에서는 37쪽 보고서나 그 이상의 것을 작성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경부운하, 대운하 등 관련 보도나 언론기사, 전문적 검토논문 등이 인터넷에 숱하게 널려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2007년 5월 보고서라 하더라도 중간보고와 결과보고의 내용은 다를 수 있다. 당시 관련자는 가장 최근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최근 행사와 적정성 있는 수치로 업그레이드 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이것을 최종 보고하기 위해 '결과보고' 명칭의 파일로 작성하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본질은 담당 공무원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작성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이 밝힌 수자원공사 김아무개 기술본부장이 어떤 의도로 보고서를 유출했는가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수자원공사든 어디든 여야의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이 협조요청을 받은 경우 단순한 '객관적 사실'에 대한 자료인 경우에는 자료제공을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것이 박근혜 후보 캠프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37쪽 보고서가 단순한 객관적 사실 자료라고 볼 것인가. 이미 인터넷에서 '경부운하, 한반도대운하'라는 용어만 두드리면 엄청난 자료가 검색되는 마당에 이를 정리하여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그렇게도 국정조사까지 요구할 사안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이 논란만 부른다

경부운하 때문에 대통령도 선거법 위반 논쟁에 휩싸였고 선관위와의 갈등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가장 근본적 원인은 한나라당 후보자들의 선거공약이다. 문제가 많고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을 공약으로 제시하다보니 그 이후에 이를 둘러싼 논란이 알을 까듯이 연이어 벌어진 것들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처음 상황으로 그리고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사안의 본질을 냉정하게 보자고 하면 나는 몰매를 맞게 될까?

사안을 다시 보면 대통령의 운하검토 지시 자체는 타당했다고 본다. 17조원, 아니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천문학적인 소요비용을, 경제성도 없고 환경과 상수원보호에 엄청난 해악을 미칠 것이라고 국민들로부터 비난받고 있는 경부운하 공약을 관철하기 위해 투입하는 게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사전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정치개입도 아니고 권한남용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 이후 대통령이 보여 준 참평포럼 강연과 6·10 기념일 등에서 다른 정당 후보자를 직접 지목하여 비판한 내용이 문제될 뿐이다.

건교부장관도 잠시 착각하여 건교위에서 달리 답변했을 수도 있건만, 이를 고의적으로 정치적 의도로써 한 것이라고 몰아붙여 해임을 건의 내지 요청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국회 건교위 회의를 '(인터넷)다시보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보니 고의적으로 몰아붙이는 게 오히려 정략적인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정부산하 연구기관도 고유한 판단하에 국익에 영향을 주는 중요 사안의 경우 긴급하게 예산을 편성해 연구검토를 결정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항상 전년도 말에 정해진 연구과제만 밋밋하게 진행하는 것은 오히려 국책 연구기관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국책 연구기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만 전제조건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어야 하고, 정부에 유리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논란은 철저히 정략에서 출발하고 있다. 청와대도, 이명박 캠프도, 박근혜 캠프도 모두 '표심'에 시각을 고정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대운하의 본질은 제쳐두고 '보고서 논박'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운을 좌우할 한반도대운하 자체의 타당성 검증을 다시 꼼꼼하게 해보기로 하자. 지방분권 등 다른 지역불균형 해소사업을 내팽개치고 강바닥 준설에만 몇 년을 매달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무엇이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자. 또 무엇이 지방의 낙후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인지, 무엇이 내륙 도시의 개발에 기여하는 것인지도 모두 모두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보자.

태그:#경부운하, #한반도대운하, #대운하보고서, #수자원공사, #국책연구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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