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마르켈루스 극장
ⓒ 한길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작가가 대상에 애정을 가지고 글을 쓰면 애정에서 비롯된 호감으로 그 내용이 긍정적이면서 풍부해질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책이다. 심지어는 일반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단점이라고 취급받아 오던 것들조차 장점으로 바뀌어 표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로마와 로마인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 그리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으니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로마인을 좋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내가 로마인을 좋아하게 된 것은 크게 세 가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그 옛날에도 사회 기반 시설의 중요성을 알고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사회 기반 시설을 인프라라고 하는데, 인프라는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의 준말로 생산이나 생활의 기반을 형성하는 기초적인 시설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도로, 항만, 철도, 발전소, 통신 시설 따위를 통칭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인프라스트럭처라는 영어 자체가 로마인의 언어인 라틴어에서 '하부' 내지 '기반'을 뜻하는 '인프라'(infra)와 '구조'나 '건조물'을 뜻하는 '스트룩투라'(structura)를 현대에 와서 합성하여 만든 말이다." - <로마인이야기> 10권 5쪽

로마인들은 왜 '인프라'를 중요하게 여겼을까?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프라'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로마인들이 인프라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작가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로마인이 생각하고 있던 인프라에는 도로·교량·항만·신전·공회당·광장ㆍ극장·원형투기장·경기장·공중목욕탕·수도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눈에 보이는 시설물들로 이른바 하드웨어라고 말할 수 있는 인프라이고, 국방·치안·조세·의료·교육·우편·통화 등의 시스템까지 포함하는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도 인프라라고 말하고 있다. 로마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인프라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이른바 하드웨어적인 인프라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까지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회기반'이나 '사회간접자본', '하부구조' 등으로 번역되는 '인프라스트럭처'는 개인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대행하는 사업, 로마인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대사업'(로마인이야기 4권111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로마인들은, 특히 로마를 지배했던 계층의 사람들은 왜 인프라를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것일까.

로마인들은 '몰레스 네케사리에'(moles necessarie)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대사업'이라는 구절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로마인들이 바로 인프라를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대사업'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동물과 다르다는 것을 이르는 말로 단순히 먹고 사는 생물체의 존재를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인이 사람다운 생활을 위해 인프라를 구축했던 그 시대로부터 훨씬 멀리 떠나온 현재의 우리는 어떤 삶의 형태로 사람다움을 추구하고 있는가.

그때로부터 과학기술이 현저히 발달하고 문명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했다고 우리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21세기, 오늘날 우리 인간의 삶은 본능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동물의 삶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얼마나 인간답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리고 있는가.

공공의 발달에 무심한 우리 국민들

▲ 콜로세움 내부
ⓒ 한길사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로마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하드 인프라는 길과 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길과 물은 현재 어떠한 상태에 있을까. 한 마디로 원활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전인 내가 어렸을 때 우리나라의 길과 물의 상태가 더 좋지 않았을까.

그때는 물이 지금처럼 오염되지도 않았고 길에 차가 넘쳐 막히는 일도 지금보다 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산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늘어나고 자동차가 늘어났다면 마땅히 그에 대비하는 인프라 구축을 했어야 할 텐데 그 면에서 우리는 2000년 전의 로마인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런 것일까. 우리나라가 그때에 비해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프라 정비를 필수적인 일로 생각하는 국민의 마음가짐이 부족하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게다가 더 큰 원인은 인프라 정비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강한 정치적 의지를 지닌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거리가 없다.

인프라는 경제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구축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수요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고 있는 작가의 생각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 중에는 이런 의지를 가진 사람이 정녕 없었던 것일까.

경제력이라고 하는 것이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요건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인프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문제인데 어찌된 노릇인지 우리 국민들이 꽤 오랫동안 개인의 발달에는 전력을 쏟으면서 공공의 발달에는 너무 오래 무심했던 게 아니었는가 싶다.

공공시설을 기증한 로마의 가진 자들

우리가 로마인에게 배워야 할 인프라 구축의 자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로마인은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프라를 국가의 책무, 즉 공(公 )이 마땅히 담당해야 할 분야로 생각하고 있었다. 로마 시대를 통틀어 길이나 다리가 당시의 권력자인 집정관이나 독재관이나 황제의 별장 근처를 지나간 예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도시 개발 과정에서 기억해야 할 큰 교훈이 된다.

나는 적어도 정치가가 자신의 땅을 이용하여 돈을 벌 목적으로 도시 개발을 하는 지역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은 대통령도, 도지사도, 시장도, 군수도, 하다못해 동네 이장도 되지 못하게 하는 그런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할 줄 아는 정치 지도자가 있는 사회, 인프라 공사에서만은 '공'이 '주'가 되고 '사'는 '종'이어야 한다고 믿은 로마인의 사고방식을 제발 배웠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정치가로 뽑아주고 싶다.

둘째로 내가 로마인을 좋아하게 된 것은 로마에서 가진 자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공공시설을 기증했다는 점이다. 이를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부른다고 했던가. "자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가 그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기증이라는 형태로 거기에 보답할 뿐이라는 사고방식"(로마인이야기 4권153쪽)을 가졌던 로마의 정치가들과 지배계급들. 나는 그들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우리나라의 가진 자들이 지금 가진 것도 부족해서 더 많이 갖겠다고 못 가진 사람들의 마지막까지 쓸어 담아 간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기막히다 못해 슬퍼지기까지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재산을 쏟아 박물관을 짓고 운영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면, 서울시장이 자신의 돈으로 문화예술회관을 짓고 운영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면, 이웃한 두 도의 도지사가 자신들의 돈으로 도로를 만들고 관리하면서 두 사람의 이름으로 도로 이름을 짓는다면, 높고 울창한 숲이 있는 산을 소유한 재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붙인 자연휴양림을 만들고 무료로 약수를 나누어준다면... 우리나라에 이런 정치지도자는 앞으로도 영영 나올 수 없는 것일까?

공공의 이익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 트라야누스 시장
ⓒ 한길사
마지막으로 내가 로마인에게 반한 것은 죽음 자체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쟁을 하다가 죽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고, 암살 당하는 일이 무서워 어마어마한 경호를 붙이는 일도 하지 않았다. 병이 들어 죽게 되었어도 굳이 살려고 애를 쓰지 않고 죽음 자체를 의연히 받아들이는 태도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황제가 자신의 후계자나 가족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애타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의외다. 특히나 황제가 될 후계자인 아들을 일부러 전쟁에 내보내 군사 경험을 익히게 한 일은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층 인사가 아들 군입대 면제를 시키기 위해 갖은 수를 쓰는 일과 대조된다. 그러고 보면 군사적 경험을 쌓기 위해 내보낸 후계자가 전쟁터에서 죽어버려 황제의 자리를 계승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필요하다고 여기고 중요하게 다루었던 로마인들의 의식이 로마를 제국으로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북한과의 관계가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서는 국방에 대한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지도자의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도 아니면서 훈련이 어렵다고 갖은 꾀로 자식을 군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정치가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로마인이 세운 제국과 같은 국가를 만들 수는 없으리라.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 결국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 것, 다시 말하면 사익과 공익이 부합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는 최고의 행운"(로마인이야기 8권437쪽)이라고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했더니 나의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남의 이익이 되고, 남의 이익들이 모여 결국은 공익이 되는 이치, 나는 우리 모두가 이 이치를 깨닫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애를 쓰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좋은 정치는 정직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사회를 실현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인프라든 소프트웨어 인프라든 최대한 구축되어야 할 일이고 로마인들이 보여준 '공'의 정신을 우리도 제발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의 정신을 지닌 정치지도자가 다스리는 사회, '공'의 이익을 '사'의 이익보다 존중하는 시민들이 사는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로마인#독후감#인프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며 시골에 살고 있습니다. 교육과 지역 문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