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현 대통령을 맡고 있는 노무현에 대한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여기며 지도자의 자질에 실망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위기를 그 어떤 시대보다 가혹하게 느낀다는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말을 고려해보면 우리가 그렇게 비난하는 대통령의 행동들이 과연 옳지 못한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로마 시대엔 기록말살이란 형을 받게 된 두 명의 황제가 있다. 한 명은 세기의 폭군으로 알려진 네로 황제이고 다른 한 명이 바로 저자의 동정을 사고 있는 도미티아누스 황제다. 사실 치세 말에 공포정치라고 일컬어지는 ‘델라토르(고발자)’제도의 지나친 후원이나 종신 재무관에의 취임을 제외하면 도미티아누스의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그는 암살되기 직전까지 평생을 공공사업에의 착수와 사회 계급간의 원활한 유동성을 위해 기사계급의 등용문을 넓히는 일에 바쳤다. 황제로서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안전보장에 소홀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다져놓은 게르마니아 방벽은 후세의 황제들에 의해 더욱 정착되어갔다. 하지만 로마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황제에게 돌아간 것은 허망한 비난뿐이었다. 눈앞의 현실밖에 볼 수 없는 일반인에게 방벽의 건설은 쓸데없는 전쟁이었고, 엄격한 법집행은 시민들에게 반발만 일으킬 뿐이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떠한가. 그와 가장 자주 다퉈야했던 것은 다름 아닌 언론 즉, 미디어였다. 물론 대통령이 비난받는 것은 원로원에 해당하는 야당과의 불화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그건 노무현뿐만 아니라 어떤 대통령도 겪었던 일이다. 오히려 그런 건전한 경쟁이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로마의 제정 역시 황제의 권력에 대한 원로원의 제제를 막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중 매체의 시대에서 그런 야당의 공격에 대한 반격이 매스컴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데에 있다. 언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신념은 진실 보도에 있기 때문에 언론에서 나오는 말은 대개 진실에 가까울 테지만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다소 과장된 표현이 들어갈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치세를 마치 세상의 종말처럼 표현한 역사가 타키투스의 서술을 볼 때 언론의 과장된 보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하지만 현대는 특히 대통령의 발언이 바로 전 국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시대이기에 사소한 말 한마디가 국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통령이 된 것만으로도 노무현은 충분히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개혁을 추진할 만한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도자의 자질이 그런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남들 위에 서기 위해선 남들보다 언행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카이사르의 말은 몰락해가는 현 대통령의 정치가 얼마나 무지했고 어리석었는가를 말해준다.

로마의 황제가 절대 권력을 가졌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을 항상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황제가 어떤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선 로마 시민의 지지를 얻어야 했고 그것은 축제나 경기장에서의 시민의 호응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겉으로 보이는 성과의 표현에도 신경을 써야만 했다.

도미티아누스를 비난했던 건 시민들보다는 원로원 의원에 있다는 점에선 차이가 있겠지만 그가 시행한 정책이 아무리 옳고 이롭더라도 원로원의 견제를 무시한 그의 처사와 법의 표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해 조심스럽지 못했던 정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비난받을 만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으로부터 탄핵을 받음으로써 한차례의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도미티아누스 역시 암살 이후 그의 업적을 지워버리는 극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탄핵의 주체가 일반시민이 아니라 야당이나 원로원이었고, 사건 이후 시민들로부터 악평을 받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다지 좋은 정치를 펼치지 못했던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 이후 극적으로 승화되었듯이 도미티아누스 황제 역시 후대에 이르러 조금씩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에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가들에게 평가받게 되는 것은 탄핵 이후의 정치다. 암살되기 전까지의 치세로만 평가되는 지도자와는 달리 탄핵으로부터 구조된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받은 동정을 확고한 지지로 바꾸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받을 당시 국민들이 보낸 것은 아무런 반격도 할 수 없었던 지도자에 대한 동정이었지, 그의 정책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무리한 개혁 추진에 앞서 올바른 처신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했다. 그 어떤 개혁도 강력한 지지가 없이는 성립될 수 없고 아무리 솔직한 발언도 확고한 신뢰가 없이는 인정받을 수 없는 법이다.

로마의 세 번째 황제였던 티베리우스는 군단장 시절, 확실한 실력과 곧은 성품으로 로마시민들에게 널리 존경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에 즉위한 이후엔 별장에 틀어박혀 치세 내내 얼굴 한 번 볼 수 없던 황제에게 시민들은 실망했고 존경심은 서서히 혐오감으로 바뀌어갔다.

그의 정책은 아주 적절했고 신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던 듯하다. 지도자는 항상 남들보다 앞선 머리로 휘하를 이끌어야 하지만 그의 눈높이는 항상 대중에 맞춰 있어야 한다. 티베리우스가 간과한 이 사실 때문에 그의 업적이 시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탄핵 후의 정치에 실패한 한 대통령의 비운 역시 그 사실에 원인이 있다.

탄핵 이후 가장 많은 비난의 표적이 되었던 것은 바로 부동산 문제였다. 현 대통령 임기 이전에도 이미 지역간 빈부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왔었고 누군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따라서 언젠가는 반드시 터져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로마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란 말이 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뛰어난 공공심으로 가난한 자들을 돕게 되는 관습을 말하는데, 그것은 결코 아무런 대가도 없이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공공건물을 짓게 되면 기념비에 이름이 새겨짐으로써 명예를 얻게 되었다.

가도 건설을 위해 땅을 기부하는 사람들은 편리한 교통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기부를 했을 시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홍보하기보다는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역설만 거듭 강조함으로써 부자들에게 오히려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언론에 자주 노출되어 있는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현실성 없는 정책에 실망하는 국민들의 심리가 언론의 표적이 된 것은 너무 당연한 귀결이다.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던 교육 문제 역시 탄핵 이후 더욱 불거져갔다. 고교 평준화를 통해 교육에서의 격차를 해소하려 했던 생각은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증가하는 현실 앞에 무너졌고, 고교 간 분명히 존재하는 격차를 반영하지 못한 내신 제도는 뛰어난 인재를 낙오시키는 모순을 낳게 되었다.

교육을 무엇보다 중요시여기는 우리 민족에게 지도자의 이런 실책은 무엇보다 커다랗게 여겨졌을 것이다. 대통령의 인사 정책 또한 한쪽으로 치우쳐진 불균형 인사라는 평이 우세하다. 유시민이 복지부장관에 취임한 것을 보고 세간에서는 대통령이 자신의 코드에 부합하는 인사를 행했다는 말이 많다.

도미티아누스 역시 기사 계급을 적극적으로 고용함으로써 기존 기득권층인 귀족 출신 원로원 의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티베리우스 문하생들처럼 기사 계급 출신들은 나중에 도미티아누스의 손발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지도자들은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적임자를 밀어준 것뿐이지만 그로 인해 파급될 위화감을 고려했어야 했다. 이같이 계속되는 정책의 실패가 한 경우에는 기록말살이란 극형으로, 다른 경우에는 대통령이 힘들다고 하소연할 정도의 심각한 스트레스로 이어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도미티아누스의 황제의 가장 큰 공통점이자 실책은 그들이 명예보다 실리에 중점을 뒀다는 데 있다. 사실 실리주의가 재평가되는 현재, 현실적인 이익이 무엇보다 중요시 여겨지지만 지도자는 그것이 민족의 자존심에 위반된다면 정책 추진에 거듭 조심을 기할 필요가 있다.

도미티아누스는 야만족들의 협공을 막기 위해 다키아 족과 평화 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그는 황제로서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안전보장에 성공한다. 하지만 군사를 모르는 일반 로마인에게 그것은 야만인에게 평화를 구걸한 것처럼 보였다. 로마인의 명예가 더럽혀진 것이다.

현대에 와서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라크를 향해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대한민국은 미국의 전쟁을 위한 대의명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전을 요구받았다. 분명히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을 것이고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서 참전에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타당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미국에게 휘둘리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국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내버렸다.

지지층의 다수를 구성하던 젊은 유권자들의 가슴에 이 사건은 더욱 분노를 일으켰던 것이다. 미국의 주도로 성사되었다는 FTA협정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국익에 전혀 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겠지만 일반인이 느끼는 체감이익은 현실과 다른 법이다.

지도자가 정책의 옳고 그름을 설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이익을 적극적으로 홍보함으로써 선입견을 갖고 있는 수혜자가 다소 과장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지도자는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분명히 노무현 대통령이 실시한 정책들은 대개가 국익을 우선시하고 약자들을 배려하는 것들이었다. 그는 국가 최고의 자리에 당선되기 전에는 충분히 인정받고 존경받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앞선 자리에 있는 인물로서, 후세에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다만 그 후임자가 선례를 본받아 지도자로서의 험난하고 고달픈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으면 한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되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업적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 또한 객관적인 관점으로 공정하게 평가될 수 있었으면 한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