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시대가 요청하는 '도전'에 최적화된 지배구조로 '응전'했던 조직이었습니다. 현대의 그 어느 조직보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얻었던 조직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속해 있는 조직의 규모에 상관없이 도전적인 과업에 직면했을 때 항상 먼저 찾아보고 지혜를 빌리고자 하는 곳 역시 '로마인'들의 역사일 것입니다.
다음은 줄리어스 카이사르의 법적인 상속인으로 지목됐지만, 부대표였던 안토니우스와의 오랜 경영권 분쟁 그리고 상속자라고 자칭한 클레오파트라와의 소송을 딛고 천년기업 '로마'의 안정화에 성공한 아우구스투스와의 가상 인터뷰입니다.
- 그 동안 큰 조직을 운영하면서 새로 얻은 습관이라도?
"'이상'보다는 '정책'을 고안해 내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모두가 잘살고 행복하게 사는 조직이란 게 있는가'라는 문제는 아주 개인적인 감상의 대상이라는걸 알았습니다. 내가 속해있는 당, 그리고 내가 처해있는 조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power over',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power to', ~에게 권력이 잠시 부여되는 지배구조가 로마의 전통입니다. 저 역시 '제일 시민'이란 호칭이 너무나도 영광스럽고 부담스럽습니다. 위임된 일들이 잘돼가고 있는가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 때도 많습니다."
- 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로마에 지원할까요? 그 이유라도?
"왜 '로마시민'일까요?라는 질문으로 봐도 무방하겠습니까? 너무나도 간단명료해서 놀라실지도 모르겠군요. '부과된' 의무에 비해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무한대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는 개인에게 부여한 의무를 다하고 뛰어난 성과를 보인다면 출신에 상관없이 황제까지 가능한 구조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회사의 가장 명망 높았던 리더 중의 한 명인 트라야누스를 보십시오. 그의 혈통은 스폐인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속주, 본국 구분 없는 인재 등용은 로마 초기부터 적극 추천되던 항목입니다. 한국의 경우를 보니 군가산점 문제마저도 허공에 맴돌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한국에선 군생활이 취미인가 보죠? 물론 뉴스를 보니 취미처럼 생활하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더군요. 제 친구 중에 마이케나스라는 친구는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예술가의 후원자이자 특히 시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친구죠. 그 친구 역시 훌륭한 군인이였습니다."
- 그렇다면 '로마시민' 면접시에 가장 많이 보는 부분이 뭡니까? 면접시 요령이라도?
"저희 회사는 처음부터 제국적 기업이 아니었습니다. 로마라는 조그만 언덕에 만든 가내수공업형태로 시작된 조직이었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작았을 뿐 장기적인 목표는 웅대했습니다. 미래를 대비해서 구성원들의 행동지침(code of conduct)을 엄격하게 정했습니다. '덕', '비르투스'라고 현재에는 알려진 것들을 말하는 겁니다.
간단하게 설명드린다면. '귀족은 덕성에서 시작한다(Ex virtute nobilitas coepit)' 라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가 지중해에서 커다란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갖추기 전부터 덕(비르투스), 신의(피데스), 자유(리베르타스) 등은 시민사회를 지배하던 암묵적인 약속이었습니다. 로마시민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인적인 미덕이었습니다. 이런 '시민의 덕' 자체가 가문이나 유전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전통은 로마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강력한 정신적인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로마 해체 후에도 천년이 넘게 중세의 기사도, 프랑스 혁명 그리고 미국혁명의 정신적 기원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와 키케로는 정치적으로는 적이었지만 시민의 '비르투스(덕)'에 대한 이견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즉 로마에서 태어나도 이러한 시민이 지켜야 할 덕목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사회 내에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물론 제 혈육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게다가 끝임없는 주위 민족과의 전쟁과 지속적인 로마 내의 권력투쟁으로 만들어진 개인과 개인의 관계, 개인과 집단의 관계, 집단과 집단의 관계의 원천 역시 자발적 '시민의식'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민 의식의 바탕없는 정치적 권력에는 정당함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권리행사와 이것을 대표해 줄 존재 없는 개인의 의미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현재는 민주주의로 알려져 있나요? 면접요령이라… 글쎄요? 로마는 요령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반대파들에 의하면 '위선적'인 '모략가'라는 말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외형적인 형태의 시민당 그리고 귀족당이 있지만 이분들은 언제나 개인의 붕당적 이해에 따라서 언제나 변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이해관계는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죠. 아주 현실적인 부분이죠. 전 이들을 모두 중재하고 이들을 통해서 '로마'의 정당성을 유지시켜 줄 존재였습니다.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 잦은 변신을 했던건 맞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도덕'적인 슬로건으로 무장했지만 이천년 전 로마의 노예마저도 수치로 여겼던 신의(피데스) 없는 행동에 대해서 한국의 현실은 뭘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여당이 4년도 안돼 해체하면서 '위선'이란 단어를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뚜렷한 당파적 세력이 없었던 키케로도 집정관까지 했습니다.
'로마시민'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명목상의 표어보다는 철저한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계약으로 뭉쳐진 조직의 힘을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나 갈 리더십의 '덕목'을 명확하게 알고 실천했던 것입니다. 물론 자유(리베르타스)와 권위(아욱토리타스)는 현실정치에서는 권력의 원천으로 또는 정당성의 구실로 남용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런 문제로 골치가 무척 아픔니다. 저는 위선자가 뭔지를 잘 모르지만 이상적인 도덕주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을 위선자라고 칭한다면 저는 위선자라고 자처하고 싶군요."
- 이해관계가 다른 당이나 개인간의 문제 해결시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었입니까?
"당이나 개인간의 입장이 전혀 다를지 몰라도 어느 정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사실(fact) 이란 게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실마저도 공유하지 못한다면 의견 차이는 의미가 없어지는거죠. '로마시민'에게 있어서 항상 공유됐던 '사실'은 지배구조의 형태가 '공화정', '왕정' 혹은 '제정'이라고 해도 실질권력의 배후엔 '과두지배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몇몇의 지도력이 수준이 국가의 존망을 가져온다는 사실이죠. 즉 그 몇몇 지도자들의 불필요한 반목과 투쟁은 절대 '로마'에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제가 추진했던 새로운 지배구조 '제정'이 성립했던 것입니다.
- '공화정'에서 '제정'이란 파격적인 변화를 이루셨는데 가장 이상적인 기업지배구조가 '제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속해 있는 조직구성원들로 하여금 '정당성(legitimacy)'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제도적 형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시대에 유행하는 형태가 있긴 하죠. 제가 '제정'을 이루기 전까지 로마에선 '공화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지배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어땠습니까? 귀족들은 단지 자신들의 재산과 권리만을 유지하기 위해서 원로원의 개혁을 주장했지만 시민들은 냉정하게 그 시스템을 반대했습니다.
게다가 이상주의적 도덕주의라는 출처마저 불문명한 이념이 국민 정서에 만연되있다면 문제는 더 커졌을 테지만 '로마시민'은 이상주의자들은 아닙니다. '로마시민'이 직면한 '도전'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면 그것이 정답인 것입니다. 로마를 보십시오. 지배 구조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기업지배구조가 효율적이고 투명한 곳일수록 15~20%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모두가 '로마시민'이 되고자 하는 이유라고 봅니다. 저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이념적 간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파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 그렇다면 로마의 핵심경쟁력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로마'도 현재의 한국이나 과거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는 이유는 어려운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의사결정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들 역시 정치문제의 핵심 사안도 알고 있고 효과적인 처방도 알고 있지만 어려운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성숙한 의사결정구조가 없더군요. 의사결정시스템의 부재는 현재 '대한민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겁니다. 우유부단함과 심사숙고를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의 정치적 목적과 이상적인 도적주의와 구분을 못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오늘 인터뷰한다길래 신문을 읽었더니 '국민연금' 문제가 나와서 읽어봤습니다. 로마같으면 벌써 폭동이 일어나고 곳곳에 음모가 싹트고 있을겁니다. 내가 속해 있는 조직구성원들이 불만이 싹트면 언제라도 지도자에게 해가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게 제 양아버지(카이사르)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심지어 양부는 몇 명의 반대론자에 의해서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에게 전하실 말씀이라도?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서 제가 속해 있는 '로마'에 관심을 가져주신 데 일단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인터뷰 전에 들었던 '지역주의'라는 단어는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사람이 동물이나 식물과 같습니까? 그럼 산다는 표현보다는 '서식'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군요.
무엇보다도 진실한 역사의 이해를 위해서 '로마'를 바라볼 때 너무 인물이나 업적 위주로 바라보지 마십시요. 어떤 면에서 단편적인 이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역사의 사건들은 인습적인 선과 악의 대결로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역사의 비극들은 좀더 복잡합니다. 각각의 주역들은 나름의 정당성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한가지로 설명하고자 하는 유혹만 버린다면 '로마시민'의 이야기는 여러분께 언제나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한길사,2007
로널드 사임. <로마 혁명사>, 허승일 김덕수 옮김. 한길사,2006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모집 응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