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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뜨거운 뙤약볕에서 콩밭 매는 어머니
ⓒ 김민수
우리 집에는 텃밭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서울하늘에 있는 옥상텃밭이요, 하나는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큰 강원도 물골에 있는 밭입니다.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요, 채식을 좋아하는 가족이라 밥상에 늘 야채투성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채소를 나누어줄지언정 사서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서울하늘 아래에 살면서도 벌써 10년 이상 채소를 자급자족하기까지는 어머님의 노고가 가장 크다는 것을 우리 가족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서울에 있으면 강원도 물골의 밭을 걱정하고, 물골에 계시면 서울의 옥상텃밭을 걱정하시는 어머니는 늘 농사일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저 소일거리 정도로 하시면 좋겠는데 아예 "아이고, 죽겠다. 이게 뭔 고생이냐?" 하시면서도 그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십니다. 그리고 농사지은 것을 추수하면 지인들에게 나누느라 바쁘시고, 인삿말로 "대단하십니다" 하면 그것으로 채소값을 받았다고 생각하시지요.

그런데 자식된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여간 많은 게 아닙니다. 부모님이 며칠 출타라도 할라치면 옥상밭 관리를 고스란히 해야 합니다. 강원도 물골에 농사일이 있으면 모셔다드려야 하고, 또 모셔와야 합니다. 물론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지만 가끔씩은 손익계산을 따져볼 때도 있고, 몸이 힘들거나 오랜만에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에는 농사일에 매달리는 어머니에게 서운한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 토마토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지주를 세우고, 끈을 매는 어머니
ⓒ 김민수
6월의 마지막 주간 부모님은 물골에 계셨습니다. 김도 메고 콩도 따고, 마늘수확을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휴일을 맞아 부모님을 모시러 갔을 때 완두콩과 마늘 10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기 직전에는 지인들에게 나눠줄 파며 아욱을 잔뜩 뜯어 차에 바리바리 실었습니다.

그나마 마늘이 있어 그렇지 왕복 기름값이며 뭐 빼고 나면 우리집으로 오는 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속내를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고, 죽겠다" 하시면서도 그 낙에 사시는데 찬물을 끼얹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색을 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푸념을 합니다.

"야, 다 나눠주고 나니까 요거 남는데 다른 것은 고사하고 기름값만 가지고 완두콩을 사봐라. 일년 동안 질리게 먹겠다. 고생 하나 하지 않고도. 이게 뭐냐? 고생해서 남주고…."
"그래도 어머님 좋아하시는 일이니까 어쩌겠어?"
"그런데 저렇게 온 몸이 아프시다고 하시면서 물골이며 옥상이며 도대체 이해가 안가."
"덕분에 유기농채소를 먹잖아.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것 같은 채소를 먹는 집들이 얼마나 될라고?"
"그려. 대한민국에는 없지. 그런데 소일거리를 넘어섰다는 것이 문제야."

▲ 서울에 가져갈 파를 뽑으시는 어머니
ⓒ 김민수
쉬는 날이면 물골에 데려다 달라, 서울로 데려와라 부탁하시기가 미안한 어머니의 심정을 잘 압니다. 정작 제가 속상한 이유는 즐기시면서 살아가실 인생인데 힘에 부칠 정도로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느새 꼿꼿하던 허리도 구부정해진 어머님,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는데 오로지 그 '일'밖에 모르는 어머님의 삶에 대한 애환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직접 농사지어 먹는 무공해채소도 맛이 서걱서걱합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먹고 가자며 제 주머니에 뭔가를 집어넣으십니다. 뭔가 봤더니 꼬깃꼬깃한 5만원입니다.

"뭐, 이런 걸 주세요. 제가 사면 되는데."
"야야, 기름값만 해도 많이 들었을텐데 넣어둬라. 물골할머니하고 할아버지가 도와주셔서 조금 드리고 남은 거다."
"그런데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 거예요? 옥상것만 해도 충분하잖아요?"
"땅을 어떻게 놀리냐? 그건 죄다. 땅을 놀리는 것은 죄짓는 거야."
"그럼 그냥 물골에 오셔서 드실 만큼만 하세요. 너무 많아요."
"에이그, 이거 팔 수 있으면 좋겠네. 누가 이런 채소를 먹겠냐? 유기농채소 가게에 가도 이런 물건은 없을 걸? 그나저나 장맛비에 비지하고 한약 찌꺼기 잘 말렸냐?"
"예, 고슬고슬 잘 말려서 비닐에 넣어두었어요."

옥상텃밭이나 물골에는 농약이나 비료를 주지 않는 대신 집 근처의 두부전문 음식점에서 나온 비지와 한약방에서 나오는 한약찌꺼기, 방앗간에서 나오는 깻묵,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를 발효시키고, 말려서 사용합니다. 썩지 않는 것 빼놓고는 모두 밭으로 가는 셈이지요.

▲ 마늘밭을 살펴보시는 어머니
ⓒ 김민수
어머님 덕분에 우리 집은 밥상은 참으로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를 지켜가는 과정에서 간혹 갈등이 있기도 합니다.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어머니의 눈에는 요즘 젊은이들이 씀씀이가 영 맘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우리가 초식동물이냐" 항의를 하며 피자나 치킨 같은 것을 요구하면 부모님 눈치를 봐가며 사줘야 합니다. 우리가 미안해 할까 한 쪽 정도는 드시지만 "그거 무슨 맛으로 먹냐?" 하십니다.

물골에서 돌아온 날 식탁을 보니 소금과 젓갈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농사지은 것으로만 버무려진 배추김치, 집에서 담근 막된장, 방금 옥상에서 따온 풋고추와 상추, 삶은 호박잎과 가지, 호박지짐, 물골에서 꺾어온 야생 씀바귀, 옥수수와 완두콩이 가득 들어간 밥, 생부추와 실파, 삶은 감자, 군마늘이 식탁에 풍성하게 놓여 있습니다.

아이들은 먹을 것이 별로 없다고 아우성이고, 부모님은 이렇게 먹을 게 많은데 왜 먹을 게 없냐며 배고파 보지 않아서 그런다고 하십니다.

"얘들아, 우리집 같이 청정, 무공해, 유기농 식단을 대하는 집 없을 거야. 최고의 식탁이란다. 그리고 야채를 많이 먹으면 살도 안 찌고, 건강에 좋아. 감자는 말이야 튀겨 먹으면 안 좋지만 구워서 먹거나 삶아 먹으면 완전식품에 가까워, 쌈에 막된장 올려놓고 싸먹어봐, 이게 진짜 음식이지."

아이들의 대답은 "치~" 한 마디입니다.

▲ 장마철 물골의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 김민수
그런데 어머님의 모습에서 간혹 나의 미래를 봅니다. 나도 요즘 현대인들의 먹을거리, 도시의 생활과 사교육 등이 버거워 아이들이 자립할 때쯤이면 도시의 생활을 훌훌 털고 아내와 시골에 내려가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갈 꿈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때 어찌 저희 부부 먹을 것만 짓겠습니까? 아이들과 지인들 나눠줄 것까지 짓겠지요.

장마철이 아니랄까봐 물골 하늘에도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이번 봄과 여름에 가뭄이 심해서 장맛비에도 온전히 해갈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번 장맛비로 인해 아파하는 이들이 없이 감로를 뿌려주고 장마가 지나가면 좋겠습니다.

평화로운 우리집 밥상, 거기에는 못말리는 우리 어머님의 사랑이 들어 있고, 땀방울이 들어 있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어머니, 서울에 오시자마자 물골에 갈 날을 잡고 계시고, 옥상텃밭에 올라가 그간 잘 있었나 둘러보시고, 아내는 혹시라도 잘못한 것 있을까봐 마음 졸이며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어머니, 가지하고 호박은 셀 것 같아서 따 먹었구요, 토마토 잘 익은 것은 용휘가 따먹었구요, 상추하고 근대는 너무 많아서 거여동(처가)에도 가져다 주었어요."
"잘했다. 내일은 마늘 뽑아야겠다. 과일껍데기를 좀 잘게 해서 텃밭에 묻어야지 너무 두꺼우면 파리 꼬인다. 저기 파모종 낸 곳에 개똥참외싹 올라온다. 저건 다 뽑아주고, 저기 까마중은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잘 둬라."

못말리는 어머니의 농사짓기, 보조를 맞추긴 힘이 들긴 하지만 오랫동안 농사짓는 일을 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무농약 채소, #밥상 평화, #어머니, #물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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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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