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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 '국민 여배우'란 호칭을 얻은 영화배우 전도연. 사진은 지난 2006년 2월 9일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장면.
영화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 '국민 여배우'란 호칭을 얻은 영화배우 전도연. 사진은 지난 2006년 2월 9일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장면. ⓒ 오마이뉴스 남소연
얼마 전 전도연이 문화관광부 장관실에서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이를 통해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렸고,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매체들이 붙인 이름이 '국민 여배우 전도연'이었다.

지난 6월 2일자 <중앙일보> 설문조사가 있었고,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칸의 여왕'으로 등극한 전도연이 '국민 여배우'로 낙점 받았다. 전도연(30.3%)은 근소한 차이로 이영애(28.3%)를 제치고 1위로 꼽혔다. 강수연, 김혜수, 문소리 등이 뒤를 이었다."

'국민 여배우'라는 말 외에도 국민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봇물 터지듯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국민 배우 안성기, 국민 여동생 문근영, 국민 MC 유재석 그리고 국민 스타, 국민 개그맨, 국민 영화, 국민 드라마, 국민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국민'이라는 호칭은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최고의 평가로 여겨지는 모양새를 보이기 때문이다. 각종 방송에서도 이러한 점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 가운데 '대중'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물론 대중이라는 말이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초점은 국민이라는 딱지가 과연 그렇게 좋은 의미일까라는 점이다.

자기주장 강하면 '국민 여동생' 될 수 없다?

국민 MC 유재석의 경우, 지나치게 잘 생기지도 않고, 부드러우면서 겸손하고, 적당하게 남을 추켜세우면서도 적절한 몸가짐을 보여준다. 국민 배우라는 안성기, 온 국민의 여동생 문근영에서도 당차고 거친 모습은 없고 순한 모습이 크게 부각된다. '국민 배우'는 무난하고 인내력이 포용력이 있는 인물, 어떻게 보면 모나지 않은 인물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개성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은 어느 때 붙을까? 자기주장을 잘하고, 주체적이고 순수하지 않아 보이고 여기에 예쁘지 않으면 여동생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여동생에 대한 편견을 강화 한다.

모난 돌이어서는 절대로 국민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자기주장이 강한 이들은 싸가지 없고, 무례하고 거만하며 예의 없는 인물로 여겨지는 가운데 그 반대의 성향을 보이면서 폭넓게 인기를 누리면 국민이라는 단어가 붙여진다.

지나치게 잘 생기지도 않고, 부드러우면서 겸손하고, 적당하게 남을 추켜세우면서도 적절한 몸가짐을 보여줘 '국민MC'란 이름을 얻은 개그맨 유재석.
지나치게 잘 생기지도 않고, 부드러우면서 겸손하고, 적당하게 남을 추켜세우면서도 적절한 몸가짐을 보여줘 '국민MC'란 이름을 얻은 개그맨 유재석. ⓒ MBC
예컨대, 개성파 배우는 절대로 국민 배우가 될 수 없다. 창조적 예술가에게 이러한 단어가 붙지 않으므로 오히려 '국민OO'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들은 비창조적이고 비개성적인 존재가 된다. 오히려 예술가 처지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

국민이라는 단어는 시청률 50%가 넘는 드라마에도 붙는다. 시청률이 높으니까 매우 좋은 드라마인 것으로 치장된다. 대표적인 예가 <주몽>이다. 그러나 50%가 넘으려면 무난한 내용이어야 한다. 새롭게 시도되는 내용은 없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고 익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드라마의 발전에 기여한 것도, 얻은 것도 없다. <주몽>도 마찬가지였다. 팝콘드라마일 뿐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 영화 <괴물>도 마찬가지다. 대중적으로는 크게 성공했지만, 영화 예술적으로 보면 새로울 게 없는 영화였다. 그런데도 국민 영화라는 호칭으로 극대의 평가를 내린다. 어쩌면 당연한 호칭일 수 있지만, 그 호칭을 통해 극대의 평가를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였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국민'의 남발

국민과 관련한 식상한 이야기라고 해도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있다. 일제 강점기 이전 어느 나라에도 "국민"이라는 말은 없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일본을 "황국"이라 자칭했고 "식민", "신민"등의 말을 붙여, "황국식민"이라 했다. 준말이 "국민"이다. '국민의례'도 전형적인 사례다.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국민의례는 아직도 바꾸지 않고 있다.

'국민' 이전에는 '인민'이라 했다. 북한이 사용하는지라 남한에서는 의도적으로 피해 국민이라는 단어를 계속 쓰도록 했다. 이런 점은 남한의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해 왔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민'이라는 단어를 쓰는 곳은 일본 외에 남한뿐이라는 지적도 이 때문에 나온다.

시민도 아니고 왜 국민인가? 더구나 황국식민의 의미가 아니라고 해도 우리가 왜 국가에 종속되어 있다는 말인가.

사전적으로 국민은 한 나라의 통치권 아래에 있는 백성,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 한 나라의 통치권 아래 같은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시민은 공민(公民)으로 국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나라 헌법에 의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자유민을 뜻한다. 인민은 국가를 구성하고 사회를 조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인(自然人)이다. 국민은 통치권 아래의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시민이나 인민은 자유민이나 자연인의 의미가 강하다. 주체적 존재의 의미가 더 큰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자유스럽게 다양한 삶의 현실을 보여주어야 하는 예술인들에게 '국민'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가장 개성 있는 이들이어야 할 그들에게 말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갖춘 시기라 국가의 정당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의미와 연원을 생각할 때 '국민OO'이라는 단어의 남발은 유쾌하지만은 않다. 더구나 국민이라는 호칭이 붙을 때 어떤 예술인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것이 욕일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서프라이즈에 보낸 글입니다.


#국민여배우#전도연#국민여동생#문근영#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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