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심고 뿌리는 일도 즐겁고 행복한 과정이지만 농사일 중에서 백미를 꼽으라면 추수하는 순간의 기쁨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고 뿌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거두는 일에만 관심이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추수하는 일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그 추수한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되고,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의미는 더 각별해지는 것이지요. 물론 혼자 농사지은 것은 아니지만 물골과 옥상텃밭을 오가며 심고 뿌렸던 것들이 하나둘 우리집 식탁을 풍성하게 채워가는 계절입니다.
호박·방울토마토·그냥 토마토·부추·파·풋고추·오이·상추까지
그들은 못 생겼습니다. 못 생겨서 상품으로 내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돈도 안 됩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그냥 시장에서 예쁜 것 사다먹는 것이 훨씬 저렴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겁나게 맛납니다. 한 번 그 맛에 길들여지면 조금 힘들어도 못 생겼어도, 돈이 더 들어도 "나는 못 생긴 니들이 제일 좋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텃밭에서 거둔 못생긴 것들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호박, 방울토마토와 그냥 토마토, 부추, 파, 풋고추, 오이와 상추까지 대략 대여섯가지 종류의 채소들입니다. 호박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냥 날로 먹어도 좋을 것들입니다.
막된장을 푹 찍어서 한쌈 먹으면 식사 후의 깔끔한 느낌, 게다가 후식으로 토마토까지 곁들이면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식탁은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먹을 것 갖고 장난치면 안 되지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 중에 하나가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화학비료를 이용해서 겉모습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은 기본이고,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방부제 같은 것들을 마구 첨가하고,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는 유전자조작식품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식탁은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채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육류 역시도 온갖 항생제와 스트레스를 듬뿍 담고 있는 동물시체들이 식탁을 점령했습니다. 사육되는 채식동물의 경우에는 이제 잡식성동물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육골분을 먹고 속성으로 자라 상품으로 팔려나갑니다. 이 모든 것이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는' 현실의 단면일 것입니다.
'유기농, 친환경, 무공해' 등등 요즘 많이 듣는 단어들의 등장은 그만큼 우리의 식탁에 유기농이나 친환경이나 무공해가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이들도 이제는 어떤 채소가 어떤 과정들을 통해서 식탁에 올라오는지 관심조차 없습니다. 벼를 보고 쌀나무라고 했다는 이야기조차도 먼 옛날이야기가 된 듯 합니다. 이젠 벼를 보고도 그게 뭔지 모를 것만 같습니다.
어린 시절, 이맘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텃밭에 나가 고추며 오이를 따서는 물에 한 번 헹궈서 막된장 하나놓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었습니다. 장맛비라도 한 차례 내리면 산야로 나가 버섯도 따고, 족대나 삼태기로 민물고기도 잡아 밥상을 풍성하게 했지요. 그야말로 조금만 수고하면 자연산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자연산' '유기농' '친환경' '무공해' 등의 수식어가 붙으면 서민들은 먹기가 부담스스러운 가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서민들은 농약 듬뿍, 화학비료 듬뿍, 항생제 듬뿍 들어있는 잘생긴 것들을 값싸게 먹는 태평성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에헤라 에루얼싸!' 노래라도 한 곡 불러야 할까요?
웬만하면 멈출 수 없다, 직접 기른 채소
거의 10년 가까이 우리집은 타산이 맞지 않는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냥 시장에서 사다 먹으면 고생도 안하고, 더 예쁜 것들, 실한 것들을 사먹을 수 있을 터이고, 유기농자가 붙은 것을 사먹는다고 해도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이익일 듯한데 해마다 '내년에는 농사짓지 말아야지'하면서도 텃밭에서 우리 식구 먹을 채소들은 자급자족을 합니다.
그 보람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계절이 바로 요즘입니다. 아내가 저녁밥을 올려놓으면 어슬렁거리고 옥상 텃밭으로 올라가 이것저것 바구니에 거둡니다. 밭에서 식탁에 오르고 다시 우리 몸에 모셔지기까지 넉넉잡아 1시간 이내인 셈이지요. 아무리 빠른 배송을 한들 이보다 싱싱한 채소를 식탁에 제공할 수 있으려고요.
게다가 직접 채소를 길러 자급자족하다보니 시장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것들을 먹을 수 있습니다.
요즘 시장에서 사는 상추들은 하나같이 하우스에서 재배된 것들입니다. 이파리의 크기도 일률적이고, 하우스에서 자라 쓴맛도 맹맹합니다. 말이 상추지, 노지에서 자란 상추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그 옛날 상추의 씁쓰름한 맛을 그리워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봄에 뿌린 상추, 맨 처음에는 솎아먹기 시작하다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남겨둔 것들의 이파리를 따먹었습니다. 이파리를 따고 또 따먹다보면 줄기가 올라가지요. 어느 정도 올라가면 꽃이 피기 전에 줄기째 꺾습니다. 하얀진액이 뽀얗게 나오고, 줄기를 먹으면 마치 씀바귀를 먹는 듯 쓴맛이 올라오지요.
이런 것은 시장에서 살 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런데 그 맛은 일품이고, 아삭거리는 맛도 그만입니다. 그 맛에 산술적인 계산을 떠나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누가 호박을 못생겼다 했던가
실한 호박을 얻기 위해서는 거름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우리집에서 나오는 음식물찌꺼기는 거의 호박들의 차지가 되지요. 잘게 썰고, 말리고, 발효를 시켜서 거름으로 주면 호박이 좋아라 합니다.
넓은 잎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도 다음 날 보물찾기하듯 찾아보면 어김없이 실한 호박을 달고 있고, 다 따 먹었는가 싶은데 어느새 들키지 않았던 호박이 늙은 호박으로 변신해서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지요.
요즘같은 장마철이면 쑥쑥 올라오는 새순과 이파리를 따서 찌면 막된장과 함께 환상적인 쌈으로 변신을 하기도 하구요,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까지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마음씨 좋은 호박입니다. 이른 아침이면 그 예쁘고 풍성한 꽃은 또 어떻고요?
누군가 호박을 못 생긴 것의 상징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는 아마도 호박의 아름다운 속내를 보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다 호박이 못 생겼다고 해도 나는 호박이 예쁘다고 그들의 대변자라도 할 것입니다.
오이농사는 저와는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제주에 있을 때에는 모종 10개를 심어 잔뜩 구부러진 오리 두어 개를 얻은 것이 전부였으니까요. 바람을 타면 오이고, 가지가 구부러진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렁저렁 가지는 열리는데 오이는 영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바람이 많이 없는 서울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롱다리처럼 쭉쭉 빠져야 할 오이가 자라다 만 숏다리처럼 자라다 말고 울퉁불퉁 늙어갑니다. 못 생긴 것이 좋다곤 하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키우는 채소라도 예쁘길 바란답니다.
아주 드물게 화학비료를 친 것보다 더 실하고 예쁜 것을 거두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들보다 못 생겼답니다. 그러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못 생겼어도 맛에 있어서는 그들보다 훨씬 월등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마음도 편하고요.
주로 부모님들이 주업처럼 텃밭을 가꾸시고, 저는 시간 날 때만 도와줍니다만 못 생긴 그들을 볼 때마다 한 마디씩 하지요.
"나는 못 생긴 니들이 제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