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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사람들은 왜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일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요?"

기말고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딸이 시험을 이렇게 저렇게 치렀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울먹이며 학교에서 친구에게 당한 일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 반에서 주먹 깨나 쓴다는 녀석으로부터 폭행당한 일이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 녀석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당하고 있는데도 나서서 말리는 친구가 하나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딸은 초등학교에서도 잘 견뎌 주었고 친구관계도 그리 나쁜 편이 아니고 성격도 밝으니 중학교에서도 무난하게 잘 버텨줄 거라는 믿음이 있지만 실제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주변 환경은 그리 우호적이지도 만만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딸은 청각장애를 지닌 중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인공 와우 수술을 했지만 그건 한쪽 귀에만 해당하는 사항이고 더구나 기계음으로 듣는 소리이며 수술을 안 한 한쪽 귀는 완전히 듣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당연히 발음이 약간 어눌하고 소리도 잘 듣지 못하여 앞자리에 앉아서 학교 수업을 받습니다. 그날 주먹 쓰는 그 녀석에게 맞은 것은, 무슨 일로 교탁 앞에서 일주일 동안 벌을 서야 하는 그 녀석이 앞자리에 앉은 우리 딸을 막무가내로 뒷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하면서 책상과 의자를 밀어버리면서 주먹을 휘둘렀다는 것입니다.

그때도 당장 학교로 쫒아가서 그 학생을 야단칠까 하다가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서 벌 서는 그 녀석이 뒤로 가서 벌 서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었고 학교에서는, 나흘 동안이나 기말고사를 치른 학생들에게 <나팔꽃과 해바라기>라는, 장애인을 이해하고 도와주자는 내용이 담긴 영화를 보여 준 모양입니다.

다른 시간도 아닌, 장애인 이해에 관한 내용을 영상으로 보여 주는 바로 그 시간에 몇몇 아이가 우리 딸을 지목하면서, '저 애 장애인이다'라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가장 멀쩡해 보이는 장애가 바로 청각장애니까 새삼스럽다는 듯이 몇몇 아이들이 더 동조했고 그 동조는 곧장 놀림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일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없었던 일이어서 딸은 많이 당황한 모양입니다. 더구나 장애인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대하자는 취지에서 보여 준 영화를 보면서 친구를 놀리고 재미를 느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기가 막힙니다.

"채홍아, 그 영화 보면서 너는 자신을 나팔꽃이라고 생각했니, 해바라기라고 생각했니?"

"나는 나팔꽃도 해바라기도 아니에요. 나는 정신지체 장애를 지닌 내 친구를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친구는 그냥 친구인 거지요. 우리 반 아이들은 학교 청소 할 사람 그러면 다 도망가 버려요. 엊그제도 우리 모둠에서는 청소 자원하는 친구가 없어서 내가 남아서 학교 청소를 하고 왔는걸요. 우리 반 친구들은 소리가 잘 안 들리니까 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면 비웃어 버려요.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를 보면 좀 웃겨요. 비장애인도 장애인에게 보이지 않는 도움을 많이 받는걸요. 그 애들이 나를 장애인이라고 놀리지 않으면 내 장애가 어디로 가나요? 그리고 엄마, 그 영화는 꽃을 좋아하는 정신지체장애를 지닌 여자아이 이야기인데요, 나는 장애인이 나팔꽃일 수도 있고 해바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이라고 별다른가요? 장애인 아닌 사람도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잖아요. 오늘 나를 놀린 그 녀석들도 별로 건강한 아이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책에서 보니까 강한 사람은 너그럽다고 하던걸요."

"채홍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잖아. 그 애들이 놀리지 않아도 네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야. 네 말마따나 오늘 너를 놀린 녀석들은 비겁하고 불쌍한 녀석들이야. 오죽 못났으면 장애를 지닌 친구를 놀리는 것으로 낙을 삼겠니. 그러니까 네가 그 녀석들을 불쌍하고 안됐다고 생각하고 이해해 주면 안 되겠니? 좀 웃기지만 오늘의 그 교육은 장애인 이해 교육이 아니라 비장애인 이해하기 교육이 된 셈이다, 얘."

딸도 나도 말은 그렇게 담담하게 했지만 기분이 착잡합니다. 말이 쉬워서 이해지요.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이 넓고 넓은 바다를 어떻게 다 이해하면서 건널 수 있을는지요.

물론 모든 사람이 장애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 몇몇 몰지각한 사람 또는 친구 때문에 사회문제가 되고 물의가 일어납니다. 장애인을 특별한 눈으로 특별히 배려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자연스럽게 감싸 안는 성숙한 사회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비장애인#사회#놀림#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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