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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세종로 네거리 코리아나호텔 부근 조선일보 사무실 밀집지역.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할 말은 하는 신문'

<조선일보> 광고 카피의 한 대목이다. 광고 카피처럼 <조선일보>, 할 말은 하는 신문이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조선일보>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할 말 하는 것으로만 따지자면 그런 신문들은 많다. 제대로 할 말 다 하는 신문도 있고, 억지일지언정 하고 싶은 말은 서슴지 않고, 우기는 것으로 따져도 <조선일보>를 능가하는 신문도 있다. 어찌됐든 <조선일보> 색깔만큼이나 그 목소리도 또렷하다.

그런 <조선일보>가 모호할 때도 있다.

먼저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에 관해서다. 새 대북정책에 대한 <조선일보>의 태도는 결코 모호하지 않다. 비록 하루 뒤늦기는 했지만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에 대해 지난 주 금요일(6일) 사설 등을 통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좌파 보수'를 표방한 '눈속임 패션'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마디로 '그 놈의 표' 때문에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내던졌다고 혹평했다. 분명한 입장을 천명했다.

그런 <조선일보>지만 정작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 후보의 '화답'에는 별 말이 없다.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을 "상호주의를 포기하고 핵 문제를 분리해 여러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걱정스런 방안"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새 대북정책을 발표했을 때 입장을 유보하는 듯한 태도와도 확연히 다르다. '걱정스런' 이란 조심스런 표현을 썼지만, '상호주의 포기', '핵문제 분리'라는 평가를 통해 '새 대북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조선일보>, 왜 '모호'해 졌을까?

▲ 지난 7월6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PDF
그런데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의 오늘(9일) 기사는 박 후보의 말만 간략하게 전하고 있을 뿐이다. 분석도, 해설도, 한나라당 안팎의 반응도 없다.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새 대북 정책에 대해 유력한 대선 주자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도, <조선일보>가 이를 비중 있게 보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벌써 이 문제의 중요성을 잊어버린 걸까?

<조선일보>가 모호한 사례는 또 있다. 오늘 사설 제목처럼 '검찰 손에 넘겨진 한나라당 후보의 운명'에 대한 태도가 그렇다. 이명박 후보 측이 고소하거나 수사 의뢰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조선일보>는 이를 "한나라당 검증 공방이 결국 검찰의 개입을 스스로 유도하고, 대선 후보의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자기 당의 최대사를 검찰 손에 넘겨주게 된 것"이라면서 "건국 이래, 또 한국 야당사에 처음 있는 일일 것"이라고 개탄했다.

<조선일보>는 검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수사를 질질 끌 경우 '정치적 의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신속한 수사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헷갈린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주문했다.

"검찰의 역할은 고소·수사 의뢰 대상의 위법 여부를 가리는 데 그쳐야 한다."

▲ 9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PDF
그런데 고소·수사 의뢰된 내용의 위법 여부를 검찰은 어떻게 가릴 수 있나? 검찰은 신속한 사건 수사를 위해 이들 사건을 특별히 특수부에 배당하면서 "의혹이 난무하는 선거전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혀 국민에게 선택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조선일보>가 문제 삼은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수사를 통해 '국민에게 선택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한 검찰 의도와 목표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의 역할은 고소·수사 의뢰 대상의 위법 여부를 가리는 데 그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할 말은 하는 신문' 답지 않다. 검찰은 '실체적 진실'을 밝혀 '국민에게 선택 기준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그게 곧 "이런 사람은 되고, 이런 사람은 안 된다는 기준을 내놓겠다"는 뜻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할 말 하는 신문', 쉽고 간명하게 말해 달라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검찰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규명된다면 이는 국민들에게 '선택과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점 또한 너무 자명하다.

"국민에게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검찰의 말이 느낌상 조금은 지나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대로 수사해 의혹 사건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겠다'는 검찰의 굳은 의지를 나타낸 말 정도로 해석해도 그리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그 말 한마디를 문제 삼아 검찰의 수사에 미리 한계를 설정하고, 제동을 걸려 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모호할 뿐만 아니라, 조금은 비겁해 보인다. 무엇보다 철저한 '실체적 진상 규명'을 전제하지 않고 어떻게 '고소·수사 의뢰 대상의 위법 여부'까지만 가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실 문제는 검찰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또 검찰이 신속하게 그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아닐까? 할 말은 하는 신문일수록 쉽고 간명하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검찰은 앞뒤 보지 말고, 신속하게 그 실체적 진상을 밝혀라."

#백병규#조선일보#이명박#박근혜#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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