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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계열사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점거농성과 집회를 열고 있는 가운데,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회원과 홈에버 월드컵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전동 이랜드 본사앞에서 이랜드 비정규직을 위한 예배를 열었다.
이랜드 계열사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점거농성과 집회를 열고 있는 가운데,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회원과 홈에버 월드컵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전동 이랜드 본사앞에서 이랜드 비정규직을 위한 예배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1일 오후 세시 반경. 가끔 시간 확인 용도로나 쓰이는 불쌍한 제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문자는 홈에버 농성장에 전경차가 입구를 봉쇄하고 강제진압 가능성이 있으니 연대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음이 콩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나 매장 안에 계시는 수많은 '내 엄마들'이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됐기 때문입니다. 홈에버 상암점, 오늘로 13일째 영업이 중단되고 있는 그곳에는 수십 명의 내 엄마들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엄마들을 만난 날

지난 9일, 저는 처음으로 혼자서 상암점 투쟁현장에 들러보았습니다. 친구와 선배로부터 그전부터 계속 홈에버 투쟁에 연대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너무 무서웠습니다. 언론에서 이랜드 사태를 보도하는 풍경에는 항상 대치상황과 격렬한 외침들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행동보다 생각이 앞서는 저는, 그런 집회와 시위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스스로 자신에 대한 무기력함과 자괴감, 두려움으로 움츠러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가서 현장을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각종 펼침막이 두서없이 나부끼는 월드컵경기장 주변풍경은 스산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는 하나같이 봉쇄되어 있었고 누구 하나 아는 이 없이 농성장 앞을 서성이는 저에게 어떤 이가 "여기 영업 안 합니다"라는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낯설고 거친 풍경 앞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왕 떨리는 발걸음 애써 옮겨서 온 제 용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노조원 한 분을 붙잡았습니다.

이런 직접적인 현장은 처음이라는 제게, 조근조근 상황을 설명해주시던 이랜드 일반노조 여성국장님. 이야기를 나누고 안내를 받아 들어간 매장 안 농성장을 바라보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계산대를 점거하고 앉아 있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에서 엄마 모습이 자꾸 보였습니다. 긴 구호들을 간간이 틀리며 쑥스러워 웃는 얼굴에서, 엄마를 생각했습니다. 이미 울 것 다 울고 더 씩씩해진 아주머니들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저는 뒷북을 치며 연방 눈물만 훔쳐댔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자리를 떠나면서 그렇게 제 마음대로, 그곳에 모인 많은 아주머니들을 엄마로 삼았습니다. 역시 언론에서 보이는 모습과, 현장에서 보는 느낌은 달랐습니다. 저는 참 많은 엄마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11일 오후, 경찰력 투입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벌어지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11일 오후 경찰이 살수차와 버스로 매장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벌어지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11일 오후 경찰이 살수차와 버스로 매장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언론에서 교섭이야기가 나오고 상황이 진정국면으로 가는가 싶더니 아니었습니다. 대치상황이라는 문자를 받고, 도착한 오늘(11일) 오후의 홈에버 상암점 주변은 정교하게 잘 주차된 닭장차(?)로 에워싸여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비와 넘쳐나는 전경들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이던 저는 학생들을 따라 지하주차장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농성장 풍경은 지난 9일에 방문했을 때보다 더 어수선했습니다. 병력이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전기공급이 끊겼다고 했습니다.

상황을 둘러보니, 오늘은 일찍 집으로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하는 일이 뭐 있겠습니까. 그냥,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그 자리를 지켜주는 일. 경찰력이 함부로 엄마들을 연행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엄마들의 투쟁에는 '이념'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그들의 어깨에는 본인들뿐 아니라, 850만 명이 넘는 비정규노동자 및 예비 비정규 노동자 문제의 생존 또한 함께 얹어져 있습니다. 이 문제 앞에 '좌파'나 '사회주의' 따위의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부 언론에 대한 분노의 마음이 듭니다. 어떤 이념을 운운하고, 구분하여 매도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 먹었습니다

어느덧 저녁식사시간이 되었고, 투쟁기금이 부족해서 집에서 도시락을 싸온다는 엄마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밥을 연대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번쯤 사양했던 저녁식사였건만 밥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머리보다 배가 먼저 반응했습니다.

연대한 학생들을 위해 비좁은 자리를 양보해주시던 한 아주머니 옆에 앉아서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렸습니다. 살벌한 바깥의 풍경과 달리, 서로에게 밥을 권하고 반찬냄새가 진동하는 매장 안의 풍경은 눈물겹게 따뜻하고, 살갑고, 정겨웠습니다.

입안에 한가득 밥을 넣고 "가족들은 뭐라고 안 하세요?" 라고 묻는 제게 "왜 뭐라고 안 하겠어, 그걸 꼭 엄마가 해야 되냐고 묻지. 그나저나 학생은 이런 데 나온다고 엄마한테 안 혼나?"라며 되묻습니다.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타박하는 엄마를 떠올리며 아줌마를 향해 그냥 빙긋이 웃었습니다. 이내 아줌마가 저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마디 하십니다.

"그래, 내 자식이 이런 현장에 다닌다 그러면 나도 싫을 것 같아."

맞은편에 있던 다른 분이 담담히 말을 받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지. 여기 나와 있는 우리 자식같은 학생들 비정규직 안 만들려면."

목이 메 쉽게 넘어가지 않는 밥을 아줌마들이 자꾸 권합니다. 집에서 손수 마련해 오셨다는 반찬들이 참 맛있었습니다. 특히 직접 구우셨다는 김 맛은 아직도 입안에 감돕니다. 계산점 엄마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슬프지 않은 엄마들의 파업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장기농성을 벌이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11일 오후 경찰에 의해 완전 봉쇄된 매장에서 민중가요에 맞춰 춤을 추며 긴장을 풀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장기농성을 벌이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11일 오후 경찰에 의해 완전 봉쇄된 매장에서 민중가요에 맞춰 춤을 추며 긴장을 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9일 날 뵈었던 여성국장님을 발견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시위경험이 없다는 제 말을 기억하고 있던 국장님은 "아휴, 사지로 들어왔네. 나가는 건 전경도 안 막으니까 언제든지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좋다"며 걱정해 주셨습니다. 또 "상황이 악화되면 연행될 수도 있다"는 말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겁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모여 있는 엄마들이 끝까지 싸우기를 원하고, 구속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제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엎치락뒤치락 정신없는 바깥 상황과는 달리 우리는 평화롭게 문화제를 진행했습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굵직한 곳에서부터 각종 학생, 시민 단체들의 연대와 지지발언 등이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파업 기간 조직된 '율동패'였습니다. 너무나 능숙하고 절도 있는 엄마들의 율동에서 옅은 슬픔과 함께 희열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계산대에서 마치 물건처럼 소비되던 엄마들은 이제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어떤 것을 위해 발언을 하고,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는 생각보다 굉장히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나는 엄마들의 그 용기가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밤 11시 30분경까지 이어진 문화제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들어와 홈에버 엄마들과의 만남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저는 서너 시간만으로도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엄마들은 오늘로 열세째 날로 접어듭니다.

피곤하게 싸우는 일보다는 도망가거나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 더 쉽다는 걸,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홈에버 엄마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투쟁과 점거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엄마들의 싸움에 박수와 응원으로 함께 할 것입니다. 훗날 내 삶을 얽매올지도 모르는 '비정규보호법'을 위해 앞서 싸워주고 있는 홈에버 엄마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엄마들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랜드 제품 불매를 권합니다.

11일 오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점거농성이 계속되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이 경찰병력에 의해 봉쇄된 장기농성에 피로가 누적된 여성노동자들이 계산대 부근에서 휴식을 하고 있다.
11일 오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점거농성이 계속되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이 경찰병력에 의해 봉쇄된 장기농성에 피로가 누적된 여성노동자들이 계산대 부근에서 휴식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홈에버#엄마들의 파업#비정규직#상암동#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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