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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주성을 완전히 평정한 양규의 고려군은 거란군에게 사로잡혔던 칠 천명의 백성들에게 양식을 주어 통주로 내보내었다. 거란군은 개경을 친 후에 곽주성을 근거로 강동 6주를 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는데 양규의 과감한 작전으로 인해 완전히 틀어진 셈이었다. 곽주성 안에 쌓인 무기와 남은 양곡의 수를 헤아리는 것만 해도 수십 명이 달라붙어 하루 종일 파악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사방에 통문을 보내라. 적의 본진이 돌아오기 전에 각주에 산개해 있는 거란군을 남김없이 쓸어버려야 한다.”

양규가 통문을 돌리기 위해 전령을 보낸 후 얼마 되지 않아 곽주성으로 전령이 도달했다. 유도거와 김달치는 예전처럼 보고를 마치고 오는 전령을 잡고 소식을 듣는 게 아니라 양규의 옆에서 직접 소식을 접할 수 있어 매우 기분이 좋았다. 전령의 장계를 읽은 양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개경이 함락되고 폐하께서는 나주로 가셨다는군. 허어….”

유도거와 김달치, 이랑은 고개를 푹 숙였고 이랑은 눈물까지 훔쳤다.

“허나 너무 낙담할 것은 없네. 우리가 곽주성을 점거한 이상 거란 또한 양식이 다 되어 군사를 되돌릴 수밖에 없을 터이니 치욕을 되갚을 기회가 올 것이네.”

곽주성이 함락되었기에 오히려 거란군들은 고려 땅 안에서 갇힌 꼴이었지만, 거의 이십 만에 달하는 거란군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양규 휘하 어느 누구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오직 거란군에 대한 피의 보복이었다. 땅에 쓰러진 고려군의 시신을 수습하며 그들의 복수 의지는 더욱 거세어졌고, 사로잡은 거란군들의 목을 벤 후에도 더 많은 거란군의 피를 갈망하고 있었다.

“올라오는 거란놈들을 곽주에서 맞아 싸운다는 건 무리입니다. 곽주는 강동6주의 남쪽 관문 인만큼 이곳에서 막아선다고 해도 거란놈들은 계속해서 집결할 것이고 거란병이 모조리 모여든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도거의 말에 양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란놈들을 강동 6주 깊숙이 끌어들인 다음 도처에서 공격한다면 저들은 앞뒤를 돌보지 못해 무너질 것이다. 도거와 달치, 이랑은 들어라!”

“예!”

“지니고 갈 수 있는 만큼의 양곡과 무기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불태워 버려라! 거란놈들이 곽주에 쌓아둔 병량을 다시 취할 수 없게 해야 한다.”

양규가 이끄는 병사들은 거란군의 시체와 곡식, 무기가 한데 어우러져 불타오르며 뿜어내는 검은 연기를 뒤로하고 다시 흥화진을 향해 행군했다.

“이기고 돌아가는 길이지만 마음이 씁쓸하네.”

푸념을 늘어놓을 것만 같은 김달치의 말에 유도거는 슬쩍 짓궂은 말투로 답했다.

“그래도 자네는 뜻밖에 수확이 있지 않았나?”

그 말에 김달치는 제풀에 놀라 펄쩍 뛰며 부정했다.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겐가! 이 거친 전장에 뭘 얻어 갔다고!”

“뭐 거친 전장? 크하하하… 자네는 그 거친 전장에서 한 떨기 들꽃에 반하지 않았나? 응? 그렇지 않나?”

“엣끼! 이 사람이 실성을 했나! 난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김달치가 계속 발뺌을 하자 유도거가 김달치 옆에 바짝 붙어 조금 떨어져있는 이랑을 슬쩍 가리키며 속삭였다.

“그러지 말고 마음에 있다면 말하게나. 내가 다리를 놓아 줄테니.”

“아니 그런데 이 사람이….”

김달치가 인상을 쓰며 유도거를 노려보자 유도거는 모른 척 이랑에게로 달려가 말을 걸었다.

“이랑 부장! 거 내 친구 달치가 그러는데 말이오!”

“아 이 사람이!”

김달치가 달려가 유도거의 입을 막고 장난스러운 실랑이가 이어졌다. 이랑은 이를 바라보지 않고 짐짓 외면했지만 입가에는 알게 모르게 살짝 미소가 감돌았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연재소설#결전#최항기#흥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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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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