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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하고 푸짐한 남도의 인심과 온갖 나물이 가득 담긴 보리밥 한 양푼
넉넉하고 푸짐한 남도의 인심과 온갖 나물이 가득 담긴 보리밥 한 양푼 ⓒ 조찬현
가난의 상징이었던 보리밥. 1960~70년대 보릿고개 시절에 우린 보리밥을 넌더리가 나도록 먹고 살았다. 그 시절에는 쌀이 워낙 귀해서 집에 잔치가 있거나 특별한 날에만 쌀밥 구경을 했다.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했고 국가에서는 혼·분식을 장려했다.

보리쌀은 밥 짓기도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미리 한번 삶아서 대바구니에 담아 보관해 두고 쌀과 함께 가마솥에 넣고 불을 지펴 밥을 지었다. 그 천덕꾸러기 보리쌀이 최근에는 귀해서 대접받는 세상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추억이 담겨있는 건강식 보리밥

상이 비좁을 정도로 떡 벌어지게 한상이 차려졌다.
상이 비좁을 정도로 떡 벌어지게 한상이 차려졌다. ⓒ 조찬현
보리밥 한 그릇에는 보리밭을 쏴아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도, 청보리밭의 추억도, 보릿고개의 아픔도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억 찾아, 새로운 건강식을 찾아서 보리밥집을 그렇게 찾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걸 보면.

백과사전에 보면 '보리밥은 비타민 B1이나 B2가 쌀밥보다 많아 각기병 예방에 좋고, 섬유질이 많아 변비에도 효과적이다. 단백질 등 전반적인 영양가가 쌀밥보다 우수하다'고 나와 있다.

섬유질이 풍부한 보리밥은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주고 독성물질의 배출을 도와줘 대장암과 변비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또 풍부한 섬유질 덕분에 소화가 천천히 되므로 다이어트에도 좋고 당뇨 환자에게도 좋은 음식이다. 고단한 삶이 담겨 있는 보리밥이 이제는 건강식품의 상징이 되었다.

독특한 게장, 갖가지 밑반찬이 빚어내는 오묘한 맛

넉넉한 인심이 담긴 나물
넉넉한 인심이 담긴 나물 ⓒ 조찬현
보리밥 생각만으로도 고향의 풋풋한 내음이 솔솔 풍겨온다. 순천 상사호 가는 길 초입의 보리밥집 '먼 옛날'(전남 순천시 덕월동)에 가면 단돈 5천원으로 행복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겉보기에는 허름하나 내부로 들어가면 전통미가 살아있는 집이다.

이 집의 특징은 감칠맛 나는 갖가지 밑반찬이 빚어내는 오묘한 맛. 대접에 담겨져 나온 보리밥에 갖가지 나물을 취향대로 넣고 갈아 놓은 독특한 게장과 양념 고추장, 김가루를 넣어 비빈다. 이때 참기름을 넣으면 풍미가 더해진다. 하긴 보리밥은 열무김치에 고추장만 넣고 쓱쓱 비벼 먹어도 맛있는데 이렇게 갖가지 나물을 더했으니 더욱 맛있을 수밖에.

이 집은 보리밥을 주문하면 먼저 부추와 호박, 오징어를 넣어 만든 부침개가 대바구니에 담겨져 나온다. 잠시 후 차려진 기본 반찬이 상 가득하다. 그 상차림에 놀라 "와~"했는데 아직 멀었다고 한다. 뭐가 또 나올까 궁금하다. 기대 속에 기다렸다. 구운 생선 한 토막, 장어조림, 쌈 채소 등이다. 상이 비좁을 정도로 떡 벌어지게 한상이 차려졌다.

부추와 호박, 오징어를 넣어 만든 부침개
부추와 호박, 오징어를 넣어 만든 부침개 ⓒ 조찬현
강된장에 조물조물 버무려낸 고구마 순
강된장에 조물조물 버무려낸 고구마 순 ⓒ 조찬현
보랏빛 색깔 고운 갓물김치
보랏빛 색깔 고운 갓물김치 ⓒ 조찬현
강된장에 조물조물 버무려낸 고구마 순, 보랏빛 색깔 고운 갓물김치가 돋보인다. 갓물김치의 보라색은 갓에서 배어나온 것이다.

"갓물김치는 갓과 소금만 들어가요. 간을 잘 맞춰야제. 시원하게 보관해서 자연 숙성을 시켜요."

땅속에서 4년을 묵힌 묵은지

윤기가 자르르한 삶은 돼지고기와 땅속에서 4년을 묵힌 묵은지
윤기가 자르르한 삶은 돼지고기와 땅속에서 4년을 묵힌 묵은지 ⓒ 조찬현
13년째 음식업을 하는 김금자(48) 주인장은 매일 새로운 반찬에 서너 가지의 찬을 바꾼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방짜 유기 그릇을 사용했으나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아 일하는 이모들이 너무 힘들어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한다. 현재는 가벼운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모두 바뀌었다. 이 집은 최근에 김 주인장이 인수해 분위기를 바꿨다.

정갈한 음식들 맛 또한 상큼하다. 묵은지에 윤기가 자르르한 삶은 돼지고기 한 점은 동동주 생각이 절로난다. 보리밥은 큰 대접에 담겨져 나왔다. 나물 따로, 밥 따로 차려지는 음식이 훨씬 푸짐한 느낌이다.

돼지고기 하나를 삶는데도 대파와 양파, 감초, 헛개나무, 인삼, 생강, 마늘 등 수도 없이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 이렇게 준비한 재료를 한 솥 가득 넣고 숨을 죽여 삶아낸다. 삶은 돼지고기는 국내산 돼지고기와 이들의 재료가 함께 어우러져서인지 야들야들하고 윤기가 돈다. 하지만 수입산에 비해 두 배나 비싼 국내산, 그래서 웬만한 집에서는 수입산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바늘과 실처럼 돼지고기를 따라다니는 묵은지는 땅속에서 4년을 숙성했다. 이러니 결코 만만한 맛이 아니다. 이집의 보리밥은 먹거리의 참맛과 건강을 한꺼번에 안겨준다. 주인장의 구김살 없는 웃음과 편안함도 좋다.

보리밥 한 양푼에 넉넉하게 담긴 남도의 인심과 상다리 휘어지도록 내온 나물을 가득 넣고 쓱쓱 비벼낸 보리밥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정겨운 그 집을 또다시 찾은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큐(http://www.newsq.co.kr/)에도 보냅니다.


#오묘한 맛#보리밥의 추억#건강식#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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