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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이 드러나 하얀 달걀을 닮았다.
토란,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이 드러나 하얀 달걀을 닮았다. ⓒ 김민수
어려서부터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토란국이었는데 토란국만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겨울에 삶은 토란을 까서 소금을 찍어 먹는 것도 참 좋아했습니다. 토란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어머니는 배고프던 시절 감자나 고구마도 다 떨어지면 토란을 한 소쿠리 쪄서 내놓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토란은 참 좋은 거여. 썩은 것을 먹어도 탈이 안 나거든. 어여 실한 것으로 많이 먹어. 에미는 썩은 것 골라 먹어도 되니까."

그 말의 진의를 깨닫지 못할 정도의 철없는 나이부터 토란을 좋아했고, 추석이면 소고기 몇 점이 들어가 기름이 동동 뜬 토란국을 먹지 않으면 추석같지가 않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자취를 할 적에 추석을 홀로 자취방에서 보낸 후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니, 토란국을 먹지 않았더니 추석같지가 않네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니는 이 전화를 받고 많이 우셨다고 합니다. 자취를 할 때 쌀이 떨어져 며칠을 굶은 끝에 무서리를 해서 먹고는 속이 쓰려서 고생을 했다는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해서 어머니 가슴에 못질을 한 이후 또다시 가슴에 못질을 한 것이지요.

제주에서는 관상용으로 돌담곁에 많이 심기도 한다.
제주에서는 관상용으로 돌담곁에 많이 심기도 한다. ⓒ 김민수
그래서일까. 어머님은 고단하셔도 토란농사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작은 텃밭을 가졌을 때 제일 먼저 텃밭에 심어보라며 보내주신 것도 싹을 잘 틔운 토란이었습니다.

토란을 거둔 후 실한 것들을 골라 서울로 보냈을 때 어머니는 잘 키웠다며 기뻐하셨고 "이젠, 내가 토란씨 안 보내줘도 토란국 끓여 먹겠네"하시고는 마음을 놓으셨습니다.

토란은 지역마다 다르게 식용을 하나 봅니다. 제주도와 일부 지방에서는 토란줄기만 말려서 먹고 토란은 먹지 않더군요. 그래서인지 고사리가 많은 제주에서는 돌담곁에 토란을 화초처럼 심어놓은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기온이 따스해서 겨우내 밖에서도 알뿌리들이 동면을 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언제부터인가 토란의 꽃이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꽃을 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고구마꽃을 보기보다 더 힘들다고 하더군요. 고구마도 메꽃같은 꽃을 피우는데 아주 귀한 꽃이라 아직도 만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인지 고구마꽃, 토란꽃은 우담바라처럼 만나면 상서로운 일이 생긴다는 좋은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토란꽃,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만큼 귀한 꽃이다.
토란꽃,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만큼 귀한 꽃이다. ⓒ 김민수
지난 해 강원도 물골에 토란농사를 지었습니다. 추수를 하는 중에 꽃이 피었던 흔적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올해는 꼭 만나야지 했다가 잠시 잊었는데 마치 천남성과의 반하를 닮은 은은한 꽃이 화들짝 피어난 토란을 만났습니다.

꽃은 화사하지 않습니다만 단아하고 은은한데다 시원스러운 곡선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장마철이면 연잎 대신 토란잎을 따서 머리에 쓰고 뛰어다니다 옷에 토란물이 들어서 어머니에게 경을 치던 기억도 나고, 북을 줘야 토란이 흙밖으로 나오지 않고 실하게 여문다 하여 뜨거운 여름날 북을 주느라 비지땀을 흘린 기억도 났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줄기의 가장 아랫부분에 수염뿌리를 간직한 곳이 있는데(어미토란) 주먹마냥 둥근 '되제기(?)'라는 것이 있었답니다. 맛은 토란(새끼토란)보다 못하고 좀 딱딱한데 푹 삶으면 먹을만은 하지요.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그것도 먹었지만 요즘은 그걸 먹는 사람이 거의 없지요. 그런데 몇 년 전 돌아가신 고모님은 토란국만 끓이면 '되제기'를 찾으셨습니다.

"난 되제기가 제일 맛있더라."
"아이고 형님도, 그게 뭐 맛있다고 그래요? 토란 많으니까 맛난 것 드세요. 청승떨지 말고"
"그래도, 난 그게 맛있는데…."

어머니와 고모님의 대화였습니다.

단아하면서도 은은한 맛을 간직하고 있고 시원스러운 모양새를 간직하고 있다.
단아하면서도 은은한 맛을 간직하고 있고 시원스러운 모양새를 간직하고 있다. ⓒ 김민수
토란에는 '멜라토닌' 성분이 많아서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성도 있어서 덜 삶아서 먹으면 아리고, 줄기도 삶아서 한참을 물에 담가놓지 않으면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미운 시누이가 오면 덜 삶은 토란줄기로 반찬을 해서 내놓기도 했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토란은 싹이 늦게 트는 식물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싹을 틔운 후에 심습니다. 그래도 이파리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이 걸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단 이파리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오랜 시간 기다렸다고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비오는 날, 토란잎에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때론 비가 오지 않아도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이 신기해서 토란잎을 이용한 물방울 놀이를 해 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제 이런 추억을 가지고 있던 것들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중국산에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석이면 그야말로 백옥처럼 하얀 메추리알을 닮은 표백제 투성이의 토란을 먹고 있습니다. 하나, 둘, 우리들의 어린시절 추억이 담겨 있는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날 때 우리의 삶도 그만큼 척박해진 것 같습니다.

토란, 그 신비한 꽃을 보았으니 상서로운 일이 생길까요?

덧붙이는 글 | 고모님은 어미토란을 늘 '되제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도 '되제기'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지방 방언인지도 모르겠으나 제 기억에는 '되제기'로 남아있습니다.


#토란#되제기#멜라토닌#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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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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