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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저녁 6시 30분, 나는 집 앞에 위치한 언덕 마을의 계단 86개를 헉헉거리며 오른다. 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건 바로 '유기농 바구니'를 찾기 위해서다. 조용한 개인주택과 정면에 보이는 몽마르트보다 나를 설레게 하는 건 '이번에는 유기농 바구니에 어떤 제철 야채와 과일이 들어 있을까'하는 궁금증이다.

유기농 바구니를 이용한 지도 벌써 1년 5개월. 유기농 제품을 먹기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그전까지는 유기농 제품 전문상점을 이용했다. 우연히 <르 파리지앵> 신문에 난 유기농 바구니 이용자 얘기를 보고 동참하게 됐다.

▲ 야채 유기농 바구니에 담긴 농산물들. 기자는 매주 한번 수요일에 야채 유기농 바구니를 받으러 간다.
ⓒ 한경미
유기농 바구니는 중간 상인 없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소비자는 매주 바구니를 찾으러 갈 때 다음 주 바구니 값을 선불한다. 유기농 바구니는 야채와 과일 2종류가 있고 야채는 대·소 2종류가 있어 식구 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대개 제철 농산물이어서 신선도도 뛰어나다.

흥미로운 점 하나는 소비자는 바구니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맘에 들던 아니던 바구니에 담겨있는 것을 군소리 없이 받아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게 단점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대하지 않았던 게 들어 있어 평소에 잘 접하지 않는 야채나 과일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바구니 속에는 요리법이 같이 들어있어 새로운 요리에 도전할 수도 있다.

내가 이용하는 유기농 바구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기 위해 파리 남쪽 근교 오를리 공항 근처의 렝지스 국제대도매시장을 찾았다. 이 유기농 바구니를 운영하는 '디나미스 프랑스'의 운영자 안느 브르통씨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다음은 안느 브르통과의 일문일답.

비싸지 않은 유기농, 중간상인 없으면 가능

▲ '디나미스 프랑스'의 운영자 안느 브르통씨.
ⓒ 한경미
- 언제부터 유기농 바구니를 운영했나?
"1998년 9월부터 유기농 바구니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이 시스템은 네덜란드나 스웨덴 등 이웃 국가에서 이미 선보였다. 우리 프랑스에도 한번 적용해 보자고 해서 시작됐다. 처음엔 4~5군데에 바구니를 배달했다."

- 유기농 바구니는 어떻게 배달되나?
"자기 집과 가까운 상점에 배달된 유기농 바구니를 사람들이 찾아가는 방식이다. 일주일에 두번, 월요일에는 75곳, 수요일에는 50곳, 총 125곳에 배달한다. 주로 유기농 제품 상점이 대부분이고 개인협회 같은 특별한 경우도 있다.

보통 월요일에는 3500개, 수요일에는 1850개 바구니를 준비한다. 과일과 야채 모두를 포함한 수치인데 구매하는 사람 수로 따지면 월요일에는 2300~2400명, 수요일에는 900~1200명 정도다(과일과 야채를 모두 구입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 우리 트럭으로 직접 배달하기 때문에 현재는 파리와 그 근교만 가능하다. 지방은 운송비용이 많이 들어 아직은 역부족이다. 직원은 바구니 준비하는 사람, 운전수, 행정일 보는 사람까지 해서 15명 정도 된다."

-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
"처음부터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1998년 11월 파리에서 열린 '마졸렌' 유기농제품 전시회에서 유기농제품을 소비하는 파리지앵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어려움도 있었는데 선불 방식이라는 것과 내용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게 가장 컸다."

- 유기농업을 하는 생산자와는 어떻게 거래하나?
"우리 바구니 가격은 대략 정해져 있고 주중에는 이미 유기농 바구니에 어떤 제품을 넣을지 정해야 한다. 선택한 제품에 따라 생산자들에게 연락하는데 그들이 먼저 우리에게 가격을 제시하고 오케이가 나면 그 다음에 필요한 양을 정하는 방식으로 한다. 생산자는 재고 없이 많은 양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고 우리는 맞는 가격으로 필요한 양만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생산자들이 언제나 좋은 가격으로 농산물을 넘기는 건 아니다. 바구니 가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격 조건에 맞지 않으면 구입이 불가능하다. 간혹 자기네 제품을 알리기 위해 우리에게 농산물을 넘기기도 한다."

-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가격을 낮추는 방식인가?
"그렇다. 중간 상인을 배제해 최적의 가격으로 유기농 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거다. 우리가 한번에 많은 양의 농산물을 구입하면 생산자들은 유기농제품을 계속 생산할 수 있고 적정 가격을 유지시켜 그들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다."

- 생산자들은 어떻게 선택하나?
"우리 회사가 도매업을 시작한 지 이미 15년이 지났다. 그래서 생산업체들을 꽤 많이 알고 있어서 선택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다. 우리도 이 방면에선 꽤 연륜이 있어서 생산자들도 많이 알고 있는 상태다."

들어온 농산물은 24시간 안에 소비자에게

▲ 야채 바구니를 만들고 있는 '디나미스 프랑스' 직원들.
ⓒ 한경미
- 해외 농산물도 있던데 국내와 해외 생산업체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시기에 따라 그 비율은 달라진다. 겨울 같이 국내 농산물 생산이 적을 때는 자연히 해외 생산업체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평균을 따지면 국내가 60%, 해외가 40% 정도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제품을 많이 이용하고 바나나 같은 것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온다."

- 국내 생산업체로만 조달하는 건 불가능한가?
"그 경우엔 야채와 과일 종류가 너무 한정된다. 프랑스 국내에서 나는 야채가 한정되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국외 생산업체와도 일을 하는 거다. 특히 겨울에는 프랑스 국내 생산업체와만 일한다면 제공할 야채나 과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코르시카섬에서 포믈로(자몽과 오렌지의 결합 과일) 같은 과일이 나기는 해도 레몬이나 오렌지, 귤 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기는 힘들다."

- 농산물은 어떤 방식으로 운송되나?
"국내 농산물은 트럭과 기차로, 해외에서 올 때는 배로 온다. 렝지스 국제대도매시장에는 철로가 설치되어 있어 기차 물건을 창고에서 직접 받을 수 있다. 농산물은 일주일에 두번, 월요일과 수요일 새벽에 들어오고 대부분 당일 안으로, 늦어도 다음날 오전까지 배달된다."

- 배로 물건이 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그렇다. 그래서 남미나 네덜란드 등에서 과일을 대량 구매하는 업자들과 함께 일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과일과 그 정도 양이 있는지 물어보고, 있으면 직접 받는 식으로 한다."

- 그러면 중간 상인이 개입되는 셈인데….
"그렇다. 해외에서 오는 과일은 다른 도리가 없다."

- 지금처럼 소비자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과일이나 야채를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은 불가능한가?
"바구니 가격이 정해져 있고 바구니 가격을 선불하는 식이라 지금 가격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과일을 모두 구입한다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또 각자가 원하는 야채의 가격이 다르니 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 유기농 바구니의 장점은 한 제품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건데 그렇게 되면 종류만 많아지고 양이 줄어들게 돼 생산농가에도 타격이 갈 수 있다."

마진 35%, 유기농 장사꾼과 우리는 다르다

▲ 가게에서 유기농 바구니를 찾아 나오는 사람들.
ⓒ 한경미
- 어떤 사람들이 유기농 바구니를 이용하는가?
"초기에는 유기농 소비자들이 많았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기도 한다. 유기농 바구니를 처음으로 이용해 본 사람이 유기농 제품 소비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회사가 홍보비를 많이 지출할 형편이 안 되는데 다행히 바구니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웃에게 알리는, 직접적인 홍보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가끔 농산물이 다양하지 않다거나 질이 좋지 않다며 중단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대략 1% 정도 불만이 들어온다."

- 유기농 상점이 아닌 유기농 바구니를 이용하는 게 소비자에게도 이익인가?
"처음에 시장조사를 했는데 같은 제품, 같은 양을 상점에서 사는 것보다 유리했다. 원칙적으로 중간상인이 배제되니 더 저렴하다."

- 유기농 상점과 비교했을 때 유기농 바구니의 장점은?
"우선 야채를 고르는 수고가 면제되는 점이 있다. 이미 정해진 야채 바구니를 그대로 받기만 하면 된다. 그런 면에서 시간도 절약된다. 1년 내내 다양한 야채와 과일을 먹을 수 있고 요리법이 들어 있어 편리하다는 점, 아이들에게 생전 보지 못했던 다양한 야채와 과일을 맛보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 바구니 가격은 어떻게 유지되나? (야채(3㎏)- 11유로, 야채(1.5㎏)- 7유로, 과일 바구니(2.5~3㎏)- 9유로)
"이 시스템을 도입한 첫해부터 지금까지 거의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단, 프랑이 유로화로 바뀌면서 야채 소바구니 가격이 조금 올랐다. 과일 바구니는 1998년 시초 가격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사실 어떤 때는 우리가 예상한 가격을 초과하기도 하지만 일단은 현재 가격을 유지할 생각이다."

- '디나미스 프랑스'가 취하는 마진율은 어떻게 되나?
"우리가 대략 35%를, 배달 상점이 25%의 마진을 취한다. 유기농 전문 상점이 보통 2~3배, 유기농 시장 상인이 3배까지 마진을 갖는 점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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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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