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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여덟. 가구회사에 다니시던 아버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회사 사장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그 많은 돈을 수십 명에게 줄 수 있는 것일까? 아버지가 낮에는 일하지 않으니, 직원들이 모두 다 퇴근한 밤에 '무슨 일'을 해서 많은 돈을 버는 게 아닐까?

나는 아버지가 사장처럼 밤에 일을 해서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밤에 하는 일'이 결국 '기업 운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는 십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의 저자 하워드 진은 열일곱 무렵에 <공산당 선언>을 처음 읽었다고 한다. 만약, 내가 아버지 회사의 사장이 하는 일을 궁금해 했을 당시에 <공산당 선언>을 접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돼 있었을까?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기분은 매우 유쾌했다.

저자가 역사 모노드라마라고 밝혔듯이, 이 책은 주로 마르크스의 1인칭 독백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스도는 재림하지 않았지만 마르크스는 돌아왔다"라는 발칙함을 보여주며, 21세기 뉴욕으로 돌아온 마르크스가 관객(독자)을 향해 묻고, 묻고, 또 묻는다. 자본주의는 승리하였는지, 승리했다면 누구에게 승리하였는지를 말이다.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취한 까닭은 아마도 그동안 제기됐었던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마르크스가 직접 해명 혹은 반론하면 어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지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때문에 자못 흥미로운 장면들이 등장한다.

마르크스조차 두려워했던(?) 정직한 비평가 아내 예니와의 대화가 그렇고, 아나키스트였던 바쿠닌과의 논쟁이 그렇다.

특히, 사회주의의 실패로 거론되는 구소련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소련은 경찰국가였지 결코 사회주의국가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때문에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체제비판은 아직도 '유효'한 셈이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가장 근접했던 사회로 파리 코뮌을 꼽는다. 그것은 몇 개월 밖에 가지 못했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최초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한 합법적인 정치기구였다. 거리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찼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항상 토론이 벌어졌다.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자주 웃는 거 같았다. 모두 친절하고 상냥했다. 거리에는 경찰의 '경'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안전했다.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였다.

<공산당 선언> 등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었거나, 혹은 여타의 마르크스 논쟁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책을 좀 더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겠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든 아니든,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었든 아니든 모두가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읽는 까닭은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야 하는 마르크스의 마지막 제안 때문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니 시회주의니 하는 말은 하지 맙시다. 그냥 이 지구의 엄청난 부를 인류를 위해 쓰자고 합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도록 합시다. 식량과 의약품,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나무와 풀, 즐거운 가정, 몇 시간의 노동과 그보다 많은 여가 시간을 줍시다. 그리고 그걸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묻지 마세요. 인간은 누구나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요."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역사 모노드라마

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당대(2005)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하워드 진#공산당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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