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이후의 현 중국과 1861년 이후의 청나라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두 시기의 중국이 모두 서양의 물질문명에 대해 적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거나 보였다는 점이다.
1978년 중국공산당 제11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1기 3중전회) 이후의 중국은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함풍제 사망(1861년)을 계기로 서태후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의 청나라는 양무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개혁·개방과 양무운동은 모두 자본주의로 표현되는 서양의 물질문명을 수용함으로써 부국강병을 이루려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다.
종래의 몸 유지하며 옷만 바꿔 입기
한편, 두 시기의 중국은, 서양의 물질문명을 허용하되 체제의 본질만큼은 고수하려 하는 점에서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청나라는 봉건체제를 고수했으며, 현 중국은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과거의 청나라와 현재의 중국은 모두 서양의 물질문명 앞에서 중체서용(中體西用)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종래의 몸을 유지하면서 옷만 바꿔 입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청나라의 중체서용과 현 중국의 중체서용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청나라 때와는 달리 현 중국의 경우에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접촉하기 전에 미리 '면역주사'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슨 말일까?
중국이 자국의 생산력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자 하는 주된 대상은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인 미국이다. 광저우나 상하이에 가보면 더 분명히 알 수 있겠지만, 단적으로 베이징 시내의 간판들만 보더라도 중국과 미국의 경제적 긴밀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인들의 생활수준에서는 비싼 편인 20위엔(한국 돈 2600원 가량) 정도에 커피를 팔고 있는 스타벅스, 역시 20위엔 안팎에서 햄버거 세트(햄버거+감자+콜라)를 제공하고 있는 맥도널드 햄버거, 안 그래도 붉디붉은 베이징 거리를 더욱 더 붉게 물들이고 있는 코카콜라, 세계 200여개 국가·도시에 화물을 틀림없이 배달해준다는 UPS 등 미국계 기업들은 베이징 시내에서 전혀 낯설지 않는 친숙한 대상이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을 주된 협력대상으로 삼으려 하면서도 정작 미국을 자본주의 교사로 모시고 있지는 않다.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것을 얻어내려면, 미국으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미국과 제대로 된 경제교류를 하려면, 국민들이 TV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문화를 배우는 것이 효율적일 텐데도, 중국 TV에서는 그다지 '미국 냄새'를 느끼기가 힘들다.
미국 대신 한국식 자본주의문화 수용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중국이 자본주의문화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중국인들은 "우리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또 그런 주장이 일정 정도 타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에 자본주의문화가 유입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루트가 아니면, 어떤 경로를 통해 중국에 자본주의문화가 유입되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한국이다. 한류문화가 중국에 자본주의문화를 전달해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드라마·영화·대중가요 등에서 배경을 이루는 자본주의문화를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과정에서 중국인들은 자본주의문화에 점차 친숙해져 가고 있다. 그런 이점이 있기에 중국 지도층은 한류의 중국 상륙에 대해 별다른 제동을 걸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TV 등을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문화를 직접 받아들일 경우, 중국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서세동점 시기에 미국 등 서양열강으로부터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어서 중국인들이 서양에 대해 일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데다가, 미국문화가 동아시아와 이질적인 서양문화라서 중국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 학습 효과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잘못하면 중국인들이 미국의 압도적인 문화에 도리어 매료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문화가 중국인들을 압도할 경우에 이것은 경우에 따라 공산당 지배체제의 위기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중국이 자본주의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같은 동아시아권이어서 문화적 소통이 쉬울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만만한' 한국으로부터 자본주의문화를 수용하는 것이다.
한국보다 더 선진적인 일본도 있지만, 중국인들의 국민감정상 일본문화를 수용하기는 힘들다. 이러저러한 면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에 한국만큼 좋은 자본주의 교사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역사적 우월감 작용
그리고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한국으로부터 유입되는 자본주의문화에 대해서는 체제위기감을 느낄 필요가 낮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 실제와 관계없이 중국인들은 '한국은 중국의 속방이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다가 현재의 한국을 미국의 종속국가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중국인들은 한국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국민감정상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중국인들은 한국을 '자본주의를 좀 더 일찍 배운, 돈 좀 있는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집안은 가난하지만 학급에서 1등 하는 학생'이 '집안은 부유하지만 공부는 자신보다 못하는 학생'으로부터 밥 한 끼 얻어먹더라도 내심으로는 별로 기죽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 지도층의 입장에서는 한국으로부터 자본주의문화를 배운다 해도 중국인들이 한국에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인의 내면에 있는 역사적 우월감이 한국의 자본주의문화로부터 중국인의 정체성을 지켜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으로부터 무사히 자본주의문화를 익힌 뒤에 미국 자본주의와 본격 접촉하게 되면, 자신들의 체제도 지킬 수 있고 또 자본주의와의 관계에서 수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중국을 이끄는 사람들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중국 지도층은 강력한 서양 자본주의문화를 직접 수용하다가 결국엔 실패로 귀결되고 만 청나라 양무운동의 전철을 밟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에, 한류는 중국인들에게 일종의 면역주사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중국은 자본주의라는 '병원균' 속에서 생산력 발전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비교적 만만한' 한국으로부터 자본주의 학습을 받음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동시에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