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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지평연구소
지난 겨울, 남한강 속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햇살. 그나마 쪼아주던 온기마저도 어슴푸레 해지지만 군고구마 맛에 흠뻑 빠진 아이들은 손도, 입도 쉴 새가 없다. 고구마를 태우지 않고 맛있게 구워야 하기 때문에 모닥불을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없는데다 날씨도 꽤 쌀쌀한데 아랑곳 하지 않는다.

"선생님 입에는 맛있는데. 앗 뜨거, 우리 몸에는 안 좋은 것들이 마~안잖아요. 근데 ^^ 이 고구마는 맛도 좋고. 몸에도 좋아요 그쵸? 동치미 조금만 더 주세요. 건더기도 마아~니 주세요."

먹고 안 먹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동치미 첫 사발을 시큰둥한 얼굴로 받아들었었다. 그 중 한 아이였던 종환이가 "나, 이런거 안 먹는데…" 하면서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는 듯 천연덕스럽다.

하지만 동치미를 거부했던 아이들 모두가 두 사발씩 또는 그 이상을 먹어대자 큰 들통에 가득했던 동치미는 금새 바닥을 보였다. 교사들은 바닥바닥 긁어서 한입씩 먹을 수밖에 없지만 마음은 흡족해진다. 음식 투정을 단속하느라 아이들을 붙들고 실강이를 해야만 했던 일들이 참으로 힘겨웠기 때문이다.

4박5일 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겐 참으로 불만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나 보다. 첫날 입교식에 모여 앉은 아이들. 눈가, 입가로 잔뜩 힘을 모으며 이렇게 결심하는 듯하다.

"집 떠나면 고생인데, 무슨 캠프가 이렇게 길어. 한 이틀 있다가 집에 가버려야지…."

그러다가도 엄마 아빠에게 반 강제로 등 떠밀려 왔다는 아이들은 낯설음과 불만이 어우러져 푹 꺼져 있기가 일수다.

맨 처음 아이들은 투정을 부리지만...

ⓒ 생태지평연구소
아토피 제로 산사학교는 지난여름부터 시작하여 세 번째였지만, 첫날부터 이어지는 분위기는 늘 똑같다. 주변의 친구들을 살피며 쭈뼛거리는 어색함은 아주 잠깐이다. 오래두고 사귄 친구들인 양 갑자기 몸싸움을 벌이며 질러대는 즐거운 괴성들이 조용한 절간을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만드는가 싶다가 결국 비명 섞인 울음소리로 잠재워진다.

흐뭇하게 바라만 보던 우리들이 비로소 개입할 시간이다. 서로의 항변을 들어주고 화해와 사과를 시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들은 너그러운척 조정하지만, 마음이 맑은 아이들에게 한 수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소란한 분위기를 정리하고 난 후 둘러앉아 서로의 모습을 찬찬히 마주하게 된다. 아토피가 온통 얼굴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아이들이 보이는가 하면, 깨끗한 얼굴들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내리면 닳아서 거칠거칠 터진 가죽목도리처럼 목을 옥죄고 있는 아토피가 들어온다. 서로를 바라보던 눈들이 조금씩 의기소침해지며 다른 곳으로 향하는 시간. 마음을 다시 닫아버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 생태지평연구소
아이들은 동성끼리 또는 또래끼리 공통점을 찾아내며 둘씩, 셋씩 짝을 짓지만, 나보다 어린동생들 그리고 나보다 아토피가 심해보이는 아이들을 먼저 위해주고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늘 긴장하며 세세하게 살펴야 하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모습들은 가슴이 쏴 해지는 큰 기쁨이다.

어느덧 아이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위축되지 않고 몸과 마음에 들러붙어 있는 아토피를 당당하게 드러내며 활개를 치며 뛰어다닌다. 남의 시선도 자신을 탓하는 마음도 훌훌 털어버리니 금방이라도 아토피가 나을 것 만 같다.

그러나 잠자기가 두려운 한길이를 보는 마음은 아프다. 온 종일 뛰었던 터라 금방 잠에 빠져들지만 두어 시간 이면 어김없이 깨어나 손톱으로 온 몸을 후벼 파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 부엌용 벙어리장갑을 끼워 꽁꽁 동여매주며 잘 자라는 인사를 하며 함께 눕지만, 효과는 전혀 없다.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뜨거워진 등을 문지르던 손바닥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온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 밤중 졸음과 아토피와 우리가 벌였던 삼파전은 새벽녘 빛이 어슴푸레 밝아올 때쯤에야 끝이 난다. 모두가 지쳐서 골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진작에 일어난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는 한길이는 미안함 때문인지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이불 곳곳에 묻어 있는 피와 각질가루들을 들어 보이며 "어떡하지?" 라며 모기소리만큼 뇌까리지만 이불이 대수랴! 엉덩이를 쳐주며 내보내면 아이들이 몰려오나보다.

"형~ 잘 잤어?"
"한길아 많이 긁었어?"

걱정하는 소리들과 함께 시끄러운 수다. 하루의 기운들이 펄펄 뛰기 시작한다.

빠르게 적응하는 아이들

ⓒ 생태지평연구소
아이들은 빠르게 적응한다. 첫날, 친구들과 티격태격하지만 종일 붙어 다니고 둘째 날, "이런 건 집에서도 안 먹는단 말이예요~ ㅠㅠ."

간식종류에 잠깐 투덜거리지만 어느덧 입안에 가득 양손에도 가득 즐거움이 넘치고 셋째 날, 식사시간 반찬투정과 실강이가 잠잠해지는가 싶으면 넷째 날, 아이들의 얼굴은 눈에 띄게 윤기가 돈다. 몸을 더듬던 손놀림도 뜸해진다. 마음 가득 무언가가 차오르지만, 잊고 있었던 피곤함도 함께 차오른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변했어요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밝은 눈빛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요."

늘 침울했던 영진이가 소리 내어 웃는다며 전화로 알려주시던 엄마의 목소리에서 울먹임이 느껴졌다.

"우리 민정이가 10년 동안 하루걸러 먹던 피자, 햄버거를 안 먹더라구요. 그렇게 말려도 안 듣던 앤데. 그러더니 팔꿈치, 무릎 안쪽이 깨끗해지는 거예요 지금은 자세히 봐야 보이는 정도예요."

그래도 라면은 완전히 끊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과 함께 산사학교가 끝난 지 한달만에 전화로 알려주신 말씀이다.

올 여름방학이면 제 4차 ‘아토피 Zero 산사학교󰡑가 열린다. 지난여름, 겨울에 만났던 아이들 몇몇은 또 만나게 된다. 일주일의 체험이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해서 난 아토피 나을꺼야󰡓 결심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대부분이 길어야 두 달인 셈이다. 그러나 긴장감이 줄어들고 약속은 흐트러지지만 예전의 모습보다는 낫다며 다시 신청을 한다.

“선생님 약발이 떨어졌나 봐요 요즘은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어요 다시 빵빵하게 충전시켜 보내주세요. 이제는 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몸소 경험했으니 다시 배우면 더 나아질 것 같아요!"

가족들의 노력과 협조가 훨씬 많아야 아이들도 습관으로 생활로 받아들일 거라는 말을 꼭 강조한다. 올 여름 산사의 모기를 어떻게 퇴치할까. 천연모기약을 많이 만들어가야 할 것 같다.

생태지평 연구소 제4차 아토피 zero 산사학교


생태지평연구소의 아토피 zero 산사학교는 http://a-zero.or.kr/ 홈페이지를 이용하여 자세한 일정과 참여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문의 : 02-338-9574 / 김미현 연구원

덧붙이는 글 | 김미현 기자는 생태지평 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아토피#산사학교#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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