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과의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무기력하게 끌려다는 원인에 대한 분석 기사(임영남·박상준 기자)를 실었다. 한마디로 이슬람 전문가가 없다는 진단이다.
"피랍사건에 대한 핵심 대책을 세우고 현지 협상단을 지휘하는 청와대 안보정책 조정회의에 참석하는 고위 인사 가운데 이슬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아프간 현지 협상단 단인 조중표 외교통상부 1차관은 아시아·태평양 국장과 일본 및 중국 주재 대사관 참사관을 지냈고, 대통령 특사로 현지에 파견된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역시 전문 분야가 이슬람과는 거리가 멀다.
외교 통상부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중동지역 16개 국가를 담당하는 아프리카·중동국 내 중동과에 근무하는 인원은 서기관 8명이 전부. 아프가니스탄은 담당자 1명이 호주와 아프간을 함께 관할하고 있다.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에는 중동 지역 연구 인력이 단 1명뿐이다. 경제계 역시 삼성경제연구소 전체 연구 인력 110명 가운데 중동 지역 전문가는 1명도 없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동 전문가가 1000명이 넘는 일본에 비해 사람 수도 턱없이 적을 뿐만 아니라, 납치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정부 관계자로부터 자문 요청을 받은 사람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조언
<서울신문>은 국내외 전문가 7인의 의견(임영일·서재희·이경주·이도운 기자)을 들었다. 관건은 "탈레반 내부의 강경파를 만족시키는 카드를 찾아야 한다"는 데 모아졌다.
최진태 한국테러리즘 연구소장은 "표면적으로는 아프간 정부가 당사자이지만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면서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미국을 설득하는 데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종택 명지대 인문대학장(아랍지역과) 역시 미국에 대한 외교적 노력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매튜 드플렘 반테러 정책 전문가는 "미국의 결정적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 사태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국가 이익에 맞는 독자적인 대탈레반 협상 전략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은 전략적으로 한국 정부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탈레반의 요구를 거절하고 탈레반과 알카에다와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겠지만, 한국 정부가 그럴 수 있겠느냐"면서 "한국 정부가 독자적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신문>이 소개한 전문가 조언 가운데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파키스탄 활용론. 이종택 명지대 인문대학장은 "탈레반에 영향력을 지닌 유일한 국가인 파키스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으며, 이종화 경찰대 교수도 "지금까지 정부가 파키스탄의 힘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며 "탈레반에 대한 파키스탄 정보국의 정보력과 공작능력은 세계 최고수준이며 유착관계 역시 공공연한 비밀"이라면서 파키스탄의 협조와 조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문화일보> 25일자 '파키스탄 정보국 ISI를 주목하라'(구은정 기자)도 주목된다. 구은정 기자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한국인 피랍사건을 일으킨 무장단체의 실체조차도 안개에 싸여 있는 상황에서 파키스탄 쪽 정보와 ISI 채널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무장 세력들이 ISI와 밀접히 결합돼 있으며, 심지어 무기 암시장까지도 ISI의 정보망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외신 보도들에 입각해 "탈레반 등 이슬람 무장 세력에 대해 세계의 어떤 정보기관보다도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파키스탄 정보국 ISI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입장은?
<한겨레>는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의 동향 분석 기사(김순배·류재훈 기자)에서 탈레반이 인질 석방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아프간 정부의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위해서는 '미국의 재가'가 필수적인 점을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아프간에 1만5000명의 병력을 파병해 국제안보지원군(ISAF)을 진두지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카르자이 대통령이 미국의 절대적 지원으로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해외원조에 의존해 겨우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아프간정부에 대한 미국의 지원도 압도적이다. 미국은 그동안 140억 달러를 지원했다.
<한겨레>는 "미국이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기 어렵다"고 분석하는 한편 "그렇다고 '계속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으로 비친다면 한국의 반미 감정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한국 정부와 분명히 연락을 계속하고 있기는 하지만 '공조'란 단어는 쓰고 싶지 않다"는 익명의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역시 오늘 '미국의 입장'에 대한 분석 기사(강찬호 기자)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잡고 있는 탈레반 수감자와 한국인 인질을 맞교환하려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설득하거나 최소한 묵인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포로 맞교환이나 돈을 주고 인질을 데려오는 방안은 그동안 미국이 표방해온 원칙과 정면 배치된다"는 점에서 미국 측으로서는 동의하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 사태를 수수방관하는 것처럼 비칠 경우 자칫 미국 책임론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데 미 행정부의 고민이 있다"고 진단했다.
두 신문의 분석을 종합하면 미국은 이번 인질 사태에 대해 한국과는 '공조'라는 표현도 쓰고 싶지 않지만(혹은 '조용한 공조'를 하고 있지만), 이 같은 태도에 대한 한국 내 여론의 향방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프간 정부 신뢰할 만한가?
<조선일보>는 라미르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탈레반과의 관계를 조명(남승우 기자)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탈레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프가니스탄 최대 종족인 '파슈툰 족' 출신으로, 1980년대에는 소련 점령군에 저항하는 세력을 도왔고, 1994년 탈레반 결성 초기에는 탈레반과 협력 관계였지만, 곧 결별했다.
파키스탄으로 망명한 카르자이 대통령은 2001년 미국 주도의 탈레반 축출 전쟁에 동참해 미국의 지원으로 과도 정부 수반이 돼 2004년 10월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그의 집권 하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선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경찰이 뇌물을 요구하고 서민들을 괴롭히면서 반 카르자이·친 탈레반 정서가 곳곳에서 싹트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탓에 카르자이 대통령은 호시탐탐 정부 전복과 재집권을 노리는 탈레반에 조금이라도 득이 될 만한 선택은 하지 않겠다는 심리상태라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아프가니스탄의 치안상태를 다룬 또 다른 기사(이인열 기자)에서 구호단체인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자원 봉사자 연합' 압둘 살람 시디치 부대표의 말을 인용해 "심지어 어떤 지역에선 공무원과 탈레반이 결탁하기도 해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의 공무원을 믿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나 탈레반과의 중개역을 맡고 있는 가즈니주 관계자들의 신뢰성 여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분석들이다.
걱정되는 '몸값' 보도
오늘(27일) <조선일보>와 <국민일보> <세계일보>는 <연합뉴스>의 카메라에 잡힌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메모'를 보도했다.
김장수 국방장관에게 건넨 이 메모에는 피랍자 숫자와 일치하는 숫자들이 나열돼 있고, 그 밑에 각각 정부의 '판단'일 수 있는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조선일보>와 <국민일보> <세계일보>는 이들 숫자와 단어들이 피랍자들이 억류돼 있는 3개 그룹과 각각의 피랍자 숫자, 그리고 이들 그룹의 '협상 태도'를 나타낸 것이라고 분석 보도했다.
피랍사건 보도에서 언론이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이 인질들의 안위 문제다. 아무리 중요한 협상 정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개될 경우 납치단체와의 협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특히 인질 구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언론으로서는 일단 보도를 자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이들 세 신문의 보도는 '정부의 협상 전략'을 노출시키고, 납치세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연 합당한 보도였는지 의문이다.
특히 '몸값보도'야 말로 인질 사태가 계속되는 한 한국 언론이 가장 절제해야 할 대목일지 모르겠다. 실제 협상이 그렇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질들이 풀려나고 난 다음에 따져보아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더불어 한마디 덧붙이자면 언제부터 '몸값'이라는 말을 이렇게 쉽게 쓰게 됐는지 모르겠다.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 치른 비용이라면 '몸값'이라는 말 보다는 '구출비용' 혹은 '석방비용'이라고 해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몸값'이라는 말이 이럴 때 사용하는 익숙한 단어인 것은 사실이지만, 프로 선수들의 연봉 계약을 두고 '물건값'을 매기 듯 사용하기 시작한 '몸값'이라는 용어 사용은 적어도 언론에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