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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춘향수절가> 겉그림.
<열녀 춘향수절가> 겉그림. ⓒ 보리출판사
누구나 <춘향전>이 전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문화유산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춘향전>을 읽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거기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한자체로 된 원문을 읽기가 쉽지 않다든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라서 별로 흥미를 못 느낀다든지….

사실 일반인들이 한자체로 된 <춘향전> 원문에 흥미를 갖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어려운 한자어를 쉽게 해석해 놓은 텍스트가 있어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어려운 한자어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는 선입견 때문에 힘들여 읽을 필요를 못 느끼는 까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춘향전>의 진가를 아는 이들이 "<춘향전>이야말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작품이다", "<로미오와 줄리엣>과도 바꿀 수 없는 고전 중의 고전,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극찬하면 으레 형식적으로 동의할 뿐 마음속으로는 '정말 그럴까?', '혹시 편협한 민족주의나 자문화 중심주의가 아닐까?'하고 코웃음 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춘향전>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분들이라면 <춘향전>이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않은 뛰어난 작품이란 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물론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개인이므로 <춘향전>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저울질해서 우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그만큼 <춘향전>의 진가를 확신한다는 의미다.

비록 조선시대란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고전소설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춘향전>엔 현대소설에서도 보기 힘든 놀라운 해학, 풍자, 창의성, 수사 미학 들이 담겨 있다. 춘향과 몽룡의 밀회에 앞서 전령사로 나선 향단과 방자의 천연덕스러운 대화를 엿듣고 있노라면 셰익스피어의 해학적인 대사가 연상되고, 춘향과 몽룡의 첫날밤 장면에선 헨리 밀러의 소설을 읽는 듯이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결코 난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자체로 된 원문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현대인들이 읽기 쉽게 재해석한 텍스트는 그 자체로 한 편의 근대소설, 현대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조령출의 <열녀춘향수절가>는 '현대인을 위한 <춘향전>'으로서 손색이 없다. 비록 북한 작가이긴 하지만 원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그의 작품을 원본과 함께 반드시 읽어야 할 텍스트로 추천하고 싶다.

고전문학으로 하나 되는 남북한

최근 남북한의 문화적 교류가 본격화되고 있다. 8월엔 남북한 합작 드라마 <사육신>이 선보일 예정인데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60년 가까이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남과 북이 조선시대의 역사를 통해 동질성을 모색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출판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보리출판사에서 시리즈로 간행하고 있는 <겨레고전문학선집>이 대표적인 사례로, 남과 북이 고전문학을 통해 동질성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위에 언급한 <사육신>과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 민족이 과거의 역사, 전통, 문화유산으로부터 동질성 회복의 계기를 모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지속되려면 남과 북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북한 문학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남북한 하나됨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할 거라고 믿는다. 끝으로, 그 옛날 광한루에서 그네 뛰던 춘향이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사랑의 전령사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춘향이 그네 뛰는 대목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바로 이때 춘향이가 향단이를 데리고 그네터로 들어섰다. 백 척이나 높은 버들가지에 드리운 그네를 뛰려 할 제, 푸른 그늘에 향기로운 풀 우거지고 비단 잔디 좌르르 깔린 위에 장옷 훨훨 벗어 걸어놓고, 자주 갖신도 석석 벗어 던져두고, 다홍치마는 턱 밑까지 훨씬 추켜 입고, 연숙마 그넷줄을 고운 두 손에 갈라 잡고, 흰 버선 두 발길로 섭적 올라 발을 구른다. 가는 허리, 고운 몸을 단정히 놀리는데, 뒷모습을 보면 검은 머리끝에 금박 무늬 갑사댕기가 춤을 추고, 앞치레를 보면 밀화장도, 옥장도가 잘그랑거리고, 색 좋은 자주 고름이 훨훨 나부낀다.

"향단아, 밀어라."

한 번 굴러 힘을 주고 두 번 굴러 힘을 주니 발밑의 티끌이 바람 따라 펄펄 날고, 앞뒤로 점점 멀어 가니 머리 위 나뭇잎이 그네 따라 흔들흔들. 녹음 속에 붉은 치맛자락이 펄펄 날리니 구만리 하늘 흰 구름 사이로 번갯불이 비치는 듯, 앞으로 언뜻 보이는 모습은 가벼운 제비가 흩날리는 붉은 꽃잎을 좇는 듯하고, 뒤로 반듯 보이는 모습은 드센 바람에 놀란 호랑나비가 짝을 잃고 날다가 돌아서는 듯도 하고, 금강 선녀가 팔담(八潭)으로 내리는 듯도 하다.

광한루에서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날리는 붉은 치맛자락을 본 이도령은 마음이 설레고 정신이 아찔해져 어쩔 줄 모른다. - 본문 중에서

열녀춘향수절가 - 사랑, 나를 넘고 너를 넘어 새 세상을 여는구나

조령출 옮김, 보리(2007)


#춘향전#로미오와줄리엣#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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