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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형규 목사에 이어 또 한명의 한국인 인질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대통령 특사를 파견하는 등 석방과 무사를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과 가족을 비롯한 한국민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어떤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희생자만 한명 더 늘어난 상황이 되었다.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주요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언젠가 따져보아야 할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보다 인질로 잡혀 있는 한국인의 조속한 석방과 안전이 중요한 만큼 모든 논의와 관심의 초점은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탈레반과 미국이 대결의 양축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서부터 풀어 나가야할까? 처음 약간 혼란스러워 보이기까지 했으나 이제 탈레반의 요구는 분명해졌다. 감옥에 억류되어 있는 동료들의 석방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것은 한국 정부의 권한 밖이다. 돈이나 한국군 철군이 아니다. 아프간 감옥에 구속되어 있는 만큼 현상적으로는 아프간 정부만 잘 설득하면 될 것도 같다. 그런 표면적인 상황을 진실이라고 뒷받침이라도 하기 위한 듯 미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문제는 아프간과 한국 정부가 풀어야 하며 미국은 이를 적극 지원하고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아프간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미국 정부의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을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지금의 아프간 정부를 세운 것도 미국이고 또한 지금도 만 명이 넘는 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현 정부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도 미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억류 탈레반 중 일부는 미국이 직접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는 미국과 탈레반이 대결의 양축을 형성하고 있고 한국과 아프간 정부가 보조축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열쇠 쥔 미국의 완강한 태도가 사건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

부시행정부는 이번 사건이 터지자 가급적 말을 아끼면서 탈레반은 한국인 인질들을 조속히 석방해야 된다는 원칙적인 말만 간간이 되풀이하였다. 물론 한 번씩 조심스럽게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원칙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볼 때 사실 미국의 입장은 분명한 것 같다.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협상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다만 노골적으로 대놓고 공세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이로 말미암아 인질들이 끔찍한 상황을 당했을 경우에 쏟아질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부시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 명분으로 일으킨 전쟁에서 이미 수많은 이라크와 아프간의 민중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뿐만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천명이 넘는 자국의 군인들도 한창 젊은 나이에 그다지 떳떳치 않은 전쟁에서 자기의 생명을 마감해야 했다.

그런 그들에게 한국인 스물 남짓 되는 사람의 생명을 위한 인도주의적인 차원의 해결만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감상에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만약에 인질들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러잖아도 아프간, 이라크 전쟁 실패로 국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는 부시행정부는 탈레반의 잔인함을 들어 ‘테러와의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명분을 찾으려 할 것이다. 또한 이를 빌미로 즉각적인 탈레반 대공세를 감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대통령 특사를 파견했을 때 그가 어떤 내용을 들고 가서 어떤 방식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갈지가 관심사였다. 협상력 등의 필요 때문에 내용이 비밀에 붙여지기도 했다. 그런데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아프간 정부에는 개발원조(ODA)를 대폭 늘리기로 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파병과 관련한 약속을 한 것 같다.

아프간 정부에 개발원조를 늘리기로 한 것은 이런 것을 계기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아서 그렇지 그러잖아도 후진국에 대한 원조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한국이 원조를 늘인다는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있다.

꽃놀이 패 쥔 미국에 대한 압박 공세로 문제를 풀어야

그러나 문제는 미국과의 파병과 관련한 사항에서다. 이미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정확한 내용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라크 파병 연장을 비롯한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인질교환을 위한 미국의 양해를 얻기 위해 먼저 파병과 관련한 미국의 희망사항에 응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으로서야 다급할 일이 없다. 끔찍한 상황이 일어나도 별반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 하에 안달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 오히려 몸값과 요구 수준을 올리며 느긋해 할 수 있다. 실제로도 미국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급기야 특사 파견 이후에 또 한명의 한국인 인질이 살해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이미 이 까지 진척된 상황에서 탈레반측의 요구사항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미 요구사항에 대한 탈레반 내부의 일정한 조율이 끝난 상태에서 이를 철회하고 다른 요구조건을 내걸기는 명분이 너무 없고 오히려 이는 내부적 결속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대외적인 권위에도 흠집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을 설득하고 압박하는 길 밖에 없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방법은 있다. 한국 정부가 한국의 여론을 들어 인질 석방이 되지 않을 경우 아프간과 이라크에 파병되어 있는 군대의 조기 철군을 꾀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노무현 정부의 대미관계 자세와 태도로 봤을 때 무리한 바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부시행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다.

사실 한국 마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조기에 철군해버린다면 부시행정부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오히려 인질 사태와 한국 정부의 대미 태도가 궁지에 몰린 부시행정부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는 격이다.

누가 뭐래도 사람의 목숨은 소중하다. 설사 그들의 행동에 얼마간의 문제가 있었더라도 그것은 나중에 따져 볼 일이다. 정부는 한명이라도 더 희생당하지 않도록 빨리 움직여야 한다. 국민의 소중한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부시행정부에 과감한 요구를 하고 압박을 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한다.

#탈레반#인질#미국#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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